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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미영 sopia Mar 01. 2021

Day 13. 부르고스 대성당과 마주하다

아헤스→ 부르고스 23.7km (08,26)

오늘은 일행과 여유롭게 6시 30분 출발했다. 도착지는 부르고스이다. 다양한 유적들이 셀 수 없이 많은데, 바닷길과 까미노의 만남이 부르고스의 유물들을 멀리 퍼트렸다고 한다. 새벽 기온이 제법 쌀쌀하다. 아직 어두워 랜턴과 스마트폰을 켜고 30분 가까이 걸어갔다. 10km를 2시간에 걷고 커피와 에그 오믈렛을 주문해서 먹었다. 다른 곳보다 양파와 채소가 풍성하게 들어가 맛이 좋았다. 이 정도면 한 끼 식사로 그리고 영양적인 면에서도 굿이었다.


이후 걸으면서 장대한 자갈밭을 보고 '스페인에는 어쩜 이렇게 돌이 많을까?' 생각했다. 밭을 일구어 작물을 심었는데도 그 안에는 여전히 돌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밭을 가꾸어 소득을 올리는 스페인 민족의 지구력과 생활력이 대단해 보였다. 다시 오르막을 오른다. 이쯤에서 드는 생각은 우리가 10월 중순에 오지 않고 지금 여기 와 있는 게 정말 잘했다.


두툼해진 옷과 침낭으로 더 무거운 배낭 하며 혹시라도 11월쯤에 이런 곳에 눈이라도 온다면 어떨까? 중도에 포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절로 고개가 좌우로 흔들어진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런데 겨울 까미노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긴 한데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우린 지금 더울 때 차라리 오기를 참 잘한 것 같다.


산 오르막이 계속된다. 온통 돌길이라 힘이 몇 배로 든다. 돌들과 나무뿌리가 뒤엉킨 길은 마치 이스라엘의 광야를 걸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곳에 혼자 걸어간다면 어떨까? 무섭고 두려운 느낌이 들 것 같다. 마치 돌들을 일부러 뿌려 놓은 듯 많다. 오르막을 어느 정도 오르자 유명한 고난의 나무 십자가가 있었다. 위에 운동화 걸려 있었는데, 대체 저건 누가 어떻게 걸어 놓은 건지 신기하기만 하다.


가다 보니 멀리 우측에 소나무 한그루 우뚝 서 있었다. 까미노 길 위에서 나무처럼 당당하게 잘 이겨내며 걸으라고 , 이 길을 걷고 있는 순례자들에게 용기와 격려를 해 주는 것처럼 보였다. 산에서 내려와서 조금 걷다가 도로에 왔다. 바에서 잠깐 쉬고 도로 길로 접어들어 계속 걸었다. 부르고스로 가는 코스는 3코스가 있다고 한다. 대한민국 순례자협회 홈페이지에 자세하게 나와 있다. 나중에 다른 길도 있었다는 것을 알고 삭막한 도로로 오는 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돌아가도 예쁜 자연을 느끼며 올 걸 하는 후회를 했다.


삭막하고 냄새나는 부르고스 공장지대를 한참을 걸어갔다. 그래도 참고 잘 걸어갈 수 있었던 것은 점심을 아주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닥에 조개 표시가 박혀 있어 우리를 시내 쪽으로 안내했다. 12시가 좀 넘어 중국식당 웍을 갔다. 그런데 입구에 보니 13시 Open이라고 쓰여 있었다. 정말 맛있는 거 먹을 생각에 얼마나 빨리 걸었는지, 말도 안 하고 걸어왔는데 좀 허탈했다.


우리는 인근 공원에서 사진도 찍고 이야기도 나누며 기다렸다. 한 시간 기다리는 거야 충분히 할 수 있다. 공원에서 쉬면서 문 열기를 기다려 입장했다. 로그로뇨보다는 식당이 작고 음식도 다양하지 않았는데 그런대로 괜찮았다. 우리는 각자 입맛에 맞는 요리를 접시에 담아 각자 세 접시 정도는 먹었다. 가격은 13.5유로인데 가격이 전혀 아깝지 않게 오랜만에 포식했다. 걷고 먹고 자고가 전부인 순례자에게 먹는것은 아주 중요하다. 배부르게 먹고 오다가 중국 마트 들려 라면과 고추장 등을 사려고 했으나 문이 닫혀 있어 사지 못했다.


2km 정도 더 걸어 공립 알베르게 도착했다. 이곳 숙소는 괜찮은 호텔처럼 시설이나 침대도 아주 근사했다. 6유로 가격에 침대 커버까지 주었고 시설도 마음에 들었다. 순례자 여권에 세요를 찍으려 했으나 없어서 잃어버린 줄 알고 깜짝 놀랐다. 배낭 뒤 편에 넣어둔 것을 나중에 찾아 세요를 찍었다. 씻고 빨래를 해서 널었다. 1층 바깥에 빨래할 수 있는 공간과 줄이 설치되어 있어 안성맞춤이었다.


어떤 외국인 여자가 30분 가까이 큰 소리로 전화하는 소리가 들려 시끄럽게 한다. 씻고 한 시간 푹 잔 다음 기다리고 있는 일행과 알베르게 주변을 둘러보러 나왔다. 오늘 부르고스를 끝으로 순례길을 일단 마치는 스페인 부부를 만나 사진을 찍었다. 씩씩하고 밝아서 좋다. 우리는 부르고스 산타마리아 대성당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둘러보러 갔다. 세비아, 톨레도에 이어 스페인서 세 번째 규모가 큰 대성당은 350년에 걸쳐 지어졌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이다.

부르고스 대성당 뒤편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그 웅장함에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였다. 건축양식은 정교한 프랑스 고딕 양식을 적용한 것으로, 부르고스라는 도시가 피레네를 거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길목이라 더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내려가 안으로 들어가니 조각 전시회가 있었다. 정면 쪽 계단으로 들어가니 7유로 내고 입장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우린 겉만 보고 나와서 선물 코너에 들려서 구경하고 목걸이와 마그넷을 몇 개를 샀다. 계속 걸어서 가야 때문에 물건에 욕심을 부려 짐을 늘려서는 안 된다.

저녁에 와인 파티를 준비하기 위해 장을 보러 가면서 시내 구경도 하며 사진을 찍었다. 스페인은 성당을 중심으로 광장과 마을, 그리고 도시가 생기는가 보다. 항상 중심엔 성당이 있다. 우리는 가톨릭 신자이며 순례자이기 때문에 성당으로 자연스럽게 가게 된다. 먼저 와서 준비하여 7시 30분 미사를 드리러 갔다. 큰 도시답게 순례자들이 미사에 많이 참례했다. 순례자가 아닌 일반 관광객도 많이 보인다. 미사 후 신부님께서 순례자들을 앞으로 나오라고 말씀하시며, 기도문을 나눠 주셨다. 여러 번 만났던 순례자들이 보였는데 대략 30여 명 정도 있었다.


미사를 끝내고 물과 달걀을 사서 숙소 알베르게를 가는데 문자가 왔다. 일행이 와인 세팅이 다 되었다며 오프너를 갖고 오라고 한다. 술안주인 하몽과 멜론 그리고 스낵 과자, 과일 등을 먹었는데 정말 기분이 좋았다. 부르고스 순례자들끼리 즐거운 시간이 강물처럼 흐른다. 순례가 무탈하고 순조롭게 진행되어 감사하다. 내일부터는 이베리아 반도의 중심을 차지하는 메세타 고원지대의 힘든 고난의 순례길이 시작된다. 그 안에서 나는 그리고 우리 부부의 모습은 어떨지 기대된다.


오까산
부르고스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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