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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미영 sopia Mar 08. 2021

Day 22.  신부님, "멈추세요, 그래야 보여요."

아스트로가 → 라바날 델 까미노 21km (09,04)

이야기 하나


아침에 일어나니 몸도 무겁고 눈도 부어 있다. '왜 이러지?' 오늘 어떻게 걸어야 하나 살짝 걱정되었다. 어제저녁에 밥을 끓여 요기하려고 했으나 따로 두지 않아서인지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삶은 달걀, 도넛, 요플레를 먹고 6시 30분에 출발했다. 어제 마트를 다녀오면서 다음 목적지로 가는 길을 대충 익혀 두었기 때문에 쉽게 빠져나왔다.


아스트로가를 거의 빠져나갈 즈음 남편이 배가 아프다며, 화장실을 간다고 배낭과 스틱을 내려놓고 Bar 안으로 들어갔다. 기다리는 동안 내 배도 살살 아파졌다. 남편이 나오면 나도 들어가야지 했는데, 참기가 힘들다. 그래서 손님 두 분이 커피를 마시고 있는 틈을 이용해 화장실 문을 여는 순간 주인이 쫓아왔다. 난 배가 아프다면서 한 번만 잠깐 가겠다고 사정을 했다. 주인은 화장실 문 앞에 쓰인 글씨를 가리키며 안된다고 했다. 아마도 이 바를 이용하는 손님만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는 문구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 끈질긴 주인아저씨다. 그래서 카페 콘 레체를 주문하고 남편에게 지갑을 맡기고 급히 볼 일을 보고 나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냥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미카엘이 주문한 커피가 맛있다고 해서 먹어 보니 정말 맛있다. 한 잔 시켜 먹길 잘한 것 같다.


짐을 챙겨 다시 길을 나섰다. 길을 사이에 두고 키가 크고 다리도 늘씬한 여자가 가볍게 사뿐사뿐 걷는다. 다리가 길어 보폭도 크다. 바로 앞질러 간다. 우리도 나름으로 열심히 걸었으나 이내 놓치고 말았다. 몇몇 사람들이 길을 같이 걸었는데 이미 앞서가고 둘만 걷고 있다. 우리는 두 번째 마을까지 두 시간 정도 걷기로 했다. 그런데 첫 번째 마을도 도착하기 전에 다시 배가 아팠다. 언제 사람이 걸어올지 모르기 때문에, 아무 데서나 볼일을 보기 어렵다. 억지로 참으며 다음 바까지 갔다. 어제 보았던 스페인 네 사람이 바에 들어가는 사이 화장실에 가는데, 팬티에 묻을까봐 걱정이 들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볼 일을 보고 나왔다. 배낭을 보니 아직 미카엘이 나오지 않았다. 손님이 많아서인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해서 스틱과 배낭을 갖고 밖으로 나왔다. 곧이어 미카엘도 나왔다.


뭐를 주문할까 하다가 지체되는 듯하여 다음 마을까지 걷기로 했다. 왜 이렇게 배가 아픈가에 대해 미카엘과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이제 생각해보니 어제 조미료를 조금만 넣어야 하는데 많이 넣은 것이 문제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젠 배가 고파 정신없이 먹느라 몰랐다.

“맞아 여보, 그거~라면수프 과다복용이 문제였어. 그래서 우리 몸이 반응하는 거였어.”
하며 얘기했더니 미카엘도 맞다고 맞장구를 쳤다. 다시 가벼운 마음으로 길을 걸었다. 앞에 허리가 구부정한 어르신이 큰 배낭과 작은 보조 가방 두 개를 메고 가신다. 바지 옆 주머니에는 물통도 보인다. 걷는 것이 너무 힘들어 보여 말을 붙이기가 어려울 정도다. 

일본 81세 어르신

우리는 산티아고 257.7km 전 지점에서 사진을 찍었다. 어르신이 가시다가 돌아와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하셨다. 사진을 찍고 나니 본인을 일본인이고 81세라고 소개했다. 말이 통하지 않아 더는 긴 대화는 나눌 수 없었다. 허리가 굽은 몸으로 걷고 계신 어르신에게 엄지를 치켜세우며 응원을 보냈다.


마을 바에 들려서 화장실도 갈 겸 바나나 두 개를 샀다. 그리고 간식으로 준비해 온 삶은 달걀과 도넛을 같이 먹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이렇게 설탕이 가득한 도넛은 먹지 않았는데, 힘이 드니 자연스럽게 먹게 된다. 설탕의 단 맛이 우리를 걸어가게 하는 에너지가 되고  있음을 안다.                                                         



이야기 둘


앞으로 베네딕도 수도원이 있는 마을까지 가려면 두 시간 정도는 부지런히 걸어야 한다. 간식도 먹었으니 모자를 쓰고 선글라스까지 갖춰 다시 출발이다. 도로를 지나서 도로 옆 오솔길로 쭉 걸었다. 마을 엘 간소에서 베네딕도 수도원 올라가는 길은 좀 가파르다. 수도원이 1,200미터 고지에 있기 때문이다. 나무뿌리가 울퉁불퉁 올라온 곳과 돌들이 박혀 있어 잘 보고 걸어야 한다. 그리고 길 한쪽으로 이어지는 철조망에는 나무로 만든 십자가들이 많이 걸려 있다. 지나간 사람들이 간절한 소원을 담은 상징물이라 생각되었다.

라바날 베네딕도 수도원 올라가는 길

어느 정도 올라왔을 때 소들이 열 마리 정도 보였다. 황소, 까망소, 흰 소까지 여유롭게 풀을 뜯고 있다. 바람 소리에 들려오는 워낭소리가 듣기 좋다. 이곳 소들은 행복한 삶을 사는 듯하다. 이런 자연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으니 말이다. 걷는 동안 옆으로 올리브나무가 많이 보였다. 이곳을 먼저 도착한 원일이 '알베르게에서 끓인 라면과 김치를 파는데 무척 맛있어요. 두 분도 이곳에 들려서 꼭 드셔 보세요.' 하고 문자가 왔다. 


아직 점심시간이 이른 듯해서 베네딕도 수도원으로 올라갔다. 인영균 끌레멘스 신부님을 만나보고 싶다고 하니,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우리보다 먼저 온 현식이 라면을 먹고 오는 길이라며 원일과 함께 올라왔다. 우리는 반가워서 사진을 찍었다.                          신부님께서 나오셨다. 햇볕이 뜨거워 일단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신부님께서는 다짜고짜 우리에게

"아~ 어디를 그렇게 가십니까?"

황당한 질문을 하신다.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분처럼  생뚱맞게 말씀을 하신다. 그러면서

"거기를 왜 가는데요?"

하고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우린 눈이 휘둥그레지며 잠시 머뭇거렸다. 우리가 당연히 산티아고를 가는 걸 알면서 하시는 질문이다. 아주 뻔한 답을 했다.

베네딕도 수도원 인영균 신부님

 "산티아고에 가죠, 거기를 가려고 왔으니까요"

신부님께서는 일단 멈추라고 말씀하셨다. 그때 참았던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안 그래도 너무 힘들어 쉬고 싶었는데 신부님께서 어떻게 눈치를 채셨을까? 마음을 들켜 버렸다. 일정이 빡빡해 꿈도 꾸지 못했기 때문에 무조건 매일 걸어야 했다. 그런데
“멈추세요, 그래야 보여요. 무작정 가는 것보다 알고 가세요”
하면서 몸과 마음, 영혼에게도 쉼과 휴식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 내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동키로 보낸 배낭이 오늘 도착지 마을 폰페라다로 갔기 때문에 그쪽으로 가야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강력하게 멈추라고 하지 않는가? 어떻게 할 것인지, 많은 생각이 오고 갔다. 고개를 떨구고 잠시 고심하였다. 우린 말을 하지 않았지만 서로 마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신부님, 멈추겠습니다.”


표정을 살피던 신부님께서 따라오라고 하셨다. 그곳은 라면을 먹으러 가려고 했던 필라르 알베르게였다. 한국 라면과 김치를 판다는 유명한 사설 알베르게였다. 주인에게 부탁해서 배낭을 이곳으로 가져오기로 하고 우린 라면을 시켰다. 신부님과 원일 그리고 정미까지 우리가 정신없이 라면 먹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라바날 필라스 알베르게 라면

쉰다는 건 전혀 계획에 없던 일정이다. ‘빠듯한 일정이라서 하루에 40km를 걷지 않았던가’ 주님께서는 인영균 끌레멘스 사제를 통해 우리를 멈추게 하셨다. 그게 우리에게 맞는 것이었나 보다. 어쩌면 우리도 간절히 원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우리는 멈추라는 말씀을 받아들였다. 좀 쉬고 나니 신부님께서 집무실로 원일과 정미, 우리 부부를 부르셨다. 좋은 말씀을 많이 해 주셨다.

 

정말 감사했다. 신부님 말씀을 들으니 왜 우리가 산티아고를 걷고 있는지, 무엇 때문에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에 대해 확신이 들었다. 내가 왜 간절한 마음으로 이곳을 오게 되었는지까지 알게 되었다. 서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정 순례자의 마음가짐을 새롭게 갖게 되어 참으로 감사하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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