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 30분쯤 짐을 꾸려 호텔 쪽으로 나왔는데 날씨가 꽤 추웠다. 아주 썰렁해서 패딩을 입을 걸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제 알아본 길로 가려는데, 몇 사람이 반대 길로 가고 있어 좀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랬더니 한 사람이 이쪽으로 오고 있어 산티아고 길을 물어보니 우리가 가려고 했던 길로 가도 된다고 했다. 그래서 숙소에서 나와 왼쪽으로 가다 오른쪽으로 꺾어 다리가 나오는 방향으로 갔다. 마을을 이어주는 다리를 건너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비아 블랑카 마을은 지붕이 조화롭고 예쁘다. 그런데 사진을 찍어 보니, 이른 아침이라 어둡게 나와 아쉬웠다. 어느 정도 동네 마을을 벗어나자 도로를 따라 쭈욱 길이 이어지고 또 길옆으로는 산 위에서 내려오는 계곡 물소리가 시원하다. 앞에서 걷는 남자분이 스틱도 없이 잘 걷는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을 따라가기로 했다. 앞의 사람을 따라가다 보면 저절로 걸음도 빨라지고 앞으로 쭉쭉 걷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도로를 가로질러 들어서니 밤나무들이 많은데 우리나라 밤나무와 거의 비슷하다. 이곳은 산 밤나무가 아니고 일부러 밤나무를 심어 수확하기 위한 거였다. 우리나라 밤나무보다 키들이 크고 열매도 엄청 많이 열렸다. 밤은 아직 열매가 실하지 않아서 수확하려면 10월 중순은 돼야 할 것 같다. 농장 주인은 이미 주변에 풀들을 깨끗이 깎아 밤이 떨어지면 줍기 위한 작업을 마련해 놓았다. 주변에 나무가 많아서인지 목재소도 보였다. 굵은 나무들을 잘라 그대로 쌓아 놓기도 하고 한쪽엔 잘게 잘라놓은 것들도 눈에 띈다.
그런데 갑자기 미카엘이 소리 지르며 넘어졌다.
정말 깜짝 놀랐다. 아까부터 휴대폰으로 남은 거리를 검색하더니 앞에 있는 턱을 못 보고 고꾸라졌다. ”여보~ 괜찮아? 큰일 날뻔했네” 하며 미카엘을 일으켜 세웠다. 팔 킬로의 배낭을 메고 순식간에 넘어진 것이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었다. 하마터면 여기서 병원으로 실려 가 순례를 중도에 포기할 상황이 생길뻔했다. 사고는 순간이라더니 정말 아찔했다.
우리는 두 시간 정도를 더 걷다가 쉬기로 했다.
출발 11km 정도 걸어 Trabadelo에 이르러 아침 식사를 할 수 있는 마을 입구 바에 도착했다. 카페 콘 레체를 두 잔을 주문했는데
도넛과 카페 콘 레체
최근 들어 주문한 것 중에서 가장 따끈하고 맛도 좋았다. 가져온 도넛과 바나나를 함께 먹었다. 며칠 전에 만났던 허리가 구부정한 일본인 할아버지가 바에 들어오셨다. 안 그래도 궁금하던 차였다. 우리는 손을 들어 환영해 주었다. 할아버지가 휴대폰을 열심히 찾으시더니 구글 번역기를 찾아 보여 주시면서 허리 통증을 호소하셨다.
올해 81세이신데도 번역기도 쓰시고 구글 지도를 볼 줄 아시는 신식 할아버지시다. 까미노 길 안내책인 필그림 관련 책도 한 권 가져오셔서 코스를 보고 계신다. 번역기에 일본말로 힘내셔서 꼭 완주하시라고 써 드렸더니 씩 웃으신다.커피가 맛있어 한잔을 더 시켜 마셨다. 오늘처럼 추운 날씨엔 따끈한 커피도
최고인 데다 스페인에서 마신 커피 중에서 유난히 맛있는 집이기도 하다.
오늘 걷는 길은 대부분 도로 옆길로 이어지고 또 길옆으로 계곡이 시원한 소리를 내며 흘렀다.
우리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쭉쭉 헤엄을 치듯 앞사람들을 따라잡았다. 우리가 생각해도 무척 신기했다. 우리의 이 강한 힘이 정말 어디에서 나오는지 의아했다. 사실 오늘은 고도 1300M를 간다고 해서 살짝 긴장하고 걱정을 했었다.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걸으면 되겠다 싶었다.
나중에 마을을 지나 돌길로 된 오르막을 오르기 전 끼지는 말이다. 대부분 순례길은 마을의 중심을 질러간다. 그래서 마을을 구경할 수 있어 좋다.길을 따라 마을 중심을 지날 때 동네 할아버지께서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계셨다. 가까이 가보니 감자를 크고 작은 것으로 분류하고 계셨다. "올라"하고 인사를 했더니 할아버지께서 웃으셨다. 나는 할아버지 옆에 앉아 사진을 찍었다.
얼마쯤 지나 동네 마을을 빠져나올 즈음에 할머니 한 분을 또 만났다. 할머니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시는데 못 알아듣겠다. 순례 잘하라는 뜻으로 알고 "그라시아스"라고 했다.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더니 수줍어하셔서 다시 부탁을 드리니 포즈를 취해 주신다.사실 순례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마음을 주고받는 경우가 많다. 까미노 길 위에서는 인종과 나이에 상관없이 모두 한 형제요 자매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 길로 이어지던 길이 마을로 들어서며 갈라진다. 그곳에서 점심 식사하는 분들도 있고 이곳에서 숙박하는 분들도 있는 듯하다. 우리는 산 정상 오세브레이로에 동키를 보내 놓았기 때문에 두 시간은 더 걸어야 한다. 힘을 내 보자고 마음을 다지면서 마을을 돌아 경사진 길로 들어선다. 굵은 돌들이 많아서 스틱을 조심히 꽂으며 앞으로 힘을 내 본다.한참을 오르다 보니 다리가 후들거렸다. 앞서가던 몸집이 큰 여자분이 힘에 부친 지 땀을 흘리며 쉬고 있었다. 우리도 모자를 벗고 잠시 숨을 고르며 땀을 닦았다.
그러는 사이 이상한 소리가 나서 위를 보니 말을 타고 내려오는 분이 계셨다. 그 뒤에 또 한 필의 말이 뚜벅뚜벅 소리를 내며 내려왔다. 갑자기 우리도 말을 타고 싶어졌다. 그러면 이렇게 힘들게 걷지 않아도 될 텐데 하는 생각에 한없이 부러웠다.
오 세브레이로에서 말을 타고 내려오는 분
그래도 우리는 끝까지 힘을 내 걷기로 했다. 멀리 보이는 정상에 흰 것들이 보였다. 알베르게는 하나라고 했는데 다른 건물이 있는 건지 모를 일이었다. 길이 가면서 계속 빙빙 돌았다. 그러다 막판에 힘든 길을 걷고 쭉 이어지는 길도 걷다가 차츰 정상으로 다가갔다.
가까이 가보니 사람들이 참 많았다. 1300M 고지 평평한 곳에 장이 선 듯했다. 이 높은 고지에 웬 장이 서다니 어리둥절했다. 마치 우리나라의 시골 장터에 온 것처럼 시끌벅적하다.우리가 묵는 알베르게를 물어보니 좀 더 가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오리 손 산장에서 함께 묵었던 브라질에서 온 현다이 (우리가 부르는 별명)가 반갑다고 인사를 하며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알려 주었다.
사진을 찍고 침대가 500개 있는 유일한 국립 알베르게로 갔다. 순례자 여권에 도장을 찍고 세요도 찍었다. 침대 시트 포함 6유로였다. 가능하면 침대를 일 층으로만 달라고 하니 정색을 하며 안된다고 한다. 할 수 없이 짐을 가져다 풀고 주방에 가보니 요리해서 먹을 그릇도 없었다. 씻고 레스토랑으로 가서 순례자 메뉴와 맥주 큰 거를 시켜 나눠 먹었다.
오 세브레이로 숙소 부근
점심도 저녁을 같은 레스토랑에서 그렇게 먹고 성당에 가서 초 세 개를 봉헌했다. 하나는 한 분의 병 치유를 위해, 두 번째는 지금 항암치료로 고생하는 분을 위해서다. 다른 하나는 이 길을 걷고 있는 우리에게 기도와 응원으로 힘을 주는 모든 은인을 위해 빨간 초를 켜서 가져다 놓았다. 이곳은 성체와 성배의 기적이 일어난 곳이며, 노란 화살표를 처음 만들어 산티아고 순례길을 대중화시킨 곳이라고 한다.
의자도 없이 진행된 미사는 액자 안에 든 뼛조각에 입맞춤하는 것으로 끝났다. 형제님이 부드럽고 달콤한 목소리로 부르던 성가가 듣기 좋아 동영상을 찍었다.숙소에 돌아와 침대에 누우니 라바날 신부님께서 하신 말씀이 바로 눈앞에 적혀 있었다. “진짜 까미노는 산티아고에 도착해서 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현관문을 열었을 때 시작된다.” 는 말씀이다. 다시 머리를 훅 때리며 진하게 내 마음에 새겨지는 듯했다. 아마 이 글을 적었던 누군가도 그랬을 거라 생각하며, 이 말씀을 잊지 않고 생활 속에서 실천하리라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