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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27. 마라톤 풀코스를 걷다.

오 세브레이로 → 사리아 41,7km (09,09)

by 신미영 sopia


오늘은 41.7km를 가야 해서 새벽 6시에 출발했다. 별들이 한밤중처럼 총총히 박힌 하늘을 머리에 이고 , 한 시간 넘게 휴대폰 손전등을 켜고 내리막을 걸었다. 1300M에서 내려가는 앞길이 어떨지 모르고, 새벽길로 전혀 예상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불안감으로 많이 긴장이 되었다. 플래시 불빛을 보고 갑자기 뭐가 나타날 것도 같았다. 그리고 짐승이나 무서운 것이 갑자기 앞을 막아서면 어쩌나 하는 공포감도 있었다.


한 시간 정도를 거의 뛰다 싶게 내려온 내리막 길은 다행히 도로로 이어졌다. 첫 마을까지 5.7km라서 좀 더 가야 한다. 그 이후에도 어둠침침한 것은 가시지 않았다. 다시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었다. 그러다 아주 가파른 오르막에 바로 위에 Bar가 있어 아침식사를 했다. 커피와 오렌지 주스, 빵과 또르띠야로 주문했는데 나름 유명한 집인가 보다.


수제 빵과 또르띠야가 맛도 좋다. 밖에는 의자와 식탁이 즐비한게 평소 손님이 많았음을 짐작케 한다. 우리가 의자에 앉아 먹고 있는데 큰 개가 눈을 껌뻑거리고 누워 있다. 스페인 개는 덩치가 큰 개도 아주 순해서 거의 목줄을 풀어놓고 키우는 듯하다. 우리는 식사를 마무리 하고 잠시 쉬다가 서둘러 일어섰다.

그런데 표지석을 보니 꽤 걸어 내려오나 마나, 아직도 1230M 고지에 있었다. 그렇게 긴 시간 내려오고 걸었는데도, 아직도 내려가야 할 길이 먼 것에 대해 답답하고 실망했다. 한참을 걸어 동이 터오는 옆쪽을 보게 되었다. 멀리서 하늘 한쪽이 물게 물들어 장관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시간을 지체해서 사진을 찍고 쉬기엔 가야 할 길이 멀다. 구름이 아래로 보이는 거 봐서는 아직도 고지대라는 것이다. 우리가 가야 할 멀리 보이는 길이 내리막 오르막을 반복하고 있어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한참을 걸어 마을에 도착하니 도로가 공사 중이라 정신이 없다. 이리저리 간신히 피해 마을을 벗어났다. 걸어 걸어 다음 시골 동네에 들어서니, 소똥으로 지저분하고 냄새가 심해서 얼른 빠져나간다. 가다 보니 공기가 안 좋은 공장 있는 동네를 지나 원래 우리가 묵기로 했던 마을 Triacastela에 도착했다. 이제는 두 개를 시키지 않고 일인은 정식 메뉴를 주문하고 일인은 맥주만 시켜 나눠 먹는다. 저렴한 가격에다 가져온 간식을 나눠 먹으면 요기를 채울 수 있다. 마을에서 점심을 먹으며 지인들에게 카톡과 사진을 보냈다.


다시 길을 간다. 까미노는 꼭 마을 안쪽으로 걸어가도록 길이 안내되어 있다. 힘들 때는 대충 패스해도 되는 길을 우리는 정석대로 걷게 된다. 도로로 이어지는 길을 걷다가 길이 오른쪽으로 빠지면서 내리막이다. 정말 멈출 수 없이 저절로 막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언제 이 길을 다 내려가나 했더니 한꺼번에 내리 쏘듯이 내리막이 이어진다. 허벅지에 힘이 잔뜩 들어간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스틱이 앞을 바쳐 주고 있어 다리에 힘이 덜 들어가는 거다. 스틱이 없이 걷는다는 건 자칫 위험할 것이다. 너무 무리가 가지 않도록 다리와 스틱에 발란스를 맞춘다. 그때 멀리서나마 사리아가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걷고 있으나 걸어도 걸어도 끝이 안보였다.


미카엘은 베드 버그 물린 자리가 연신 '가렵다, 가렵다' 하며 긁고 있었다. 수염이 자라 중후한 맛은 있는데, 더욱 초췌한 미카엘 씨가 안쓰럽다. 구글 지도를 켜고 사리아를 찾아 가는데 다른 방향을 알려주어 방향을 틀었다. 그런데 지나가던 자동차가 가던 길로 가라고 안내를 해 주었다. 우리 배낭을 보고 순례자로 인식하고, 바로 알려주는 친절한 스페인 분이다.


다시 길을 가서 사리아에 도착하고 알베르게를 물어서 쉽게 찾았다. 깔끔하게 관리한 알베르게였는데, 예상보다 투수객이 많지 않아서 의외였다. 사리아부터 출발하는 사람이 많을 거라고 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기우였다. 미카엘이 주인에게 베드 버그에 물린 자리를 보여주며 하소연한다. 친절한 알베르 주인이 가까운 병원을 알려 주었다.


씻고 나서 세탁이 다 되면 드라이를 해 달라고 주인에게 부탁을 하고 나갔다. 병원을 찾아가는 길에 장모와 사위 딸가족이 저녁 외식을 간다는 한가족을 만났다. 그중에 50대 후반의 사위가 자세하게 안내 해 주어 병원에 갔다. 혹시나 병원비가 과다하게 청구되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이 나서 번역기를 써서 물었다. 접수를 하며 의사에게 진료비에 대해 물어보니, 아무것도 내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안심하고 주사를 맞았다. 순례자를 위한 보건소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친절함과 따뜻함에 감사하며 슈퍼로 갔다.


마라톤 풀코스를 걷고 다리가 아파 서있을 힘조차도 없고 어지러워 주저앉고 싶었다. 그런데 미카엘이 마트에 가서 이것저것 고르며 시장을 본다. 이럴 때일수록 잘 먹어야 한다고 꿋꿋하게 살 것을 골라 담는다. 난 바깥에 나와 쭈그리고 앉아 있다가 겨우 숙소로 와 피곤함에 지쳐 금방 잠이 들었다. 미카엘이 저녁식사 준비해서 깨우러 왔다. 오늘은 이틀 걸을 거리를 하루에 다 걸어 엄청 피곤할 텐데, 저녁식사 준비를 한 남편이 정말 대단하다.


감자와 양파 그리고 돼지고기를 넣고 끓인 찌개가 어찌나 맛있던지 꿀맛 같았다. 여태 먹은 것 중에 가장 맛있는 찌개였다. 이 맛은 오래 기억될 거 같다. 사실 라면수프를 넣고 끓인 찌개라 한국에선 별 탐탁지 않은 맛일 텐데, 지친 온몸이 반응하는 맛있는 맛에 놀랐다. 어디서 무엇을 먹든지 기분 좋게, 그리고 맛있게 먹는 게 가장 행복하다. 저녁을 먹고 다시 기운을 차려 건조한 빨래를 개어 짐을 정리한 후에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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