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한 아빠와 30대 직장인 딸이 왔다. 한국에서 온 부녀는 사리아부터가 까미노 첫출발이라고 한다. 숙소에서 같이 가다가 20M쯤 와서30대 딸이 “아~ 죄송 하지만 먼저 가실래요? 저는 아빠가 장갑이 필요해서 사야 해요.” 라며 먼저 가라고 손짓을 한다. 그래서 아직은 어두운 사리아 도심을 둘이 걸었다.밤사이 비가 왔는데 다행히 오늘은 날씨가 개어 괜찮을 것 같다.
이른 시간 오픈한 바들이 많아서 아침 식사 못 한 사람들은 바에 앉아 커피와 빵을 먹는다.
사리아라고 입체적으로 크게 흰 글씨 쓰여 있는 곳에서 사진 찍었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아 사진이 잘 나올지 장담하기는 어렵다. 가다 보니 여러 나라 국기로 만든 장식이 있어 사진 찍었는데 우리나라 국기도 있어 반가웠다. 이것은 사리아를 가장 특징적이게 보여주는 팻말이기도 하다.
사리아 입체 글씨와 한국 국기가 있는 팻말
사리아부터 갑자기 사람들이 많아졌다. 순례자 통계 기준에 의하면 ‘프랑스 길’을 걷는 사람들의 28%가 사리아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순례증서를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거리가 100km 이다. 그래서 사리아부터 출발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이곳부터는 갑자기 많아진다는 얘기를 듣긴 했어도 직접 보니 실감이 났다.마치 단체로 소풍 가는 것처럼 노란 표지판을 보지 않아도, 순례자들만 따라가도 길을 잃지 않을 것 같다.
우리는 앞을 향하여 힘차게 걸었다.어제 마라톤 코스를 걸어 사리아에 도착했을 때 어찌나 힘이 드는지 오늘은 못 걸을 줄 알았다. 그러나 다시 내게 힘이 만들어졌다. '이런 것이 새 힘이구나' 하고 느끼면서 말이다. 스틱을 쓸 때는 스틱을 쓰기도 하고 필요 없을 때는 스틱을 들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최대한 방해가 되지 않게 하였다. 이렇게 적절하게 걸어 주는 것이 그동안 27일을 걸었던 노하우가 아니겠는가? 후훗
어느 정도 사리아를 벗어나자 언덕길이 이어졌다. 우리는 스피드 스케이트 선수처럼 척척척 나아가 몇 사람을 제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래도 힘은 들지 않았다.라바날 인영균 끌레멘스 신부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하루 늦어도 날아서 갈 텐데 뭘 걱정이에요?” 라고 말씀하셨는데 정말 그랬다.
어제도 도착해서는 기진맥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힘들었다. 그런데 자고 일어나니 새 힘을 얻고 힘차게 걷고 있지 않은가? 갈수록 쳐지고 힘든 것이 아니라 더 새록새록 솟아나는 힘은 대체 무엇인가? 생각할수록 신기하기만 하다. 가는 도중에 비가 살짝 뿌린다. 앞서가던 사람들이 판초 우의를 꺼내 입는다. 미카엘이 좀 더 기다려 보자고 했는데 안 꺼내길 잘했다. 이후에 조금 내리다 비가 그쳤다. 아주 다행이다.
두 번째 마을이 5km쯤에 있었는데, 아침에 누룽지를 먹고 와서 우린 12km 지점 마을에서 쉬기로 했다. 가다 보니 기념품을 파는 곳이 있어서 조개와 조롱박을 사서 가방에 달았다. 작은 5단짜리 묵주도 있어 약간 욕심이 났다. 하지만 지금은 선물을 살 때가 아니라 걸어야 할 때니, 마음을 접고 다시 걸었다.
걸으면서 계속 앞의 사람들을 제치며 앞서갔다. 우린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며 신나 말했다.
“오 이런 느낌 나쁘지 않네,호호 여보, 새 힘이 마구 솟아나는 것 같아, 당신도 그래?" 하며 넘치는 자신감을 가졌다.
다시 일본인 남자를 만났다. 나이는 나랑 동갑이었는데, 무표정에다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항상 혼자 걷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면서 몇 번을 마주치다 보니 관심이 갔다. 드디어 산티아고 도착 전 100km 지점에 왔다.앞서간 사람들이 자신의 필체를 남기려고 낙서를 한 흔적이 많다. 역시 100km 지점에 관심이 큰 것 같다. 일본인을 사진 찍어주고 우리도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다. 나이는 나랑 동갑이고 이름은 요꼬 모상이다.
산티아고 100km전 표지석
한참을 가다 보니 도네이션(기부제) 간식 집이 있어 들어갔다. 가족들이 가정집에다 운영하는 거였다. 우리도 몇 가지 가져가 먹었다. 다시 또르띠아와 빵이 왔길래 갖다 먹었다. 5유로짜리가 없어 잔돈을 털어서 냈는데 어르신이 눈치를 주어 좀 미안했다. 많은 사람에게 나눔을 실천하고 계신 가족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2km 정도 남겨두고 길이 두 갈래로 갈라졌다. 우리는 우측을 선택했는데 내리막의 경사가 가파르다. 순간 다른 쪽으로 갈 걸 하는 후회를 했다.
멀리 언덕으로 포로 토마린 집들이 보인다. 경사진 언덕에 하얗고 아름다운 집들이다. 우리가 머물 곳을 바라보니, 이곳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수에 비친 포로 토마린 마을의 모습이 마치 수채화 같다. 다시 한번 밑으로 들어가 길게 다리로 이어진다. 다리가 1km는 되는 듯했다. 다리 바깥으로 강물을 보니 머리가 어지럽다.바람은 세차게 불고 차는 달리고 그곳을 얼른 벗어나고 싶었다. 미카엘은 그 와중에 나를 부르며 사진 찍자고 한다. 나는 못 들은 척하고 옆도 보지 않고 걸었다. 아찔함이 발길을 멈추게 하지 않는다, 무서움을 참고 간신히 다리를 걸어오니 다시 높은 계단을 올라간다.마지막까지 힘을 내 계단을 오르니 다리의 전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역시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예쁜 풍경이다.
숙소에서 바라본 포로토마린 호수
다행히 우리가 묵는 알베르게 안내 표지가 보였는데 마을 초입이다. 다른 알베르게들이랑 떨어져 있다. 우리가 알베르게 들어서기 직전에 택시에 동키 서비스로 보냈던 배낭이 도착했다. 주인에게 접수하고 방으로 안내받으니 우리가 일 등이다. 32석의 알베르게에 손님이 없다가 시간이 지나 열다섯 명 정도 찼다. 주인이 관리를 잘하지만 거리가 떨어져 있어 그런 것 같다배낭을 침대에 갖다 놓고 바로 가서 순례자 점심 메뉴를 먹었다. 이 바가 유난히 장사가 잘되는 듯하다. 맛도 좋고 가격도 괜찮다. 맥주와 점심 가격이 13유로다.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려서 장을 봐서 왔다. 저녁엔 와인과 함께 소시지 된장국으로 정했다. 잘된 조합은 아니지만 그래도 맛이 괜찮다.
저녁을 먹고 성당을 찾아 미사를 참례했다. 시청 옆에 있는 아주 오래된 건물인 산타마리아 성당이다. 그런데 의외로 사람이 많았다. 유난히 십자가 위에 계신 예수님이 조화롭게 보여 사진을 찍었다. 바라보는것으로도 편안함을 느꼈다.
포로토 마린 산타마리아 성당 제대와 십자고상
연세가 70대 중반인 두 사제가 미사를 집전하셨는데, 다른 곳과 달리 따로 봉헌금은 없다.포로 토마린은 언덕 위에 도시가 있다. 호수와 어우러진 도시는 마치 예쁜 수채화 그림 같다. 순례자들이 중심가에서 쇼핑하고 바에서 음식과 술을 마시는 모습이 평화롭다. 오는 길에 마트에 들려 시장을 봤다. 주변을 둘러보고 숙소로 돌아와서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