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기대된다는 말

일상을 버티게 하는,

by 김지연

오래전에도 김보희 작가의 푸른색을 좋아해서 한참 마음에 담았었는데, 이번 여름에 금호미술관에서 열린 대규모 전시를 보고는 그의 초록색까지 좋아졌다. 푸르르고 또 푸르른 전시였다. 커다란 숲 그림과 바다 그림이 함께 있는 3층 안쪽 전시실은 공간 그대로 제주여서, 시원하면서 약간 습한 바람마저 느껴졌다.

그 커다란 그림을 보면서 호크니를 생각했다. 호크니의 작품을 워낙 좋아하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가 사랑스러운 지점은 80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호기심을 품은 채 그치지 않고 그린다는 거였다. 매일 똑같아 보일 수도 있는 풍경에서 매번 다른 점을 포착하고 그 면면을 그려내는 것, 그건 여전히 살아 있는 마음과 반짝이는 눈을 가져야 할 수 있는 일이다.

같이 전시를 보고 있던 친구에게 말했다. 우리도 그런 작가들처럼, 계속해서 멋지고 좋은 걸 만들면서 재밌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러자 친구는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우선 튼튼한 사람부터 되자고. 거의 20년째 보고 있지만, 매번 이런 순간에 현명함이 빛나는 친구다.

친구랑 장난처럼 약속한 게 있다. 친구는 1년에 잎이 하나 정도 올라오는 에둘레 소철을 키우고 있는데, 얼마 전 세 번째 잎이 돋아났다. 우리가 아는 소철처럼 풍성하게 크려면 30년은 더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소철이 풍성해지는 날 파티를 열기로 했다. 그 친구는 그즈음까지는 마당이 있는 집을 어떻게든 마련할 거라고 했고, 우리는 이왕이면 캠프파이어를 열고 춤도 추자고 했다.

머나먼 미래지만 어쩐지 그 날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때까지 우리가 각자의 방식으로 자기만의 이상함을 지키면서 잘 살고 있기를, 캠프파이어를 열고 춤을 출 정도로 몸과 마음이 건강하기를, 또 여전히 눈이 빛나고, 예쁘게 웃고 있기를.

태원준 작가의 책에서, 한 번도 제대로 여행을 떠나본 적이 없었던 작가의 어머니는 아들과 떠난 세계 여행 중에 그런 말을 한다. 엄마는 살면서 처음으로 내일이 기대된다고. 다른 재밌는 에피소드도 많은 책이었지만, 나는 그 부분에서 마음이 말랑해졌기에 늘 그 이야기가 가장 먼저 기억난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적어지는 분기점을 지난 때에도 여전히 내일이 기대되는 하루를 산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가슴 뛰는 일이다.

나는 요즘 매일 내일이 기대된다. 여러 가지 이유다. 일도 있고, 사람도 있고, 그냥 내일의 날씨도 있다. 다음 날을 기대하지 못하고 살아낸 어떤 시간들이 가엾기도 하지만, 그때 버텨냈기 때문에 이런 날도 올 수 있었을 거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종종 괜찮지 않은 날은 조금 더 버티면서, 계속해서 내일이 기대됐으면 좋겠다. 그런 날들이 차곡차곡 쌓이면 언젠가 소철이 있는 정원에서 파티를 벌이는 날도 올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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