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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30. 함께 걷고 싶은 길, 팔라스에서 아르수아

팔라스 델 레이 → 아르수아 29km (09,12)

by 신미영 sopia

오늘은 아르수아까지 29km로 경치가 아름다운 코스라고 한다. 아침 식사로 삶은 달걀, 도넛, 요플레, 사과를 먹었다. 누룽지를 끓여 먹을까 하고 아껴 두었던 것을 냄비에 물을 붓고 기다렸었다. 그러나 인덕션에 불이 들어오지 않아 결국 버리고 간단하게 먹었다. 알베르게에서 좀 일찍 인덕션을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면 좋을 텐데 아쉬웠다.


요꼬 모상도 냉장고에 넣어둔 과일을 꺼내 먹고 있다. 사리아부터 걸어와 함께 묵었던 한국 딸과 아버지도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고 출발 준비 중이다. 아직 알베르게에 남아 있는 분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우린 6시 40분 출발했다. 요꼬 모상과도 또 만나자고 악수를 했다. 날은 어둡지만 이곳 마을을 벗어나기 전까지 가로등이 환하게 비춰준다.


100M 정도 내려오다 보니, 아스트로가 알베르게에서 만났던 수원에서 오신 분이 자신이 묵었던 숙소에서 나왔다. 마을을 벗어나니 어두워 휴대폰 손전등으로 밝히며 걸었다. 우측으로 돌아 계속 조금씩 돌아 걸었다. 경량 패딩을 입고 걸었으나 더워 벗었다. 한 시간 조금 더 걷고 작은 바에 들어가 커피를 주문해 마시고 화장실에 다녀왔다.


수원 남자분은 천천히 걷겠다며 남고 우린 서둘러 걸었다. 가다 보니 더워서 긴 팔 입은 것도 벗어서 어깨에 둘렀다. 헐렁한 티셔츠라 나름 패션다웠다. 이곳에서는 몸에 쫙 붙는 티셔츠와 쫄바지를 과감하게 입고 다닐 수 있어 좋다. 남의 눈치 볼 것 없이 자유롭게 다닐 수 있어 정말 편하고 좋다.


시내를 나와 외곽으로 접어들었다. 날도 어느 정도 밝았다. 오늘은 걷기에 좋은 날씨다. 한참을 걸어가다 보니 풀을 뜯고 있는 말들이 보였다. 그 풍경이 예뻐서 마음까지 편안하니 좋다. 저곳 말들과 평화롭게 뛰어놀고 싶은 맘이 굴뚝같다.

방목하여 키우는 말

한 시간 정도를 더 걷고 다시 바에 들어가 커피를 주문해 가져온 바나나와 빵, 콜라를 먹었다. 출발 후 15km를 걸으니 큰 도시 멜리데가 나왔다. 어제 우리가 묵었던 도시의 세배는 되는 듯했다. 확실히 큰 도시라 차도 많고 사람들도 많아 활력이 있었다. 길을 걷다가 수원 남자분을 다시 만났다. 까미노 위에서는 헤어졌다 만났다를 자주 반복한다. 그리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반갑게 "부엔 까미노" 인사를 나눈다. 서로에게 순례를 잘하라며 격려하고 인사를 한다. 눈빛을 보고 말하면서 사랑과 위로의 마음을 보내서 잘 걷도록 격려하며, 우리가 이 길을 함께 걷고 있는 것에 대해 하나 됨을 표시한다.


친근함으로 인사를 나누다 보 면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옆 사람에게 부엔 까미노로 인사를 하자 한국말로 인사를 받는다.
”아, 한국분이신가요? “
”아니에요, 저는 대만에서 온 아줌마랍니다. 한국 드라마에 관심이 많아요. 몇 년 전 한국에도 간 적이 있어요. 김치, 떡볶이 좋아해요.” 정말 신기했다. 스페인에 와서까지 한류 열풍으로 우리나라에 관심을 두고 있는 분을 만날 수 있다니 말이다. 큰 음식점을 지나려는데, 주인장이 문어를 썰어주면서 "문어 좋아요, 맛있어" 한다. 우리가 한국 사람인 걸 알고 바로 한국말로 인사하는 걸 보니 순례길에 한국인들이 많긴 많은가 보다.


큰 도시를 빠져나왔다. 오늘은 오르막 내리막이 심하지는 않았는데 은근히 힘들게 한다. 오르막과 내리막에서는 스틱을 사용해서 최대한 몸에 무리가 가지 않고 걷도록 해야 한다. 오르막일 때는 거친 물살을 거르며 오르는 힘찬 연어처럼 힘을 주고 걷는다. 내려올 때는 스틱을 앞쪽에다 두고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해 준다. 한 달이 지나니 자연스럽게 스틱 사용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짐 된다고 버렸으면 걷는데 힘들어 후회할 뻔했다. 점심은 7km 정도 남겨 놓고 혼합 샐러드와 닭다리 요리 및 감자튀김을 먹었는데 맛이 괜찮았다. 닭다리는 크고 연한 데다 맛도 좋다. 게다가 샐러드는 양도 푸짐하고 신선해서 좋았다.

낮에는 날씨가 꽤 뜨거워 땀도 많이 나고 갈증도 난다. 앞에 스페인 부부가 아까부터 계속 손을 잡고 간다. 날이 더워서 웬만하면 잡고 있던 손을 놓을 법한데, 계속 잡고 가는 걸 보면 각별한 사이 같다. 우리는 스틱에서 나는 소리에 맞추어 걸었다. 길이 가끔은 양쪽으로 갈라지는 곳이 있다. 오른쪽과 왼쪽으로 갈린 길에서 오른쪽으로 갔는데 숲길이다. 나무도 많고 호젓한 것이 강원도 월정사 들어가는 길 같다. 감자튀김과 훈제 닭다리그리고 샐러드

가다가 돌다리 서너 개쯤 되는 냇가도 있는데,

이 길을 걷고 있는 지금 좋다. 스페인에 와서 걱정 없이 걷는 지금이 정말 행복하다.


숲길을 빠져나와서 도로를 건너 다시 숲길이다. 어디서 경쾌한 악기 소리가 들린다. 가까이 가보니 그곳에 끼가 많은 부부가 악기를 불고 두드리며 신나는 연주를 하고 있다. 나는 악기 소리에 맞추어 흥을 담아 가볍게 춤을 추었다.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동전을 악기 담는 통에 넣었다. 시원한 숲길에서 걷고 또 연주하는 부부로 인해 춤도 추니 기분 좋은 날이다.

숲 길의 악기 연주자들

개울을 따라 푸른 초원이 펼쳐진다. 우거진 숲과 개울이 마음을 맑게 해 준다. 건너편 알베르게 물가에서 순례자들이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어 "부엔 까미노"하고 인사를 보냈다. 오늘은 날씨가 더워 알베르게 도착하면 생맥주를 마셔야겠다.


우리가 예약한 알베르게는 다행히 아르수아 도시 초입에 있어 찾기가 쉬웠다. 일 층 침대로 달라고 하자 주인이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알았다며 해 주었다. 학생들이 단체로 와서 알베르게 식당 쪽이 엄청 어수선하다. 200M쯤 걸어가 바에서 생맥주를 마신 다음 돌아와 쉰 다음 장을 보러 갔다.


저녁에는 한국인들과 식사를 하려고 해서 시장을 넉넉히 봤다. 돼지고기 찌개와 하몽과 멜론의 안주와 간식 등을 사니 20유로 정도 들었다. 알베르게로 와서 일찍 저녁 준비를 하려는데 스페인의 단체 학생들이 생일파티 준비로 주방이 정신이 없다. 좀 기다려 준비를 하고 나서 수원 사는 분, 딸과 아버지를 모시고 함께 식사했는데 다들 맛있게 먹었다. 설거지는 딸의 아버지가 고맙다고 자진해서 하셨다.


밖에서 쉬고 있는데 한국 아가씨 두 명이 라면을 먹겠다고 주방에 왔다. 우리보다 나흘이나 먼저 생장에서 출발했다고 했다. 천천히 느리게 걷긴 걸은 모양이다. 우리와 같은 마을에서 7시에 출발했는데 저녁 7시가 다 돼서 왔다면서 힘들어한다.


그래도 연약한 아가씨 둘이 산티아고에 와서 걷고 있으니 대단하게 보였다. 저녁을 같이 먹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알베르게에 한국에서 온 사람은 우리 부부를 포함해 7명이다. 앞으로 남은 거리도 무탈하게 잘 걷기를 바라며 잠자리에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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