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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y Nov 01. 2020

수덕사 가는 길

엄마의 처음,

엄마는 수덕사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어린 시절 우리 가족은 주말마다 어디론가 떠나기 바빴다. 그러다가 마치 어떤 운명의 시간이라도 다가오는 것처럼, 나와 동생, 엄마가 차례로 방학을 맞이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아빠의 휴가까지 더해서 남쪽으로, 더 남쪽으로 떠나곤 했다. 그 시절 내 눈에 엄마 아빠는 믿음직한 여행 전문가이자 용맹한 오프로드의 제왕으로 보였다.

그래 서였나보다. 엄마가 당연히 나보다 많은 곳을 다녀 보았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 수덕사를 가본 적 없다던 엄마가 이어서 말했다. 너처럼 나도 그때, 처음으로 여행을 다녀보았던 거라고. 생각해보면 그들은 오프로드의 제왕이 아니라, 생에 처음 여행을 떠날 여유가 생겨서 아이들을 데리고 지도책 하나에 의지해 용감하게, 혹은 약간의 두려움을 안고 떠났던 내 또래의 젊은 부부였던 거다.

몇 년 전, 이십여 년만에 서울로 돌아온 엄마는 이 도시의 이모저모를 매번 내게 물었다. 엄마는 나보다 서울에서 산 시간이 한참 더 길었지만, 어릴 때부터 살던 동네와 대학과 직장 근처만 알고 있었다고 했다. 서울을 구석구석 들여다보고 놀러 다닐 기회가 없었다고. 수덕사를 가본 적이 없다던 엄마의 말에, 서울이 꽤 낯설다던 그때 그 말을 기억해냈다.


내게 처음이었던 여행이 엄마에게도 처음이었다는 것 역시 이상한 기분이지만, 내가 먼저 경험한 것을 그가 뒤늦게 만나는 것은 더 무거운 느낌이다. 나는 왜 엄마도 당연히 수덕사에 가보았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세상 누구보다 가까운 가족이라곤 하지만, 엄마와 나의 시간은 26년이나 간격을 두고 흘러 왔다. 나는 종종 26년 후의 미래를 사는 인간의 잣대로, 혹은 부모님이 내게 마련해준 포근한 유년기를 기준으로 그들의 삶을 상상해보는데, 얼마나 무지하고 잔인한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엄마가 한 번도 가본 적 없다던 수덕사에, 나는 오래전 답사의 기억이 있었다. 그때와 같은 길을 걷는데, 절 입구에는 입장권을 받는 할아버지가 한가롭게 졸고 계셨고, 오르는 길에는 산수국이 막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렇게 많은데도 그땐 눈에 보이지 않았다. 수덕사 아래의 수덕여관에는 이응노 화백의 유지에 따른 미술관이 현대적인 모습으로 생겨났다. 익숙하지만 한편으론 전혀 새로운 풍경이었다.

야트막한 중턱에 자리한 경내엔 별다른 그늘이 없었고 햇살이 무척 뜨거웠지만, 대웅전까지 난 계단을 살살 올라 보았다. 어쩐지 13년 전 수덕사 대웅전의 오른편에 서서 맞배지붕의 처마 아래를 바라보며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짙게 남아 있기 때문이었는데, 그때와 똑같은 자리에 서자 왠지 내가 겪었던 일이 아주 오래된 것처럼 느껴졌다. 13년도 그렇게나 긴데, 무심하게도 26년의 간격을 못 본 척하는 게 인간이다.

나는 13년이나 26년 따위는 무색할 정도로 오래된, 7백 년이 넘는 시간을 지나 온 대웅전의 기둥 옆에 서서 뒤편 관음전에서 울리는 목탁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관음보살상에 살짝 고개를 숙였다. 언젠가 여전히 건강한 엄마와 이곳을 다시 방문할 수 있기를, 그땐 처음이라는 말 대신 '오래전 그 날 좋았지.'라고 할 수 있기를.

한 여름, 엄마와의 1박 2일은 아마도, 그렇게 부드러운 초록빛과 그 아래 낮잠 자던 고양이의 보송한 털과 숲 속의 나무 향기, 그리고 안개로 희미한 아침 풍경과 막 피어나던 산수국, 나무가 만든 터널 사이를 걸으며 목 뒤로 살짝 흘러내리던 땀방울의 감각 같은 것으로 기억될 거다.


집에 도착하니 허리가 다시 아팠지만, 왕복 400km를 운전한 나이 든 엄마는 아마 더 많이 힘들었겠지, 싶었다. 하지만 엄마는 이틀 내내 힘든 기색을 비치지 않았다. 나는 이미 지금껏 살아온 것만으로도 많이 받은 것 같은데, 이렇게 또 따스한 빚이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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