브런치북 Letter to ME 03화

불안이 내 영혼을 잠식할 때

Letter To Me

by 백소피

Dear MySelf


안녕하니?

20대의 넌 참 불안했지.

30대, 40대의 불안은 20대의 불안과는 다르더라.

'불안'이라는 큰 틀은 변하지 않는데 자세히 보면 조금씩 다른 모습을 하고 있어.


지금의 내가 20대의 날 보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말하겠지만, 그런 말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잔인하게 들릴지 잘 알기에 하지 않을게. 누가 봐도 아무것도 아니더라도, 자신이 힘들다면 힘든 거야.


사소한 걱정, 실체 없는 불안과 걱정, 초조가 너를 서서히 집어삼킬 때 남들이 보기엔 그저 '예민하고 유난스러운' 사람처럼 보일지 몰라도 넌 그걸 아무것도 아닌 척하면 안 돼.


난 그런 불안이 밀려오면 겉으로는 아무것도 아닌 척했어. 그게 좀 후회 돼. 그땐 아직 자신에 대한 확신이 부족할 때라서 내가 날 지키지 못했거든. 너의 불안이 얼마나 너를 힘들게 할지 알아. 그래서 마음이 아파. 지금 내가 알게 된 진리를 그때의 너에게 말해준다 해도 소용없는 일이야.


이상하게 머리로 알게 된 것과 진정으로 깨닫게 된 것의 차이가 갈수록 큰 것 같아. 그 간극이 아직까지는 좁혀지지 않아서 요즘은 불안해.


그게 무슨 말이냐고?


예를 들어, 20대에는 그냥 세상 모든 것이 다 불안했잖아? 내 미래도 불안하고, 내가 뭘 할 수 있을지도 불안하고, 불안정한 현실적 여건 때문에 또 불안하고. 사방팔방이 불안한 것 투성이지.

그때는 친구들과도 비교 아닌 비교를 하게 되니까 나보다 잘난 것 없는 친구들이 부모 잘 만난 덕에 어학연수도 다녀오고, 먹고살 걱정 없이 남자 고민이나 할 때 그런 얘기를 들어주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자신을 보며 또 불안해했었지.


지금은 20대보다 좀 더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으니까 그런 '막연한' 불안은 아니야.

내가 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목적과 방향이 뚜렷한데 자꾸 현실과 타협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부딪칠 때마다 '아!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가?', '현실성 없게 지금 내가 뭐 하는 짓이지?' 하는 식의 현타가 오면 걷잡을 수 없이 불안해져.


20대 때부터 쌓인 불안에 대한 내공이 있다 보니까 조금만 그런 위험 신호를 감지해도 과거의 불안까지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면서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최대한 '불안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거야.


아마 넌 내 얘기를 듣고 실망했을지도 모르겠다.

뭐야?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불안해? 나아진 게 없어?라고 나에게 실망만 하지 말고, 조금만 시간을 줘 봐.


분명히 너와 다른 불안이지만 여전히 나에겐 불안 요소가 가득하고,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을 가슴에 담고 사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

한 번씩 안전핀이 뽑혀 폭발하는 듯한 엄청난 불안감이 나를 잠식할 때도 있지만 그건 아주 잠시 뿐.


마치 끝까지 훨훨 타오르고 나서 재가 된 것처럼 순간의 감정에 휩싸이고 나서는 다시 얼마간의 평온이 찾아올 때가 있거든. 그래서 차라리 억지로 참는 것보단 터트리는 게 나아.

어중간한 불안보다는 그 불안을 키울 때까지 키워서 터트려 버리는 거지.


뭔 '이독제독'(以毒制毒, 독을 없애기 위하여 다른 독을 씀. 악을 물리치는 데에 다른 악을 삼는 것) 같은 소리냐고? 물론 이 방법은 극단적이야.


불안이 잠식되는 경우는 주로 그 상황이 끝나고 나서일 확률이 높으니까 시간이 지나 봐야 아는 건데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해 불안이 너를 잠식하게 될 때는 차라리 터트려 버리라는 거야.


그렇게 터지고 나서 드는 생각은

별일 아니다


그래, 별일 아니야.

근데 참 학습이 안된다 그렇지?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진다는 현자 같은 말을 하려는 건 아니야.

다만, 불안은 언제든 다시 올 수 있고, 나를 집어삼킬 수도 있는데 그게 영원하진 않아.


너는 너로서 온전할 수 있어.

지금 이 편지를 쓰는 나처럼. 그것만은 잊지 말았으면 해.


from 불안이 일상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나에게.



* 함께 읽고 싶은 책


http://aladin.kr/p/Uyhq6

이 책은 <불안과 억압>의 키워드와 관련된 프로이트의 여러 논문이 실려 있어. 그중 "억압, 증상 그리고 불안"이라는 제목의 논문은 1926년도에 발표했어. 그전에도 '불안' 관련 문제는 꾸준히 논의하다가 이 논문에서 자신의 견해를 다시 고찰해서 탄생시켜.


병리적인 부분은 조금 어려울 수 있는데 불안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과 개념 등에 대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어서 한 번쯤 내 불안이 어디서 왔나? 궁금해할 때 보면 참고가 될 책이야.


모든 인간(인간의 경우에는 어느 경우에나)이 겪어야 하는 불안의 첫 번째 경험은 출생인데, 객관적으로 말하자면 출생은 어머니로부터의 분리이다. 그러므로 출생은 어머니의 거세(아이를 남근과 동일시함으로써)에 비유될 수 있었다. 그런 만큼 불안이 분리의 상징으로서 뒤이어 분리가 일어나는 모든 경우에 반복된다면 매우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는 출생이 어머니로부터의 분리로서 주관적으로 경험되지 않는다는 사실- 왜냐하면 태아는 완전히 자기애적 존재여서 대상으로서의 어머니의 존재를 전혀 알지 못하므로- 때문에 그 상호 관계를 이용할 수 없었다.
- 프로이트, <불안과 억압> p.269.


불안은 느껴지는 어떤 것이다.
느낌으로서의 불안은 매우 현저하게 불쾌한 특성을 지닌다. 하지만 그것이 불안 특성의 전부는 아니다.
불안은 불쾌한 특성 외에 다른 어떤 분명한 특성들을 지니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과연 이 여러 가지 불쾌한 정서 사이의 차이점을 알아낼 수 있을까?
- 프로이트, <불안과 억압> p.270.


불안은 원래 위험한 상태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나며, 그런 상태가 재발할 때마다 다시 생겨난다.
- 프로이트, <불안과 억압> p.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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