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안 읍성을 뒤로하고 차에 올랐다. 송광사로 가기 위해서다. 송광사는 사적 506호로 통도사, 해인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사찰로 꼽힌다. 현재 한국 선종을 이끄는 중심 사찰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가는 도중에 무반주로 노래를 하기도 했다. 그런 아쉬움 때문에 일찍 송광사를 보고서 순천에 나가 노래방에 기기로 했다. 한 40분쯤 걸려 도착하니 사방이 산속에 폭 파묻힌 명당 같았다. 절터들은 어쩌면 그리도 명당에만 자리를 잡았는지 궁금하다.
여러 절을 가봤는데 송광사는 규모면에서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절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게다가명당으로 자리를 잘 잡았고 건물도 안정적으로 편안한 느낌을 받았다. 대웅전 안에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41호로 지정된 석가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으며, 벽과 천장에는 선이 매우 활달하여 생동감을 가지게 하는 19세기 작품 비천(飛天)이 그려져 있다.
절 가생이로 흐르는 물이 어찌나 맑고 깨끗하던지 발을 담가보고 싶을 정도다. 나무들에 가려서 밖에서 보고는 절이 있을 거라고 믿기 어려웠다. 그때부터 흐리던 날씨도 개이고 약간의 햇살도 비추어서 멋쟁이 선글라스도 꺼내고 모자도 푹 눌러썼다. 다 돌아보기는 어려울 것 같고 큰 곳만 대충 돌고서 그림이 전시된 곳을 들려서 나왔다.
어느 분이 이곳에서 한 군데도 꼭 가봐야 한다고 했다. 그동안 먹었던 음식을 비우기 위해서다. 차면 비우는 게 이치다. 여긴 특별해서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해우소다. 그래서 빠짐없이 체험을 하기 위해서 갔는데 펑 뚫린 허공 때문에 다리가 후들거려서 혼났다. 아마 다른 회원들도 같은 느낌이었을 것이다.
송광사를 내려오면서 공사를 하고 있는 데가 많아서 좀 산만한 것이 흠이었다. 조용한 산사에서도 개발을 하느라 철망이 쳐져 있고 여기저기를 파 놓아서 아늑함을 느끼지 못해 아쉬웠다. 이미 송광사가 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을 때가 되자 순천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서둘러서 내려갔다.
마침 버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시원한 아이스크림으로 마음을 가라 앉혔다. 씽씽 달리는 차 안에서 꾸벅거리고 졸기도 했다. 갑자기 서는 바람에 눈을 번쩍 뜨기도 하면서 순천역에 도착을 했는데 3시 반이 조금 넘었다. 그래서 노래방에 가서 한 시간만 놀다 가자고 합의를 했다.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는회원들이기 때문이다. 여행을 계기로 다른 사람들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역시 <책 어울> 모임은 다르다. 멍석을 깔아 줘도 잘 논다. 그곳 풍경을 카메라에 담지 못한 것이 이제와 생각하니 너무나 아쉽다. 그런데 시간이 되자 모두들 미련 없이 탁 털고 일어섰다. 저녁을 먹기는 이른 시간이라 김밥 집으로 향했다. 어찌나 김밥을 깔끔하고 맛있던지 다 먹고 12줄을 사 가지고 나왔다.
순천역에서 기차를 기다렸다. 시간에 기차를 탔는데 어젯밤과는 사뭇 달랐다. 빈자리가 많아서 우리는 염치 불고하고 자리에 앉았다 역을 지날 때마다 빈자리는 채워졌다. 우리는 집 없는 사람의 설음을 의자 없는 눈치를 보며 느꼈다.
"어느 때에 비켜 달라고 할까?" 하고 노심초사
눈치를 보면서 오는 기분이란 ~ 2시간은 편안하게 왔는데 그 이후에는 또 바닥에 신문을 깔고 자리를 잡았다.
남편이 데리러 가느냐고 전화를 했지만 그냥 버스 타고 갈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곳에서 두런두런 얘기도 하고 남은 음식도 먹으며 오니 9시 30분쯤에 조치원역에 도착을 했다. 시내버스가 없으면 어떡하나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열 시 조금 안돼서 버스에 올랐다. 이로써 24시간 만의 꿈같은 여행은 막을 내렸다. 회장은 회원들의 책임을 졌던 관계로 여행사와 힘겹게 싸우느라 힘이 다 빠졌다.그래도 다들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하루 동안의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