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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y Jan 12. 2021

아주 커다란 원을 그리기

가능한 한 천천히 더 멀리

올해 들어 글을 통해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상반된 이야기를 동시에 들어왔다. 누군가는 내 글이 따스하고 포근하다고 하고, 누군가는 거침없이 단호하다고 했다. 글뿐 아니라 사람에 대해서도. 다정하고 편안한 내가 좋다는 사람도 있고, 다가가기 어려워 보였다는 사람도 있었다.

이 상반된 평가는 요즘 가장 고민하는 것과 맞닿아 있다. 더 단호하고 날카로운 글을 쓰기 위해 깊이 공부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고, 그러려면 분야를 좁혀야 하는데, 내가 걸친 것들 중 어느 분야를 선택해 좁혀 나가야 할지 판단이 안 선다. 한편으론 공부를 하는 대신 좀 더 시간적  여유를 확보해서, 다정하고 따뜻한 글로 차근차근 말을 걸어 보고도 싶고, 그걸 다 떠나서 완전히 새로운 글을 구축해보고도 싶다. 어느 하나 놓을 수가 없어서, 어쩌다 보니 때아닌 질풍노도의 시기다.

지금 눈 앞에 보이는 것에 집중해서 곧바로 가까운 결과들을 끌어내야 할 때인지, 해볼 수 있는 것, 해보고 싶은 것을 다 해보고 주변을 더 둘러보며 천천히 가야 할 때인지 모르겠다. 나이나 시간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편이라고 늘 생각하면서도,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둘러 둘러 길을 돌아가기엔 시간이 부족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늘 마음 한편이 시끄럽다. 정체성을 좀 더 확실히 빨리 정립해서 내가 누구라고 한마디로 말하고 싶기도 하고, 가족에게도 조금 덜 기대고 싶다. 때때로 마음이 조급해지는데, 빨리 가다가 뭔가 놓치지 않을까 겁도 난다.

어제는 저녁을 먹다가 문득 이 얘기를 엄마에게 꺼냈다. 내 글이 뭔지 모르겠고 내가 누구인지 잘 모르겠다고. 내 눈 앞에 지금 몇 가지 일이 동시에 있는데 이걸 다 할 수 있을지, 해도 될지, 시간이 있는 게 맞는지 잘 모르겠다고.


엄마는 의외로 담담한 말투로 네가 그렇게 해볼 수 있는 거, 하고 싶은 거, 다 써보고 만들어봤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당장 뚜렷한 길이 보이지 않고 결과가 손에 잡히지 않더라도, 그렇게 둘러서 돌아가며 한 일 모두 결국 너를 크고 넓게 이루는 과정 아니겠냐고 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천천히 멀리 돌아 크게 만들어 가라고. 나는 너의 단호한 글도 다정한 글도 좋아한다고. 그러니 할 수 있는 한 돕겠다고.

저녁에 밀린 작업을 하면서 엄마가 한 말을 다시 떠올렸다. 내가 부여받는 여유는 결국 누군가의 리스크가 된다. 가족에게 리스크를 나눠지게 할 만큼, 그렇게까지 대단한 예술 작업을 하고 있는 걸까. 아니 이제 해야 할까. 엄마는 어째서 저렇게 담담하게 말하는 걸까. 작가라는 불안정한 직업을 가진 자식을 둔 부모가 된다는 건 고요한 담대함을 품게 될 수밖에 없는 걸까. 부모와 자식 관계는 전생에 반대였다던데. 전생 같은 걸 믿지는 않지만, 만약 그런 게 있다면 어쩌면 나는 그때 이 사람의 목숨이라도 구한 게 아닐까 싶었다.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원래 멀티 플레이를 못하는 편이다. 일이든 생활이든 관계든. 그래서 갖고 있는 것을 여러 개로 나누기보다 하나로 통합하려고 늘 노력해왔다. 그래서 최근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여러 가지 내 모습도  빨리 한 가지로 통합하려고 애썼다. 정리되지 않은 것은 불안하니까.


그런데 어쩌면 그게 나를 좁은 곳에 가두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곳곳에서 발견되는 나와 내 글의 새로운 면모를, 조금은 흘러가는 대로 두어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건 예전보다 나 자신에 대한 신뢰가 더 생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믿고 지지해주는 가족, 함께 일하는 동료들처럼, 나를 믿고 내게 자신의 인생 일부를 거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그랬다. 작가는 있는 힘껏 살아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사실 살아 있다는 건 여러 갈래로 움직이고 복잡하게 서로 얽히는 아수라장이다. 그 안에서 따스하고 다정한 글, 거침없이 단호한 글, 또 내 글처럼 그렇게 여러 면을 가진 나를 다 훑어보며, 겪어보며, 낱낱이 알아보고 싶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내가 부여받은 여유와 누군가 나 대신 짊어진 리스크에 견줄만한 무언가가 나올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팔을 뻗어 전부 끌어안고, 힘껏 살아야겠다.

오래전에  오노 요코의 전시에서 갤러리의 흰 벽에 긴 수평선이 그어져 있는 걸 보았다. 그리고 그 아래에 '이 선은 아주 커다란 원의 한 부분이다.'라고 쓰여 있던 것이 기억난다. 다른 작품은 벌써 다 잊어버렸는데, 그 무심한 선과 문장만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종종 떠오른다.


나도 지금 그 선 위의 어디쯤이 아닐까. 지금은 어느 방향 즈음에서 기울어질지, 내 원의 크기가 얼마만 했는지 모르지만, 조금 더 천천히 멀리 돌며 가능한 한 원의 크기를 더 넓히고 싶다. 얼마나 더 가야 할지 목적지가 전혀 보이지 않을 때라도 따스한 손으로 가만히 등을 떠밀어주는 사람들이 있는 한 괜찮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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