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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y Nov 01. 2020

각자의 평범한 특별함

우리는 그걸 몰라서,

요즈음 마치 그럴 시기가 찾아왔다는 듯이, 자연스레 오래 전의 관계들이 다시 연결되고 있다. 몇 년 만에 연락이 닿아도 마치 며칠 전까지 연락했던 것처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이가 이렇게 많았다니. 마음이 작아져서 웅크리고 있던 시간이 무색하다 싶다가도, 또 지금이 되었으니까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풋풋하게 빛나던 때를 함께 했던 사이도 소중하지만, 어떤 시기의 같은 고생을 공유하는 사이는 더욱 애틋하게 소중하다. 자세히 말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지난 시간을 알아주는 사이. 지금은 연락하지 않더라도, 그동안 어떤 마음으로 지냈을지 짐작이 가므로, 잘되었다는 소식이 서로 너무나 기쁜 사이. 좋은 소식을 많이 들은 그날은 어쩐지, 서로 떨어져 있지만 제각각 반짝이는 별들로 가득한 밤하늘 아래 선 기분이었다. 멀리까지 그 빛이 보일만큼, 다들 잘 버텨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다.


서른이 넘어 깨달은 것 중 하나는 인간은 그냥 평범한 존재고 나도 마찬가지라는 것이었다. 남들보다 낫거나 대단하려고 너무 애쓸 필요 없다는 것. 그러나 인간은 모두 다 별 것 아니라는 이야기와, 인간은 모두 고유하게 특별해서 그중 어느 하나가 더 대단한 건 아니라는 이야기는, 동등하다는 결론에선 같지만 그 과정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 종이 한 장 차이지만, 체념과 희망을 가르는 결정적인 차이.


더 잘해 보려고 발버둥 치다가 몸과 마음이 많이 망가진 후에야 평범한 나의 고유한 특별함이 눈에 들어왔다. 동시에 타인의 특별함이 선명하게 가슴에 들어와서, 일상이 더 풍부해졌다.


우리가 겪었던 시간은 그렇게 각자의 빛을 내기 위해 지나온 과정이었을 뿐인데, 어두운 터널에 있을 때는 그것이 세상 전부인 줄 알았다. 그때 우리는 너무 어렸고, 그것밖에 몰라서. 각자 가진 평범한 특별함을 아는 데까지 이리도 오래 걸렸다.

대구에서의 이십 대를 생각하면, 늦은 시간 무거운 책가방을 짊어지고 집에 가던 길이 떠오른다. 지친 채로 어두운 캠퍼스를 걷던 중 멀리서부터 나는 짙은 꽃향기를 맡았는데, 아마도 이맘때의 라일락이었던 것 같다. 그 기억이 오랫동안 위로가 됐다. 이번 봄엔 마스크 때문에 아무 향도 못 맡는 줄 알았는데, 오늘 반짝이는 안부를 가득 듣고 집에 오는 길에는 어쩐지 그 라일락향이 자꾸 따라오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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