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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29. 동갑내기 일본인 요꼬 모상과의 인연

포로토 마린 → 팔라스 델 레이 25km (09,11)

by 신미영 sopia

포로토 마린은 그리 크지 않은 도시로 아래쪽에 미뇨강이 흐르고 있다. 댐공사로 옛날 마을은 물속에 잠겨 있다. 그래서 지금 마을은 언덕을 이루며 높은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우리가 묵고 있는 숙소는 다른 알베르게보다 아래 초입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 마트를 가거나 Bar를 갈 때는 위쪽으로 올라가야 한다. 이곳도 성당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고, 작은 도시이지만 그 옆으로 시청이 있다.


6시 30분쯤 어제 밥 남은 거를 누룽지로 끓여 먹으려고 준비하는 중이다. 관리인 아저씨가 수레에 음료와 빵 등을 싣고 나온다. 아침식사를 신청한 분들을 위한 준비인가 보다. 누룽지처럼 데우다 보니 타는 냄새가 났다. 냄비가 작고 얇아서 어쩔 수 없다. 처음 먹는데 탄내가 확 올라와 밑 부분은 그냥 두고 윗부분만 덜어 먹었다.


나중에 보니 냄비가 타서 잘 닦이지 않았다. 다른 것들은 다 닦아서 그릇장에 넣어 두었다. 그런데 냄비는 물을 부어 두며 관리인에게 미안하다고 얘기했다. 말로는 괜찮다고 얘기하지만 조금 안 좋은 눈치다. 그사이 남자 두 분이 들어와 아침 식사를 하는 중이다. 우리는 이미 짐까지 다 가져 나왔기 때문에 서둘러 인사를 하고 나왔다.


출발이 7시인데 벌써 두 무리가 앞서간다. 미리 그쪽으로 가는 방향을 봐 두었기 때문에 스틱을 들고 그 뒤를 따라갔다. 알베르게에서 나와 우측으로 빙 돌아 다리를 건너 다시 우측으로 돌았다. 아직은 컴컴하다. 그런데 앞쪽에 헤드랜턴을 켜고 열심히 걷는 이는 몇 번을 만나서 알게 된 일본인 요꼬 모상이었다. 거의 말을 하지 않는 일본인에게 어제 이름도 물어보고 나이를 살짝 물어보니 동갑이다. 만나서 반갑다는 인사를 했다. 요꼬 모상도 수줍게 웃으며 인사를 한다.


그의 배낭은 유난히 커 보이는데 대략 15kg 되는 것 같다. 키는 170cm쯤인데 그것을 지고 가는 모습이 힘겹게 보인다. 게다가 앞에는 커다란 물병을 배낭에 매달아 안고 걷는다. 그것 때문인지 오르막이 아니고는 스틱을 거의 사용하지 못한다. 그의 뒤를 바짝 따르다가 내가 경량 패딩을 벗느라 잠시 주춤하는 사이에 거리가 멀어졌다. 그래서 휴대폰 손전등을 켜고 따라갔다. 요꼬 모상 주변으로 사람들이 함께 걷고 있다. 말이 없고 꽤나 수줍어하는 그의 헤드랜턴 불빛으로 사람들이 함께 가고 있다. 까미노 길 위에서는 알게 모르게 모두가 천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이어지던 오르막은 한참을 걸어 올라갔다. 우리의 삶에도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듯이 오늘도 오름과 내림을 반복해야 할 것 같다. 우리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을 거의 따라잡고 쭉쭉 빠져 갔다. 또 배가 살살 아파서 아까부터 참는 중이다. 하필 눈치 없는 요꼬 모상이 따라오고 있다.


또다시 오르막이다. 모두 스틱을 잡고 오르는 모습들이 거친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 같다. 우리는 산티아고를 향하여 길을 간다. 모두가 목적지는 단 하나로 성 야고보 유해가 묻혀있는 산티아고 대성당을 향해 가는 중이다. 프랑스길뿐만 아니라 포르투갈 길 북쪽 길도 또 다른 여러 길이 있는데 산티아고로 모두 모인다.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고 자라온 환경들이 달라도 까미노 길 위에서는 모두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말이 유창하지 않아도 “올라” “부엔 까미노” “그라시아스” 세 단어와 밝은 표정만 있으면 다 통한다. 언덕을 올라오니 바람이 심하게 분다. '먹구름이 있는 걸 보니 비가 오려나?' 날씨는 쌀랑해서 경량 패딩을 입고 걸으면 덥고 벗으면 춥다. 벗었다 입었다는 반복하는 사이 숲길로 들어섰다.


아직도 배는 아프고 계속 따라오는 요꼬 모상을 따돌리기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들어 먼저 보내기로 했다. 눈빛으로 인사를 나누고 그가 어느 정도 멀어지자 숲으로 가서 볼일을 봤다. 많은 사람이 나와 같은 불편함이 있었나 보다. 뒤쪽으로 가보니 휴지가 무척이나 많다. 스페인은 땅이 넓어서 그런지 공중

포로토 마린에서 팔랏스 델 레이 가는 길 화장실이 없다는 게 아쉽다


순례자들이 가장 불편한 것은 생리적인 현상을 해결하는 것이다. 그래도 다들 알아서 그렇게 하고 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숲길을 나오니 길이 두 길로 갈라진다. 커피라도 마시려고 마을 쪽 길을 선택해서 걸어갔다. 옥수수밭을 돌아가니 멀리 규모가 제법 큰 바가 보였다. ‘괜히 엉뚱한 길로 왔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질러서 바로 향했다. 가보니 한국인 중에 신혼여행을 산티아고로 온 젊은 부부가 있어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커피 한잔과 빵을 먹고 화장실을 다녀왔다. 어제 우리와 함께 묵고 사리아부터 출발한다는 부녀가 들어왔다. 우리는 인사를 나누고 먼저 출발했다.


그러고는 계속 걸었는데 오늘은 점점 속도가 떨어지는 걸 느꼈다. 계속 뒤에서 우리를 따라잡았다. 8킬로 커브 지점에 바가 있어 화장실도 갈 겸 커피를 주문해 마셨다. 출발할 때와는 좀 다르게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고 힘이 들었다. 발가락도 좀 아프고 기운도 없다. 중간에 벤치에 앉아 양말을 벗고 주물러 주고 쉬었다. 마지막 마을 레스테도에 사람들이 많이 모인 바에서 혼합 샐러드와 또르띠야로 점심 식사했다. 맥주 500CC와 합쳐 모두 12유로였는데 샐러드가 특히 맛있다.


산마르틴 알베르게는 비교적 찾기 쉬웠다. 표지판 안내가 있고 산마르코 성당 바로 옆에 건물이 있었다. 포로토 말린 알베르게와 달리 사람들로 북적였다. 요꼬 모상도 먼저 와 있었다. 말도 없이 혼자 잘 찾아다니는 모습이 대단하다. 지루하고 힘든 길을 혼자 다니면 지칠 법도 한테 그는 거의 같은 모습이다. 누구나 저마다 다른 사연과 이유를 갖고 산티아고에 온다.


혼자서 물통을 꼭 잡고 지게를 지고 가듯 걷는 요꼬 모상은 대체 어떤 사연으로 이곳에 온 것일까? 순례길에서 만났다 헤어졌다를 반복하는 요꼬 모상이 산티아고 끝까지 완주하기를 바란다.

우리에게 배정된 방은 2층에 4개 침대가 있어 8명이 묵을 수 있는 방이다. 그중에 룸 입구 쪽 2층 침대를 배정받아 짐을 풀었다. 룸 바로 앞에 화장실과 씻는 곳이 있어 다행이다.


주방과 세탁실은 지하에 있어 내림과 오름을 반복해야 한다.
”안 그래도 걷느라 힘든데, 이럴 때 엘리베이터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
하며 미카엘에게 불평을 말했다. 오늘은 세탁하는 날이라 빨래를 갖고 지하로 왔다. 남자들이 서서 빨래하고 있고 한 명은 대기 중이다. 기다려 미카엘과 샴푸를 넣고 주물럭거려 깨끗이 헹궈 뒤쪽으로 가서 빨래집게와 옷핀으로 꼽아 널었다. 안 그러면 바람에 날아가서 꼭 집어 줘야 한다.


이후 산 마르틴 성당에 가서 조상들의 영혼을 위해 촛불을 봉헌했다. 그리고 무탈하게 잘 걸을 수 있도록 은총 주시는 주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다.


그러고는 장을 봐서 스테이크와 고구마와 양파를 넣은 된장찌개를 끓였다.

에스떼야에서 만났던 수원 남자분이 이곳 알베르게에 잠깐 놀러 오셨다. 식사 중이라 스테이크와 와인을 조금 드렸더니 맛있다고 좋아하신다. 뭐든 함께 먹으면 더 맛있는 듯하다. 한참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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