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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y Jan 11. 2021

스위치를 끄는 순간

항상 필요한,

휴가가 필요했다.

지난달, 많은 일을 무사히 다 해냈지만 완전히 소진되어서 멈추는 시간이 꼭 필요했다. 다들 잘하고 있다지만, 어른스럽고 멀쩡한 척 지내고 있지만, 나라고 못해먹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없는 건 아니다. 예술 뭔지 모르겠고, 사는 거 뭔지 모르겠고, 이대로 살아도 될까, 라는 생각을 하루에도 몇 번씩 번갈아 하는 걸 뭐. 그래서 올해 처음으로 노트북을 두고 집을 떠났다.

도착하면 자연스레 와이파이가 연결되고 어제 빨아 놓은 이불이 깔려 있고 샤워를 하고 나서 드라이어를 바로 찾을 수 있는 곳. 내가 당연하게 존재해도 되는 자리가 우리 집 외에 또 있다는 건 사람을 여유롭고 말랑하게 만든다. 언제든 와서 있고 싶은 만큼 있다 가도 된다는 말에 한없이 기대고 싶은 날도 있다. 누군가는 왜 바다를 보지 않고 왔냐고 하지만, 내게는 언제든, 있고 싶은 만큼, 이라는 너그러운 조건이 붙은 이 방이 바다보다 더 넓고 자유롭다.

노트북을 두고 왔다는 건 어마어마한 주문이었다. 최근 평균 수면 시간이 5시간 반을 넘지 못했던 나는, 여기 와서 내내 잠을 잤다. 낮에는 누워서 넷플릭스를 보다가 잠이 들었고, 12시가 되기 전에 또 졸았다. 아침에 깨면 조금 뒹굴거리다 다시 잠이 들었고, 화상회의를 하는 친구 곁에서 놀다가 또 낮잠을 잤다.

밤에는 별을 봤다. 밤이 되면 불을 끄고 창문을 열었고 몸이 차가워져서 창문을 닫아야 할 때까지 물끄러미 별을 바라봤다. 매일 밤이 그렇게 작고 은은하게 빛났다. 여기 사는 친구는 밤에 별이 그렇게 보이는지 몰랐다는데, 어쩌면 그도 밤하늘 한 번 쳐다볼 만큼의 여유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다음날 내가 찍은 사진에서야 별을 봤다. 우리에게 한없이 편안한 여유는 언제 생기는 걸까. 다 늙고 지친 뒤에 생기는 건 너무 슬프지 않나.

아무튼 여유가 생기자 드디어 바빠서 잊었던 일들이 생각났고, 문득 보고 싶은 얼굴들이 떠올랐다. 조금 슬펐다. 누구의 잘못인지 모르지만 어그러져버린 관계들, 어쩌면 내 잘못인지도 모를. 혼자 있었다면 무너졌겠지만, 내게 계속해서 무용한 이야기를 건네는 친구 덕에 괜찮을 수 있었다. 나는 또 여기서, 울지 않았는데도 실컷 울고 난 기분이 들었다. 친구끼리 꼭 마음의 빚 가질 필요 없단 거 아는데, 이런 날들을 보내고 나면 또, 내가 살면서 이 빚을 다 갚을 날이 올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거기 있는 동안 몇 신지 어딘지 알 수 없는 느낌으로, 창문을 통해 빛이 들어오는 방향의 변화로 시간의 흐름을 가늠하면서, 이불 위에 엎드려 수영하는 소설을 읽었다. 케이트와 로즈메리가 수영을 통해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고 서로에게 기대는 과정을 쓴 <수영하는 여자들>은, 예전에 읽은 <J.M. 배리 여성 수영 클럽>을 떠올리게 했다. 그걸 읽었을 때도 겨울이었는데, 다시 수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는 지금도 겨울의 초입이다. 찬물에서 수영하는 감각은 이상하게 사람을 고양시킨다. 나도 얼음연못에서, 야외의 수영장에서 시간 같은 건 개의치 않고 천천히, 아무 방향으로나 헤엄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수영은 한 번 배워 두었으면 몸이 기억한다고 했으니까.

두 소설에서 돋보였던 것은 우정이었다. 등장인물들은 서로 다른 삶이지만, 다른 상황을 겪고 있지만, 수영이라는 매개를 통해서 서로에게 어깨를 기댄다. 늘 그런 관계가 부럽다고 생각했는데, 내 곁에도 존재한다는 걸 알았다. 드러낼 수 없는 어려움이 있을 때, 내용을 말하지 않고도 가만히 어깨를 기댈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단단하지 못해서 단단함을 다짐하기 위해 이렇게 글을 쓰는 나를, 내 곁의 친구들이 지탱해준다.

내리 잠만 잔 휴가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왔다. 일주일을 쉰 요가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저 운동일 수도 있지만, 이 요가와 함께 하는 사람들 역시, 이 흔들리는 삶을 지속하게 해주는 용기다. 그래서 있고 싶은 만큼 있으라는 친구의 말을 뒤로하고 다시 돌아왔다.

저녁을 먹는데, 듣던 노래 사이로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가 희미하게 겹쳐 들렸다. 나는 그제야, 지난달 마감하는 동안 듣던 플레이리스트를 휴가 내내 그대로 들었단 사실을 깨달았다. 오른손으로 달칵, 이어폰을 눌러 껐다. 오래된 노래지만 새롭게 귀에 들어왔다. 세상은 언제나 귀를 연 만큼 새롭다. 그리고, 스위치를 끄는 순간은 항상 필요하다. 어쩌면 다시 말해야 하는 순간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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