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이 없어서 아침은 먹지 못하고 일행과 아침 6시 30분쯤 출발했다. 아직 가로등이 켜진 새벽 골목길을 가다가 보니 스틱을 가져오지 않았다. 미카엘이 숙소에 돌아가서 가져왔다. 난 미안하기도 하고 어제 생일파티를 해 준 감사의 보답으로 우리가 조식을 사겠다고 했다. 5km 간 또산또스에서 간편한 식사를 주문했는데 커피, 바나나, 빵, 요플레를 먹었다. 어울려 든든하게 커피와 빵을 먹고 기분 좋게 다시 길을 걸었다.
걸으면서 우리는 원일의 연애 가치관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지휘자이며 박사 출신 음악가라서 그런지 눈이 높다. 여자는 35살이 넘으면 안 되는데, 이유는 아이를 낳아야 하기 때문이란다. 여태까지는 자신의 꿈을달성하느라 연애를 깊게 할 시간도 없었다고 했다. 잘생기고 친절하고 여자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원일이 연애한다면 잘 할 것이다. 일단 자신 일과 성공에 더 무게를 두었기 때문에 상대를 함부로 만나지 못했던 거 같다.
이야기를 나누며 길을 간다. 걷는 길 둑에 구멍이 여러 개가 있는데 들쥐 한 마리가 재빠르게 들어간다. 들쥐도 큰 게 아니고 작은 거라서 징그럽지는 않다. 정말 싫어하고 징그럽게 생각하는 건 기다란 뱀이다. 그런데 다행히 스페인에는 습하지 않아서 그런지 순례길에서 뱀을 본 적은 없다. 마을에서 약간 벗어난 지점에 Bar가 있어 우리는 마을 안쪽으로 걸어왔다.
그곳에서 숙소에 함께 묵었던 프랑스 할아버지를 다시 만났다. 재미교포가 있어 그분께 궁금한 것들을 여쭤볼 수 있었다, 등 뒤에 배낭은 10kg이고 앞쪽의 배낭은 5kg를 메고 걷고 있다고 하신다. 이것은 몸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나름 아이디어를 내신 것 같다. 50대 초반의 조카와 길을 걷고 있으나, 걷는 속도가 달라서 각자 걷고 숙소에서 만난다고 하셨다. 이렇게 걸을 수 있는 거에 감사하고, 끝까지 간다는 확고한 믿음만 버리지 않으면 누구나 가능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끝까지 완주하라고 격려와 힘을 주셨다.
날씨가 더워 시원한 맥주를 먹고 싶었으나 예상치 못하게 바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작은 슈퍼에서 원일이가 캔맥주를 샀다. 이어지는 오르막 오까산 능선을 타고 쭉 이어지는 산길이다. 산에 폭이 꽤 넓어 도로 정도의 넓은 길이 있는 게 신기했다. 중간쯤에 도내이션 바에서 잠시 쉬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과 함께 단체 사진을 찍었다. 모르는 사람들이긴 해도 이 순간 함께 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해 포즈를 취했다. 우연히 찍은 사진 한 장이 시간이 흐른 뒤에도 이곳을 더욱 생각나게 할 것이다.
가다 보니 길가에 보라색 꽃들이 많았다. 양쪽으로 소나무들도 빼곡했다. 숲길은 잠시 잠시 보였다. 오늘은 걷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산을 벗어나자 동네 보였다. 40분 정도를 걸어서 알베르게 도착했다. 공립 알베르게 10유로인데 식사할 수 있는 도구가 없는 것이 아쉽다. 2층 숙소에 한국인 청년 강보람을 만났는데 31살 직장인으로 잠시 퇴사를 하고 생장에서 부르고스까지 걷는다고 했다. 호텔에 맡겨둔 강아지 때문에 산티아고 순례까지는 어렵고 3년 뒤 다시 온다고 한다.
씻고 빨래를 해서 건너편에다 널고 어울려 생맥주 마셨다. 마른안주가 괜찮았다. 저녁엔 다 같이 식당으로 가서 순례자 메뉴를 먹었다. 애피타이저로 나온 혼합 샐러드가 아주 푸짐했다. 하몽과 멜론, 중간 메뉴인 비프스테이크가 특히 맛있었다. 까미노에는 함께 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어 즐겁고 행복하다. 새벽까지 밖이 시끄럽다. 아침에 알아보니 스페인은 축제가 많아서 이럴 때 밤새도록 즐겁게 지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