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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y Apr 19. 2021

사랑한다는 말

짐작하는 마음


내 생각났다며 갑자기 보내주는 사진이 좋다. 좋은 걸 본 기분을 너도 느꼈으면 좋겠다며 보내는 메시지, 아니 마음. 내가 없는 순간에도 나를 떠올렸다면 그 사람의 마음 어딘가엔 나의 방이 작게나마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린 서로를 좋아해도 전부는 몰라서, 모를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한 채 다가가는 게 최선의 예의다. 그래서 오히려 미처 건네지 못한 마음을 슬쩍 짐작하는 상상력이, 과감하게 선을 넘는 표현이 가끔 필요하다.


너무 모른다면 섣부른 넘겨 짚기겠지만, 가까운 사이에서의 짐작은 영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다. 상대를 충분히 지켜보고서야 할 수 있는 합리적 짐작이다. 때론 좋아하는 걸 좋아한다고, 원하는 걸 원한다고 말하지 못하거나, 속이 뭉개져도 다 말할 수 없는 날들도 있으니까. 그렇게 서로 알아채는, 또 건네는 사랑한다는 말은 소리도 모양도 다양하다.

하지만 이미 다 안다며 노력을 멈추고 짐작만 하면 그건 어느새 날 선 부메랑이 되어 관계를 상처 입힌다. 사랑은 마음에 고인 웅덩이가 아니라 머리와 가슴과 시선과 손길이 부지런한 시냇물이다. 그래서 때론 멈추어 녹슨 짐작에 슬퍼도, 내게 소중한 관계라면 얼른 털고 일어난다. 나까지 멈추는 순간 우리 사이엔 껍데기만 남을 테니까. 모두 완벽하진 않다. 나도 오늘 조금 시도하고 조금 회피했다. 그저 '조금'에 의미를 둔다.

외부에서 습득한 뻔한 형식 말고, 넘어지고 깨지고 아파보고, 그렇게 자기 안에서 발견한 논리로 다정함을 쌓은 사람을 좋아한다. 그건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관계도 그렇다. 엄마, 딸, 동생, 누나, 그런 정해진 이름과 그 아래에 눌린 관계 말고, 시간을 두고 서로에게 애정을 쏟으며 마침내 발견해낸 사람 간의 논리가 관계를 더 두텁게 만든다. 그럴 때, 평범한 의외의 말은 곧 사랑한다는 말이 된다.

몇 년 전까지 내게 집밥은 엄마가 봄에 태어난 딸을 위해 만들던 냉이나물과 쑥국이었다. 한편 신김치 넣은 청국장을 좋아하는 아빠가 돌아가신 후, 엄마는 그걸 싫어하던 내 입맛을 기억하고 더 이상 청국장에 김치를 넣지 않는다. 그 사소한 기억력과 마음 씀이 사랑한다는 말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30대의 내 집밥은, 밤샘 작업하고 일어나면 부엌 한편에 소담히 담긴 김밥, 바빠도 금방 먹을 수 있게 손질해 놓은 샐러드 채소 같은 거다. 내 상황에 맞는 배려와 사랑이 담긴, 오래 기억날 집밥이다. 내가 어떻게 지내고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기에 가능한 일이다. 누군가에게 건네는 음식은 그런 관계의 나이테, 그 사이 켜켜이 쌓인 온기를 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엄마의 밥이 좋으면서도,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알면서도 엄마가 밥과 돌봄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는 모순된 마음을 가졌다. 그 때문에 종종 신경 쓰지 말라고 한다. 마음이 필요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정말 괜찮고, 그 에너지를 조금이라도 스스로에게 썼으면 좋겠고, 그렇다면 우리가 더 행복할 것 같단 생각에. 부드럽게 말하면 통하지 않기에 자주 퉁명스럽게 건네고 곧바로 후회한다. 어쩌면 이 또한 조금 모난 사랑의 말일지 모르겠다.

사랑한다는 말을 여기저기서 발견하는 걸 좋아한다. 아니 정확히는 그렇게 발견된 사랑한다는 말을 좋아한다. 내 잠든 얼굴을 기억하고 내내 걱정했다는 말, 씻고 나올 때 문 앞에 드라이어를 놔주는 배려, 집을 비운 동안 이불 커버를 빨아 두는 그리움, 지쳐있는 이유를 묻지 않고 꼭 안아주는 두 팔. 서로 간에 쌓은 논리로 짐작하는 마음이 있어야 가능한 행동들이다.

언어는 강력하지만 정작 내부는 비어있을 때도 있다. 그래서 말이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반대로 짐작하는 마음을 잔뜩 가지고 행동할 뿐, 정확하게 말하는 방법이 서툴던 나는 이제야 보편적인 말을 배우고 있다. 마음에 말이 더해진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나도 아직 서툴다. 말은 조금 서툴러도 여러 가지 모양으로 사랑한다고 외치는 사람들에게 자꾸만 정이 가고, 발견해주려 애쓰는 건 그런 이유일 거다.

오늘은 조금 일찍 자려고 누웠다가, 엄청 신나 있는 언젠가의 내 모습을 친구에게 전달받고 다시 일어났다. 한껏 신나 있는 내 모습을 담아둔 것도 어쩌면 사랑의 말이 아닐까. 나는 이렇게 또 사방에서 발견되는 사랑의 말이 괜히 벅차고 좋아서 자려다가 갑자기 노트북을 켜고 미뤄둔 일기를 쓴다. 내 이번 생은 사랑이 많아 망했다는 말, 여전히 틀리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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