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바꾼 아이가 있었다. 아이의 엄마는 바꾼 이름을 자주 불러 주어야 한다고 했다. 만 번은 불려야 자기 이름이 되고, 새롭게 바꾼 뜻이 자기 것이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때부터 평소 같으면 그냥 2인칭이나 3인칭을 썼을 법한 순간에도 꼭 신경 써서 그 아이의 이름을 불러 주었다. 빨리 만 번을 채워서 좋은 새 이름을 가지라고. 그렇게 이름을 부를 때마다, 새 이름의 뜻처럼 그 아이의 존재가 더 뚜렷하고 행복해지길 무의식 중에 바랐다.
이름을 마치 물건의 라벨처럼 사람을 구분하는 표식 정도로 여기기도 하지만, 나와 조금이라도 관계가 형성된 사람, 특히 나를 아끼는 사람이 불러주는 이름은 아무래도 특별하게 들린다. 뜻 지에 고울 연. 자기 뜻을 가진 아름다운 사람이 되라는 의미를 가진 이름이, 타인의 입을 통해 불리며 다시 한번 세상에 새겨지는 느낌이다. 그래서 2인칭을 써도 될 때, 굳이 이름을 부르는 다정함이 좋다.
5월 24일 자 뉴욕타임스 1면은 사람의 이름으로 가득 메워졌다. 미국의 코로나 19 사망자가 10만 명에 육박했고, 이는 막대한 손실이라는 헤드라인 아래, 부고 기사를 일일이 찾아 1000명의 사망자 명단을 게시했다. "그들은 단순히 리스트 속의 이름들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라는 문장이 마음에 박혔다. 이렇게 이름을 불러줄 때, 그들은 10만 명이라는 숫자 뒤에 가려지는 대신 잊히지 않는 개별적인 존재가 된다.
각자의 세계에서 중심은 당연히 우리 자신이지만, 누군가의 이름을 부를 때 그 사람은 바깥의 타자가 아니라 나의 세계 안에서 의미를 가진 존재가 된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내가 아닌 다른 세계를 소환하고 두 세계를 연결하는 일이다. 어떤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일은 어쩌면 이름을 불러 존재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닐까.
그래서 윤동주의 <별 헤는 밤>에서,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보겠다'며 아이들과 이웃과 동물과 시인의 이름들을 나열하는 그 부분이 참 좋다. 이름을 하나씩 부르는 것만으로 아름다운 시가 되고, 이름의 주인들은 누군가의 밤하늘에서 별이 된다.
이름 부르는 것 가지고 너무 거창한 소리를 했다 싶은데, 하고 싶었던 말은 사실 별 것 아니다. 그냥, 좋아하는 사람들이 다정하게 내 이름을 부르고, 그들의 이름이 내 입 속에서 울리는 순간이 좋다는 것. 또박또박 소리 내어 부르고 싶은 이름들이 입가에 맴도는 날이다. 그리고 그건 어쩌면 내가 아는 세상 속에 당신을 더 깊게 새기고 싶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