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5시간 코스로 마음이 좀 가볍다. 어제는 초주검 상태라서 오늘 일어나지 못하면 어쩌나 했다. 까미노에서 하루는 한 생애의 삶처럼 느껴진다. 아침에 새롭게 태어나 저녁에 죽는 거 같다.
오늘 또 일어나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하루를 시작한다. 폰페라다를 빠져나오는데 거의 30분이나 소요되었다.도시를 거의 빠져나와 오르막을 거쳐서 좌측으로 80도 정도 꺾어 도로를 건너 길이 이어지고 이후 작은 마을이 길게 이어졌다.
길은 평탄하게 이어져 걷기에는 아주 수월했다. 그런데 엉치뼈 부분이 걸을 때마다 신경이 쓰일 정도로 계속 아팠다.아픈 부분이 고관절이라는 생각이 들어 더욱 걱정되었다. 이러다 걷는 걸 못 걸어 포기하는 상황이 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든다. 제발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조심해서 걸었다.어떤 부부가 화살표 방향이 끊겼다며 길을 찾고 있었다. 우리보다 앞서간 사람도 함께 어리둥절해한다. 길을 물으니 오던 길의 좌측으로 꺾어 건물 중간으로 가는 거라고 했다. 전에는 그쪽으로 갔던 걸 중간에 변경한 것 같다.
첫 번째 마을에서 화장실 가기 위해 커피 한 잔을 시켰다. 우리나라처럼 화장실 시설이 잘돼 있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유럽은 화장실을 가기 위해서는 바를 이용해야 한다. 스페인은 나라가 커서 그런지 공중화장실이 없기 때문이다.
이후 15km 지점 카카 베로스 마을에서 커피와 오렌지, 빵으로 요기를 했다. 커피는 한국처럼 따끈한 맛이 없이 미지근하다. 날씨는 춥지 않아도 커피는 따뜻했으면 하는 바람인데 이곳은 이게 정상인지 거의 비슷하다. 커피 한 잔과 오렌지 주스를 시켰는데, 빵 두 개를 서비스로 줘서 덕분에 맛있게 먹었다. Bar 바깥 화분에 방울토마토가 예쁘게 달려있어 사진을 찍었다.
이후 길을 걷다가 일본 젊은이 만났는데 얼핏 보기에 한국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싹싹한 일본 젊은이였다.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 우리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했다. 전에 만났던 우리와 연령대가 비슷한 일본인은 만났다 헤어졌다를 반복한다.우리하고 거의 같은 날짜로 걷는 듯하다.
마치 시골에서 지게를 지고 가듯 배낭을 메고 가는 모습은 힘겨워 보인다. 그래도 꿋꿋하게 걷는 모습을 보면 성실하고 인내하는 사람이란 걸 알 수 있다. 처음에 볼 때보다는 표정이 밝아지고 있어서 다행이다. 까미노 길에서 일본 사람은 81세 할아버지를 비롯해 세 사람을 만났다.
비아 플랑카를 거의 다가서 스페인 하숙 알베르게를 구글 앱으로 찾는데 경찰청으로 안내해서 괜히 20분을 헛걸음했다. 아직도 앱 사용이 서툰 탓이다.두 번을 묻고 보여 주면서 숙소를 찾아냈다. 스페인 하숙 프로그램을 시청했기 때문에 주변 모습이 익숙하다.
우린 들어가기 전 대문에서 인증샷을 찍었다. 그리고 길게 이어진 마당을 지나 알베르게로 들어섰다. 50대 중반 아주머니가 반갑게 반겨 주었다. 가격을 물어보자 뭐라 하는데 못 알아들었더니 종이에 써서 알려 준다. 1회용 시트까지 5.5유로였다. 우리가 묵을 방은 2층 가운데 방에 10개 1층 침대가 깨끗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방에 들어서니 60대 후반 남자분이 어디가 아픈지 야윈 모습으로 누워 계셨다. 그 옆 침대에는 아들이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서 아주 작게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고 있다. 아픈 아버지로 인해 걱정이 많은 모양이다. 둘러볼 겸 아래층으로 내려오면서 남편과 이야기를 했다.
“이 길을 걸어보는 것이 아픈 아버지의 소원이었을까?지금 상황으로는 이 길을 도저히 걸을 수 없는 분인데, 대체 왜 여기에 온 것일까?” 하며 미카엘에게 그 사연이 궁금하다고 했다.
< 스페인 하숙 > 촬영지 로비
우린 샤워 후 빨래를 해서 널었다. TV로 볼 때는 몰랐는데 오래된 건물이라서 빨래하는 곳은 지저분하고 열악하다. 마당에 빨래를 걸쳐 놓을 곳이 안 보여 찾아보니, 마당 건너편에 나무 사이로 줄을 이어 매 그곳에 널면 되었다. 나무에 햇볕이 가려져 다소 실망했지만 바람에도 마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빨래를 널고 마을 중간에 있는 Bar로 갔더니 사람들이 많았다. 두 개를 주문하면 가격이 비싸고 양도 많아서 대신 맥주를 시키고 순례자 메뉴를 한 개 주문했다. 맛있게 먹으며 지친 다리와 양말을 벗어 발도 쉬게 했다.먹고 들어와 한숨 자고 시장바구니를 들고 아까 알아 두었던 마트를 가기로 했다. 가기 전 정육점이 있어 스테이크 요리를 하기로 해 소고기를 샀다. 그런데 Day마트 안에도 정육점이 있었다. 과일과 와인, 음료 그리고 봉투까지 10유로를 지불했다.
숙소로 오기 전 내일 갈 루트를 대충 봐 두기로 해서 숙소를 지나쳐 갔다. 40대 초반 남자가 있어 물어보니 친절하게 답해 주었다. 남자분은 혹시나 해서 옆에 계신 어르신께 물어보더니, 앞으로 계속 가다 왼쪽으로 돌아가라고 안내해 준다. 역시 스페인 사람들은 참 친절하다.우리가 묵는 숙소 호텔 쪽으로 가보니 큰 성당과 한쪽에서는 전시회도 하는데 1유로라 했다. 호텔 쪽으로 오니 훨씬 편하게 올 수 있었다.
미카엘이 저녁 식사를 준비하였다. 배우차승원이 요리하던 그곳에 우리가 식사 준비를 하는 것이 신기해 몇 컷의 사진을 찍었다. 이후 난 마른빨래를 걷어다 개었다. 그늘이라서 걱정했는데 좀 늦게는 해가 그곳을 비춰 잘 말라 다행이었다. 주방에 냄비나 프라이팬이 부족하다. 다행히 우리만 식사를 준비했다. 미카엘은 소고기 스테이크와 밥을 준비하고 나는 식당에다 식사 준비를 했다. 와인까지 준비하고 나니 약간은 레스토랑에 온 느낌이었다.
저녁을 먹고 있는데 온몸에 피곤이 덕지덕지 붙은 한국인 부부가 도착했다.폰페라다 숙소에서 만난, 우리하고 나이가 비슷한 부부다. ” 아~ 오셨어요? 많이 힘드시죠? “ “정말 이곳까지 간신히 걸어왔어요. 다리도 아프고 게다가 베드 버그에 물려 온몸이 가려워요. 저희는 쉬었다가 천천히 먹을게요. 얼른 드세요. “ 하면서 룸으로 들어 갔다.
우린 저녁을 먹고 같은 건물에 있는 성당으로 미사를 드리러 갔다. 조금 시간이 늦어서 뒤쪽으로 앉았다. 여태까지 본 중에 가장 많은 인원이 미사를 드렸다ㆍ마을이 큰지 몰랐는데 어디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왔는지 신기했다. 미사를 마치고 돌아오니 안양 부부가 식사하고 있어 합석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