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채워 정신없는 하루였다. 실제로 바쁘기도 했고, 시간이 촉박한 일이 있어 마음이 더 바빴다. 그 와중의 어떤 대화는 나를 설명해야 해서 조금 버거웠다. 호의로 이어지는 대화라도 내가 가진 세계와 내 방식을 자꾸 설명해야 하는 건 쉽지 않다. 게다가 서로의 결이 너무 달라서 설명해도 벽에 부딪히고 의미가 평행선을 달리는 느낌은 조금 지친다. 슬프지만 그건 상대의 호의로 메꿔질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서.
저녁엔 일하느라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 버려, 주문해놓고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한 채 차갑게 식은 얼그레이 티와 함께 샐러드를 입에 구겨 넣고 요가를 하러 갔다. 늘 그렇듯 요가는 큰 에너지를 소모했고, 돌아오는 길에는 지하철의 배차간격과 타이밍이 맞지 않아 평소보다 한참 더 걸려 집에 도착했다. 12시간 만에 집에 돌아와 만난 엄마와는 별다른 대화도 나누지 못해 괜히 미안했다.
그저 추워서 검은색 티 위에 앙고라 니트를 겹쳐 입었던 실수는 앙고라 털의 저주로 되돌아와 있었다. 있지도 않은 고양이를 키우는 기분으로 털 제거를 한참 하고 나니, 오래 묵은 추억의 공간이 문을 닫는다는 슬픈 소식이 들렸다. 오늘은 여러모로, 4시간도 못 잔 상태로 보내기에는 살짝 무거운 날이었다.
그래도 생각해보면, 아슬아슬하지만 무사하게 일을 마무리했고, 다음 주를 맞이하기 전 주말에 약간의 틈이 생겼다. 요가가 힘들다는 건 주변 사람들한테 하도 말해서 이제 다시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지만, 그래도 힘든 동시에 평온했고, 사랑스러운 사람들 덕분에 며칠 분량을 한꺼번에 웃었다.
같이 운동을 하는 것도 재밌지만, 이 사람들과 함께 있어 좋은 건 조금 다르다. 뭐랄까, 이들과 함께 있을 때는 내 존재를 힘들여 설명하지 않아도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이 안에서 나는 왜곡되지 않고 안전한 느낌이다. 내가 나인채로 당연하게 존재해도 되는 그 기분은 요가를 끝낸 뒤 찾아오는 평온만큼이나 좋다. 그리고 각자 다른 캐릭터로 귀여운 사람들, 자기 빛깔로 선명하게 빛나는 사람들은 언제나 예쁘다.
운동을 마치고 충전해두었던 폰을 열었더니 보고 싶다는 말이 도착해 있었다. '보고 싶다'는 네 글자에 담긴 마음과 솔직한 표현도 너무 좋았지만, 신기했던 건 나도 오늘 바쁜 와중에 그 친구를 생각했다는 것!
보고 싶다는 말은 언제 들어도 달달하고 포근하다. 알면서도 자꾸 속으로만 생각하고 말할 타이밍을 놓치거나 새삼스러워 못하곤 하는데, 그걸 전할 수 있는 건 따뜻하고 용기 있는 마음이다. 솔직하게 지금의 감정을 전해주는 게, 지친 마음을 사르르 녹인다는 걸 타인의 말을 듣고서 다시 깨닫는다.
보고 싶다는 말을 더 많이 하고, 가능하다면 지금 하고, 오늘의 마음을 더 많이 표현해야지. 조금 지쳐서 무딘 상태로 지나 보낼 수도 있는 좋은 순간들, 곧 사라지면 만나지 못할 순간들을 놓치지 말고 꼭꼭 씹어서 기억하고 담아둬야지. 그리고 주말엔 엄마와 영화라도 한 편 함께 봐야지.
그러고 보면 이번 주는 컨디션도 나쁘고 엄청 바빴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보고 싶은 이를 만났고, 신나는 일을 꾸미고 미래를 작당했고, 마음을 담아 꼭꼭 눌러 편지도 썼고, 있는 그대로의 나로 편안한 대화도 많이 나눴고, 사랑하는 친구와 오랜만에 통화했고, 내 글을 소중하게 읽어주는 사람들과 이야기할 수 있었고, 자기 자리에서 진심으로 노력하는 사람들과 일하는 행운을 누렸고, 살짝 부족했지만 그래도 계획한 일들을 무사히 마쳤다.
게다가 보고 싶고 궁금했던 사람들과 만날 날을 기약했다. 보고 싶단 말과 곳곳에 숨은 사랑의 표현들로 하루의 마음을 녹였다. 또 이렇게 내일이 궁금하고 기대된다. 크고 작은 사랑을 주고받으며 마음이 자란다. 나는 그대로 나여도 괜찮다.
힘들고 지친 한 주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현재를 살 때는 유난히 자기를 알아달라고 앞으로 튀어나오는 힘든 일들만 눈에 띄는데, 가만히 돌이켜보면 잔잔하지만 확실하게 일상을 떠받치는 좋은 순간이, 든든한 마음들이 있다. 급하게 관심을 요하는 힘든 것들의 푸념에 잠시 속아 잠자코 뒤를 지키는 좋은 것들을 자꾸 잊는다.
당연해서 더 잊기 쉬운 그걸 하루의 끝에, 일주일의 끝에 겨우 깨닫는다. 이번 주의 날들을 잘 담아 두었다가 한참 뒤에 꺼내 보면 분명 엄청 행복한 한 주였다고 기억할 테다. 이 글을 쓰다가 마무리하는 지금, 그런 확신이 마음의 수면 위로 둥실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