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프로젝트의 회고 미팅을 가졌다. 이 프로젝트는 디자이너이자 기획자로 일해 온 20년 지기 친구와 글을 써온 내가 각자 하고 싶은 걸 시도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다.
우리는 잘못된 것, 잘한 것, 앞으로 해야 할 것을 한참 나누고 헤어졌는데, 정작 서로에게 수고했단 말은 하지 않았다는 걸 자기 전에야 깨달았다. 사실 그게 제일 중요한 말이었는데. 잊지 않기 위해 메모해두고, 일어나자마자 전했다. 간단한 말이지만 지금 해야만 의미 있는 말이니까. 친구에게 돌아온 짧은 말이 든든하고 따뜻했다.
나는 늘 표면적으로 일과 효율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처럼 구는데, 결국 마지막 선택은 사람과 관계다. 그래선지 어제는, 사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아 걱정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건 바로 전날 다른 친구에게 들었던 말과 거의 비슷한 얘기였다. 부정할 수는 없다. 마주한 사람에게 관계의 주도권을 넘겨주는 편이고, 이리저리 기울고 흔들리곤 한다. 때때로 내 영역을 침범당해 위험할 수 있는데, 대체로 알면서 흔들리는 편이다.
꼿꼿하게 서 있으면 내가 존재하는 영역은 딱 서 있는 영역, 거기뿐이다. 하지만 바람에 조금씩 흔들리면서 사방으로 기웃거리면 움직이는 그 폭이 모두 내 것이 된다. 타인에게 기우는 만큼 내 세계가 더 넓어지는 셈이니 괜찮다고 생각한다. 정말 위태로운 순간, 혹은 내가 원할 땐 내 자리로 돌아와서 회복할 수 있으면 무엇이든 괜찮다.
그래도 넌 정말 좋은 사람이라며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내 손을 꼭 잡아 주거나 안아주는, 때로는 눈빛이나 목소리의 톤, 그날의 분위기로 등 뒤를 감싸주는 친구들은 정말 소중하다. 알아 온 시간, 나이, 관계의 종류와 상관없다. 어제도 그런 친구들 덕분에 돌아오는 길이 따뜻했다. 그렇게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면서 나를 염려해주는 사람들 덕분에 흔들리는 내 삶은 전혀 위태롭지 않다.
오늘 내 친구는 우리 엄마를 만나겠다고 양손 가득 와인을 들고 찾아와서는 엄마와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갔다. 다음엔 와인만 두고 가지 않고 사람도 남겠다며. 오늘은 예의 차리느라 양말 신었지만 담엔 맨발로 오겠다며. 그러고 보면 이 친구는 언젠가 시험기간의 어느 날, 내 생일이라고 빗 속을 뚫고 미역국을 가져온 것처럼, 그날 표현해야 하는 마음을 잊지 않고 표현해왔다. 그 작고 가벼운 것들이 단단하게 이 오랜 관계를 지탱한다.
별 것 아니라도 내 곁에 오늘의 마음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다행이다. 그들의 조각이 내 삶에, 마음에 남아 떠올리기만 해도 배시시 웃음이 나는 순간들을 만든다. 그 솔직한 마음만 되새겨도 하루치 행복이 넘쳐나기 때문에, 때때로 그렇지 않은 날들이 있어도 괜찮을 수 있다.
친구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네게 호의적이지 않은 사람에게 호의를 전해서 굳이 그 사람의 자존감을 높여줄 필요가 있냐고. 그게 꼭 너여야만 하냐고. 하지만 누군가의 자존감이 높아진다고 내 자존감이 낮아지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세상에 자존감의 총량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나와 알게 된 탓으로 누군가의 마음이 더 나아진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은 일 아니겠냐고 했다. 이로써 오래된 친구들이 놀리는 별명은 더 늘어났지만 말이다.
지난 삶에서 이미 배웠다. 특정한 순간들은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는다. 과거의 사건을 마음속에서 재정의할 수 있을지언정, 실제로 행동하고 표현하지 못했던 순간들은 분명 후회로 남는다. 몇 가지 후회들을 이미 짊어진 나는, 아마 앞으로도 만나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많이 받고 또 기울고 흔들릴 거다. 그러면서 가능한 한 순간순간을 표현하고 싶다. 언젠가 제자리로 돌아올지라도, 표현한 것들은 사람의 마음에, 혹은 내 기억에 남는다. 오늘의 마음이 오고 가는 그 틈새에서 우리의 관계는 확장된다. 그리고 우리가 존재하는 범위도 그만큼 더 넓어질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