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5시 30분쯤 일어나 세수를 마치고 배낭을 식당으로 가져와 짐을 쌌다. 혹시 빠진 물건 때문에 항상 마지막 침대 점검은 휴대전화 불빛으로 하는데 오늘도 이상이 없어다행이다. 식당에 짐을 가져다 놓고 그곳에서 싸기 시작하는데, 의재도 일어나 씻고 준비하는 거 같다. 어느 정도 짐을 싸고 6시 좀 넘어 어제 끓여 놓은 누룽지를 데우기 시작했다. 우리와 수도원에 묵고 있는 원일이 정미 그리고 의재까지 5명이 먹어야 한다.
어제저녁 의재에게 아침에 누룽지를 먹을 거라 얘기했으니 기다리겠다 싶어 살펴보니, 벌써 빵에 또르띠야를 시켜 먹으려고 했다. 의재를 식탁으로 부르고 우리 먼저 먹으려고 그릇에 누룽지를 담았다.잠시 후에 카톡을 보니 수도원에서 온 원일과 정미가 알베르게 문이 닫혀 못 들어온다고 했다. 급히 누룽지를 먹고 문을 열어 주었다. 날씨가 쌀쌀했다. 9월 들어 기온이 내려가기도 했는데 특히 라바날 지역은 고도 1200M에 있어 기온이 낮은 것 같다.
우리는 서둘러 아침 식사를 마치고 베네딕도 성당 앞으로 갔다. 오늘 끌레멘스신부님께서 7시에 강복을 주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수도원 성당 쪽으로 가자 신부님께서 나오셨다. 끌리 멘스 신부님께서는 머리에 강복해 주시면서 기도해 주셨다. 그러면서 ‘마지막 결론을 말씀해 주신다’하면서
“거짓 까미노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이 길은 거짓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길입니다. 여러분이 산티아고 가서 무릎 끓고 인사를 드리는 순간, 야고보 성인의 가슴 생명수는 여러분 가슴에 생길 것입니다. 참된 까미노는 야고보 성인의 생명수가 각자의 가슴에 있어 생활 속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각자에게 주시는 하느님의 선물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본인이 원하는 것과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은 다를 수 있습니다. 반드시 좋은 선물을 주실 것이며 이미 받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까미노를 마치면 받을 수도 있습니다. 늘 삶 안에서 그분을 향해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십시오.”
하는 말씀을 해 주셨다. 우리는 "신부님 고맙습니다. 신부님께서 주신 미션을 수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 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볼이 약간 시려 울 정도로 썰렁했다. 하루를 쉬고 걷는데 오히려 몸이 좀 무거운 듯했다. 산으로 돌며 오르다 보니 왼쪽 발가락이 아프다. 벌써 아파서 걱정된다. 그리고 이상하게 허전해 보니 종아리 보호대를 착용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매일 착용하고 걸었는데 보호대 없이 걷는 건 처음 있는 일이다. 내리막길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는 말이 생각나 걱정이 되었다. 여태까지 종아리 보호대를 해서 많은 덕을 보았는데아차 싶었다.라바날 베네딕도 수도원이 있는 마을은 1200m 고지에 있는데 1500m 고지까지 올라가야 한다. 까미노 구간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새벽 어둠을 뚫고 한참을 오르니 폰세바돈 마을이 나온다. 당초에는 이 마을에서 숙박하기로하였었다. 폰세바돈 마을을 지나 걷다 보면 독일 코미디언 하페의 영화 <나의 산티아고-2015년> 명장면에서 주인공들이 발을 담갔던 물통이 나온다. 사진에 있는 물통은 방목하는 소들에게 물을 먹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철 십자가
부지런히 걸어 칠 킬로 지점인 철의 십자가까지 왔다. 돌들의 무덤 위에 높이 솟은 십자가가 인상적이다.십자가의 발치엔 돌무더기가 쌓여 있었다. 순례자들이 각자 염원을 담아 가져온 돌과 사진, 묵주 등 수많은 사연이 쌓여 있었다. 정미도 한국에서 가져온 돌에 소원을 써서 그곳에 놓아두었다. 한국에서부터 준비해서 이곳까지 가져온 정성이 대단하다.
사실 우리는 생각도 못 했는데 원하는 소원을 적어 철 십자가 아래 두고 가는 것도 큰 의미가 있을 것 같아 부러웠다. 우리는 각자 마음에 있는 것을 그곳에 내려놓았다. 철 십자가는 고지 1500m 정도에 있다. 이제는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어제 라바날 끌레멘스 신부님께서 “웬만하면 내려갈 때는 도로로 내려가는 게 좋을 겁니다. 까미노 길은 질러가는 길이지만 좀 험하고, 도로는 완만한데 좀 돌아간다고 볼 수 있지요.”
하시면서 힘든 표정을 지어 보이셨다.
그러나 우리는 험난한 까미노 길을 선택해서 걷기로 했다. 엊그제 일행 중 앞서간 태희와 현식이 내려가는 길이 장난이 아니라고 했다. 끌레멘스 신부님께서도 이 길은 내려가는 게 가도 가도 끝이 없어 아주 힘들었다고 인상을 쓰면서 말씀하셨었다.
좁은 오솔길에 내리막은 자갈과 돌이 박혀 있었고 바위로 덮여 있는 곳도 많았다. 게다가 바람까지 세게 불어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엘 아세보에서 일행을 잠깐 만나서 커피 두 잔을 시켜 빵과 사과와 같이 먹었다. 끌레멘스 신부님께서 끝도 없이 계속내려간다는 말씀을 실감했다.
엘 아세보에서 내려 오는 돌 길
산을 다 내려와 숙소 도착 마을에 내려와 바에 들려 미리 온 희재와 잠시 만났다. 폰페라다 6km 전 몰리나 세카 마을에서 순례자 메뉴로 식사를 하고 30분 정도 쉬었다.강물이 흐르는 다리 쪽을 바라보며 잠시 마음을 여유롭게 가졌다. 강물에서 수영하는 사람들과 옷을 벗고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도 있어 그곳을 바라보며 쉬는 사람들도 여유롭고 편안해 보였다.다시 유난히 길게 이어진 마을 중심으로 곧게 난 길을 걸어갔다.
도로 옆으로 인도로 쭈욱 이어졌다. 가로수도 가끔 있지만 뜨거운 날씨로 인해 한증막에 온 것처럼 땀이 줄줄 났다. 숙소 도착하기
1 km 전부터 집들이 있어 좀 지나면서 구글 지도를 켰다. 방향이 다른 곳을 가리켜 끄고 앞으로 나갔다. 미카엘이 마을 분에게 물어보니 다리를 건너라고 했다. 다리를 건너며 이게 맞나 하고 있을 때다.
이태리 남자가 손짓으로 오라고 해서 알베르게와 주소를 알려 주었더니, 구글 앱으로 찾아 방향을 대충 알려 주었다. 덕분에 거의 와서 한 사람에게 물어 찾아왔다. 간판과 구글 지도 없이 알베르게를 찾기는 정말 힘들다.
알베르게 도착하니 5시가 넘었다. 짐이 건너편 바에 있다고 해서 찾아왔는데 미카엘은 힘들어 인상이 굳어졌다. 이 층과 일 층에는 베드가 없어 지하로 내려왔다. 침대가 무척 많았는데 우리가 처음 입주한 셈이었다.베드 버그로 인해 침낭을 털어서 햇볕이 드는 바깥에다 널었다.
씻고 나서 배낭이 도착했던 찾아온 바에 가서 맥주 한 잔을 시켜 마셨다. 미카엘과 알베르게 찾는 문제로 다투었다. 구글 앱을 제대로 활용 못 해 우리가 고생한다며 나를 질책했다.서툰 나한테만 떠넘기는 미카엘이 야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