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고 낯선 것에 도전하는 것을 어렵게 느끼는 어른들은, 원래부터 그랬던 사람들이 나이를 먹어 정도가 심해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으로부터 십 년도 넘게 지난 지금, 낯선 것을 점점 어렵게 느끼고 미리 스트레스부터 받는 겁쟁이가 바로 여기 있다.
그래 봐야 삼십대라, 여전히 다른 사람들보단 새로운 것에 잘 덤비는 것 같지만, 예전과 많이 달라졌음을 스스로 자주 느낀다. 내가 이렇게 될 줄이야. 게다가 무언가나 누군가를 책임져야 할 때면 어깨가 더욱 빳빳하게 움츠러든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강해짐과 약해짐을 동시에 느끼는 일인가 보다.라고 엄마와의 여행을 준비하며 생각했다.
엄마와 여행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힘든 일이다. 각자의 의지와 취향이 다른 두 성인이 오랜 시간 동안 함께 붙어 있어야 한다는 것만으로도 쉽지 않지만, 세상의 모든 모녀라면 알법한 엄마와 딸 간의 투닥거리는 신경전, 게다가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나이 든 엄마의 체력과 취향을 고려하며 동선을 짜고 식사를 해결하면서 일정을 책임지는 것, 거기에 짐꾼과 사진기사를 더하는 것이란.(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엄마와 함께 하는 긴 여행이 여러 번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겁을 집어먹게 되는 이유다. 일정이 꼬일까 봐, 타지에서 위험할까 봐, 엄마의 체력이 떨어질까 봐, 그리고 무엇보다 내 체력이 방전될까 봐, 늘 걱정이 산더미인 나는 항상 출발 전에 쫄보처럼 계획을 짜고 확인을 거듭한다.
한 번은 마카오와 홍콩, 대만까지 꽉 찬 열흘에 이르는 자유여행이었다. 길을 잘못 들어 야밤에 한 시간이나 뱅글뱅글 돌며 헤매기도 했고, 엄마에게 몇 번 화를 냈고, 그 와중에 한 차례 심하게 방전이 되었고, 엄마의 무릎 때문에 가보고 싶은 곳을 몇 군데 포기했다. 늘 그렇듯이 나중에 혼자 다시 와야지, 했지만 사실 나도 긴 시간을 내기는 쉽지 않아 언제가 될지 기약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다녀왔다는 생각이 든 건, 홍콩의 어딘가에서 신나서 손을 흔들며 걷던 엄마의 뒷모습을 찍은 사진 때문이었다. 나는 다시 오겠다고 기약할 수 있지만, 엄마는 언제 또 이 곳에 와볼 수 있을까. 매번 또 다른 나라를 가보고 싶다는 그녀의 욕심으로 헤아려보건대, 아마도 나와 갔던 먼 곳들은 모두 이번 생에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딱히 비장한 표정을 짓진 않았지만, 아마 엄마 자신이 나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여행을 다녀올 때마다 엄마의 마음이 조금씩 건강해졌던 것을 기억한다. 불과 몇 년 전의 엄마는 햇살 좋은 리스본 하늘 아래서도 활짝 웃을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웃는다고 웃었지만 어쩐지 어색한 미소였다.
그래서 몇 년 전 나는 세계지도가 그려진 그림책을 선물하며 아프리카든 남미든 갈 수 있는 곳은 언젠가 모두 가보자고 했다. 내가 함께 가주겠다고. 탄자니아 잔지바르의 노을이 그렇게 아름답다는데, 한 번 보고 죽어야 하지 않겠냐고 호언장담을 했다. (사실 그러면서 겁부터 났다.)
내일이 더 멋질 거라는 희망이 있을 때 사람의 마음은 다시 살아 움직인다. 엄마는, 내가 어떻게 거기까지 가보겠냐고 웃어넘겼지만, 그 날 이후 내년의 여행을, 내후년의 여행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언젠가는 조지아에서 와인을 마시고, 언젠가는 남프랑스에서 한 달을 살아보고 싶다 했다.
언제까지 엄마와 여행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엄마는 더 늙고 다리가 아플 것이고, 나는 더욱 바빠질지도 모른다. 엄마를 책임지며 낯선 곳을 여행하는 것은 매번 어렵고 겁이 난다. 게다가 지금은 멀리 여행을 떠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신이 나서 양 손을 머리 위로 흔들며 걷는 발걸음, 눈부신 바다를 황홀하게 바라보는 뒷모습, 과감하게 꽃무늬 옷을 집어 들던 손, 눈을 찡긋하며 활짝 웃는 얼굴을 떠올리면, 나는 아마도 다시 여행가방을 싸고 엄마의 손을 잡지 않을까. 그게 먼 여정이 아니라 주말의 바다, 오후의 산책이 될지라도.
여행을 다녀올 때마다 매번 생각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아는 것도 책임질 것도 많아져서 겁이 점점 늘어나는 것이라, 겁이 없는 어른은 오히려 어른이 아니라고. 다만 지켜야 할 것이 많으면 겁나서 쪼그라든 마음이라도 끌어안고 덤비고 견디는 것이 아마도 어른일 것이라고. 나는 여전히, 아니 점점 더 겁이 많고 서툴어지겠지만 그래도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