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마르틴 마을에서 벗어나니 오솔길이 이어진다. 한참을 걸으니 쌀랑함은 사라졌다. 앞서 열심히 걷고 있는 사람은 어제 같은 알베르게 룸에서 잠을 잔 영현 학생 같다. 얼른 가 사진이라도 같이 찍고 싶었으나 우리보다 걸음이 더 빨라 포기했다. 천천히 가면서 자연을 배경으로 사진을 몇 컷 찍고 좀 여유 있게 걸었다.
얼마쯤 가니 바닥에 작은 똥들이 즐비하다. 옆에 양을 키우는 축사가 있었다. 가만들여다보는데 지키는 사나운 개가 짖어대기 시작한다. 지나는 동안 작은 소 축사가 두 개 있었는데 냄새가 심하지는 않았다.이른 시간이라 6.7km 오르비고 마을은 쉬지 않고 통과하기로 했다.
마을을 벗어나자 오르비고 강이 흐르고 있었다. 다리엘 파소 온로소의 멋진 고딕 다리가 길게 이어진다. 예쁜 돌로 장식해 만든 정말 길고 긴 다리다. 오르비고 다리는 스무 개 남짓한 아치로 만들어진 까미노 중 가장 긴 다리이다. 돈 수에로 기사가 결투를 치렀다는 이야기에서 다리의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다리 아래를 보니 저만치서 마을 아저씨가 고기를 잡고 계셨다.우리는 "올라' 하면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다리 위로얼마나 많은 순례자가 오고 갔을까? 오랫동안 다리를 무심히 바라본다. 돌을 활용해 이렇게 멋진 다리를 만들다니, 어디를 가나 스페인 사람들의 솜씨는 탁월하다.
다리에서 사진을 찍는 사이, 걸음이 빠른 현식이 도착했다. 덕분에 우리 부부는 다양한 포즈로 사진을 찍고 길게 이어진 마을을 벗어났다. 여기부터 길이 나눠진다고 했다. 도로 옆으로 쭈욱 이어진 길은 12킬로 안에 동네가 없다고 하며 몇 개의 마을을 거쳐 가는 길은 좀 돌아서 가는 길이라고 한다. 우린 현식과 작별 인사를 하고 마을을 거쳐서 돌아서 가는 길로 가기도 했다.
현식과 우린 서로 그동안의 만남에 관해 고마워하며 헤어졌다. 2.8km를 지나 마을이 나왔다. 바가 문을 연 곳이 없어서 그냥 지나치려고 했는데, 어떤 아저씨가 세요를 찍고 가라고 자기 집으로 불렀다. 벽에는 많은 물건이 질서 있게 정리돼 있었는데 한국 돈과 스카프 등 여러 가지가 전시되어 있었다. 커피도 가능하다고 해서 주문했다.
그러는 사이 어제 같이 숙식했던 영현 학생이 두 젊은 한국 친구와 들어왔다. 같이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다시 만나 무척 반가웠다. 주인아저씨와 영현 학생과 사진을 찍고, 우리 부부도 찍었다.아저씨가 본인이 한국방송에 나온 사람이라고 하면서 옷도 그때 받은 거라고 자랑을 하셨다.
그렇다면 2018년 여름에 스페인 산티아고에 god가 와서 촬영한 <같이 걸을까?>라는 프로그램에 나온 장소인가 보다. 미카엘은 벽에 <BUEN CAMINO> <한국을 사랑하는 아저씨, 사랑합니다> 하고 문장을 적어 보기 좋은 곳에 붙였다. 상큼한 멜론을 더 먹고 우리는 같이 나왔다.
영현 학생과 한국 두 젊은이와도 사진을 찍었다. 수염을 기른 젊은이와 키가 늘씬한 남미 파라과이 교포 3세 여대생이었다. 할아버지 때 이민 가서 거기서 태어난 이민 3세인데 한국어를 아주 완벽히 잘했다. 한국 이름은 이민지이고 파라과이 이름은 에스텔라고 한다.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더워서 잠바를 벗는 동안 그들은 먼저 갔다.
마을에 도착해 성당 들러서 세요를 찍고, 초를 세 개 사서 제대 앞에다 불을 붙여 놓고 잠시 기도를 바쳤다. 그리고 방명록에 (저희를 이곳에 보내주신 주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립니다.) 하고 글을 남기고 사진을 찍고 나왔다,마을을 빠져나와 우측으로 길이 이어졌는데 붉은 황톳길이다. 아마 기존에 좁은 길을 넓게 다시 만든 것 같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완만하게 이어진다.
오늘은 까미노를 걷는 사람이 제법 보인다. ‘어떤 날은 순례자가 보이지 않다가, 또 어떤 날은 부쩍 많은 것은 왜일까?’ 정말 궁금하다. 오늘은 같이 걷는 사람들이 많으니 마음 든든하다.얼마쯤 가니 십자가와 허수아비가 보여 사진을 찍었다. 이곳도 익숙하게 생각되는 게 god가 촬영하고 거쳐 간 장소 같다.
쭉 이어지는 길이다가 오르막과 내리막의 반복이다.오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유난히 파랗다. 비행기를 탔을 때 구름 위쪽에 온전히 파란 하늘 같았다. 멀리 아스트로가 마을이 보이는 듯하다. 저쪽에서 어떤 아저씨가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꼬레아나, 꼬레아나” 하면서 말이다. 순간 아저씨 기타 소리에 멈출까 하다가 지나쳤다. 눈에 띄게 돈을 요구하는 걸 눈치챘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나치자 바로 기타 소리는 그쳤다. 우리를 뒤따라오던 스페인 아저씨 네 사람이 크게 소리 내어 웃으며 “꼬레아네”를 다시 불렀다. 우리도 같이 웃었다. 아까 기타를 치던 아저씨는 오토바이를 타고 사라졌다.멀리 마을이 보이는 언덕 십자가와, 순례자가 물을 마시고 있는 순례자 동상에서 사진을 찍었다.
순례자 상
다시 4km를 열심히 걸어 오늘 목적지 아스트로가에 도착했다. 오면서 멀리서 보니 성당이 세 개쯤 보였다. 아스트로가를 대표하는 건물로는 산타마리아 대성당이 있다. 로마네스크와 바로크 양식이 혼합되어 있는 아스트로가의 가장 중요한 건물로 평가된다. 그리고 가우디가 설계한 주교 궁 있는데 현재는 까미노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 다른 건물은 아스트로가 시청이다.
우린 중간쯤에 숙소가 있을 거라 짐작하고 주교 궁 근처에 가서 찾았다그런데 우리가 숙소로 정한 알베르게를 못 찾겠다. 몇 사람에게 물어도 다른 쪽을 이야기하며 잘 모른다는 표정을 지었다.주소가 없어 구글 앱을 켤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이다. 미카엘이 몇 사람에게 물어 찾아가 보니 우리가 이미 그 앞에서 사진도 찍고 거쳐 간 마을 초입에 있는 알베르게였다. 추측으로 마을 중심으로 가서 한참을 헤맸다. 무거운 배낭을 진 미카엘이 힘들어했다.
오늘 알베르게는 규모가 아주 크지는 않아도 관리를 잘하는 알베르게 같았다. 깔끔한 침대하며 주방용품들과 식사 장소가 마음에 쏙 든다. 피곤한 탓에 한잠을 푹 자고 장을 보러 마트에 갔다. 오늘 저녁은 소고기를 이용한 감자찌개를 하기로 했다. 낼 간식과 필요한 물품들을 구입했더니 14유로쯤 되었다. 오다가 알베르게 근처 성당이 열어져 있어 가보니 성물 전시를 하고 있어 세요를 받고 사진도 찍고 왔다.
저녁 준비를 하는 주방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스웨덴에서 2주 여행을 하고 왔다는 젊은 교포 부부는 벌써 식사를 하고 있었다. 영현 일행은 수원에 사는 분과 함께 식사할 닭볶음탕을 다 마친 상태였다. 우리도 밥과 찌개를 끓여 발코니로 나가 바깥 경치를 보며 식사했다.
수원에서 오신 분과 같은 방이다. 작년 정년퇴직을 했는데 딸이 보내줘서 왔다고 한다. 여행에 대한 지식도 많고 사교성이 많으시다. 식사 후 방으로 돌아오니 수원에서 왔다는 60대 중반의 아저씨가 아스트로가 주교궁 이곳까지 오면서 겪었던 과정을 생생하게 말씀해 주신다.
마드리드 역에서 열차표 티켓팅을 도와준다는 스페인 사람에게 500유로 소매치기를 당한 얘기였다. 항상 조심해야겠다. 다들 산티아고 길에는 자신만의 스토리가 있기 마련이다.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오늘의 피로를 풀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