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날들도
일상이 모여 이루는 삶의 지층
마음이 눅눅해지고 뭐든 다 부질없어 보이는 날이 한 번씩 있다. 의욕도 용기도 어제까지 다 꺼내 썼는지 바닥을 보이는 날. 산다는 것을 딱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가, 이렇게 마음이 멈추는 날에는 괜히 한 발짝 멀리서 내 삶을 관조하게 된다. 제대로 잘 살고 있는지, 얘 도대체 뭐 하고 있는지, 찬찬히 뜯어보다 슬며시 가라앉는다.
걷는 것과 비슷하다. 평소엔 걷는 순간을 특별히 인지하지 못하다가 어딘가가 아프면 그 부분의 움직임이 생생하게 느껴지고, 몸이 움직이며 걷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선명하게 새긴다. 걸음이던 삶이던 우리는 아프고 모난 순간에 현상을 도드라지게 느끼고 기억한다. 특별한 무엇이라도 되는 것처럼.
가볍고 웃기는 영화는 몸이 지쳐서 힘든 날엔 적당히 쓸모 있지만, 이런 날엔 딱히 역할을 못한다. 이럴 땐 삶의 얼굴을 드러내고, 그 얼굴을 가린 머리칼을 다정하게 쓸어 올려 주는 듯한 영화가 더 위로가 된다.
영화 <보이후드>는 제목처럼 주인공 메이슨의 유년기를 담는다. 6살이었던 어린 소년은 감당하기 어려운 난관에 부딪히기도, 그 나이 또래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사소한 장애물들을 넘기도 하고, 지나고 나면 잊힐 평범한 날을 보내기도 하면서 18살로 성장한다. 링클레이터 감독은 성장하는 소년의 모습을 영화 속에 그대로 담아내기 위해, 12년 동안 이 영화를 제작했다. 같은 배우와 스태프들이 매년 만나서 15분 분량을 촬영했고, 그렇게 완성된 12개의 시퀀스가 <보이후드>를 구성한다.
영화는 1년을 상징하는 하나의 시퀀스라고 해서 대단히 함축적으로 많은 것을 담지 않는다. 게다가 소년의 기억에 깊이 흔적을 남길 만한 커다란 사건이라고 해서 특별히 시간을 더 할애하지도 않고, 시간이 지나면 금방 잊힐 만한 작고 평범한 일과라고 슬쩍 넘어가지 않는다. 모두 평등하게 그러나 각 장면 안에서는 충실하게 표현한다.
마치 흘러가는 1년 중 어떤 순간을 뚝 잘라내서 가져온 것처럼 표현한 장면들은, 영화 속 장면에 집중하는 감각을 프레임 밖으로 분산시킨다. 너무 무심하게 잘라 온 조각의 단면 덕분에 오히려 전체와 흐름을 상상한다. 감독은 관객에게, 프레임 밖에서도 소년의 삶이 지속될 것이라는 확신을 새겨주며, 12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데에 성공했다. 그 사이 소년은 영화 속에서도, 실제로도, 훌쩍 자라 어른이 되었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도, 우리가 보지 않아도, 메이슨의 삶은 계속해서 흐를 것이다.
우리는 삶에서 특별한 사건과 강렬한 감정을 기억하지만, 사실 삶은 그 사이를 촘촘하게 잇는 일상의 순간들로 구성된다. 그리고 사소하고 평범한 것, 때때로 조금 특별해 보이는 것, 아프거나 기뻤던 것, 때론 인지도 못했던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한 사람의 무늬를 이룬다. 하나라도 빠진다면 지금의 그 사람이 아닐 테다. 그런 의미에서 매일의 순간은 모두 동등하게 한 사람의 무늬를 이루는 조각들이다. 그리고 지금도 그 순간들은 쌓이고 있다. 잔잔한 이 영화에서 삶의 경이를 느끼는 이유다.
부질없다고 생각하는 일들도, 그런 생각을 하느라 마음이 처졌던 시간도,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적어져서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날도, 심지어 자전거 페달을 뒤로 밟는 것 같은 오늘도, 꽤 좋은 날들과 동등한 삶의 순간이다. 기억할만한 사건이 없고 무감각한 날에도 미처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무언가 느끼면서 또 하나의 삶의 시퀀스가 만들어지고 있을 거다.
그리고 시퀀스가 모여 영화를 이루는 것처럼, 일상의 장면이 모여 한 사람의 지층을 이룬다. 삶은 그 위에 다른 지층을 쌓으며 멈추지 않고 지속된다. 그러니 유난히 힘들다고 느끼는 날도 내 무늬를 이루는 어떤 순간일 뿐, 삶을 무너뜨리는 특별한 어려움은 아닐 거라고, 이런 날도 저런 날도 있어야 지층의 무늬가 예쁠 거라고, 조금 모나고 거친 날이라도 시간이 흐르면 그 위에 수많은 지층이 쌓일 테니 괜찮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