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5월이 되면 꽁치조림을 한 냄비 해 주시던 시어머님이 생각납니다. 2016년 당뇨 합병증으로 79세의 나이로 좀 이르게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시어머니와 저는 고부사이가 친정엄마처럼 살갑진 않았어도 아주 좋았습니다. 그건 어머니께서 그만큼 저를 사랑해 주셨고, 친척들에게 우리 며느리 잘한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워낙에 어머니께서 성실과 인내로 가정을 잘 꾸려오셨고, 모든 걸 모범적으로 잘해 주셨기에 사는 동안 어머니와 갈등이 별로 없었습니다.
결혼해서 3년을 시댁에서 살았고, 삼 형제의 장손 며느리였지만 항상 저를 신뢰하며 믿어 주셨습니다. 그런 분이기에 큰일에는 앞장서 일하게 되더라고요, 주변 친구들에게 시어머니의 이야기를 하면 처음엔 이해를 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다가 나중에는 저를 이해한답니다. 어머니의 빈자리가 마냥 아쉽게 느껴지곤 했는데 김장할 때와 어머니 손맛을 낸 꽁치조림이 그리운 날입니다.
아카시아가 후 두러 지게 피어 향기가 가슴으로 전해지는 즈음에, 시어머니께서는 마늘잎을 듬뿍 넣은 꽁치조림을 냄비 가득히 지져 놓고는 전화를 하신답니다.
" 얘야 마늘잎 넣어서 꽁치 조림 해놨다, 저녁에 아비 퇴근할 때 가져가라고 일러두어라".
아들과 통화를 안 하고 저에게 항상 통화를 하십니다. 미리 저녁에 먹을걸 알려 주시려는 의도가 있으실 거예요. '꽁치는 마늘잎을 넣고 해 먹여야 제맛이지.. 암' 다른 반찬들도 물론 잘해 주시는 편이지만유독 꽁치조림은 해마다 잊지 않고 당신이 손수 조려서 해 주신답니다.
남편은 어려서부터 어머님이 맛있게 해 준 기억이 있어서 그런지 그 맛이 기다려지나 봅니다. 생각해 보니 올해는 마늘잎을 넣은 꽁치조림을 먹질 못한 거예요. "어머님도 바쁘시니까 잊으신 게로구나!! 이 참에 내가 해 줘야지.." 그래서 남편이 출장에서 돌아오기 전 날 열 마리를 사다가 잘 손질해서 냉동실에 넣었답니다. 돌아오면 정말 맛있게 해 주리라 생각했죠. 드디어 오늘 저녁에 해 주려고 오후에 목요 장터에 가서 마늘잎을 찾으니 없더라고요. 그래서 은행 앞으로 갔답니다. 하지만 내가 찾는 마늘잎은 없고 마늘종만 눈에 띄었답니다.
"이를 어쩌지... 벌써 마늘잎이 다 들어가 버렸네 신경을 써서 지켜볼 걸 어떡하지?"
아~~ 그런데 제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 있었습니다.
할머니들 두 분이 열심히 마늘잎을 다듬고 계시더군요.
"이거 가져가도 되나요?"
했더니 어차피 버리는 것이니까 마음껏 가져가도 된다고 하잖아요. 체면 구기고 쭈그리고 앉아서 할머니들과 함께 마늘잎을 다듬는데 주인아저씨 검은 봉지까지 내주며 담아가라고 합디다. 어찌나 고마운지.. 정말 마음이 따뜻해졌답니다.
다된 저녁에... 가져온 마늘잎을 밑에 깔고 손질한 꽁치를 가지런히 놓았죠. 그리고 양파를 채 썰고 풋고추를 숭숭 썰어 그 위에 얹고 양념을 만들어 그 위에 골구루 뿌렸답니다. 그리고는 보글보글 끓이고 있는데 남편이 퇴근해 오며 "어~~ 무슨 좋은 냄새야?" " 응.. 당신이 좋아하는 꽁치조림이야" 했더니 나를 사랑스럽게 안아 주었답니다. 조린 꽁치조림으로 우리 가족들은 맛있게 식사를 했답니다. 저녁을 먹고 시댁에 갔지요. 며칠 출장을 다녀와서 인사드리러 갔답니다. 그랬더니 어머님도 마늘잎을 어렵사리 구해 놓았다며 내일이라도 꽁치 사다가 해 주시겠다고 하시는 겁니다.
" 어머님 저녁에 꽁치조림 먹었는데요, 어떡해요~" 그동안 아들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몇 칠전부터 생각하고 계셨을 어머님을 생각하니 좀 죄송한 마음이 들더군요. 당신 아들을 위해 올해도 잊지 않으시고 마음에 두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으니까요. 올해도 꼭 한 번은 사랑의 마음을 그런 식으로, 자식에게 전해 주고 싶으셨던 것을 제가 훔친 기분이었죠. 어머님은 해마다 꽁치를 조리면서 얼마나행복하셨을까요?젊은 시절에 모내기하던 때를 떠올리며 어머님은 그때의 기분으로 아들에게 해마다 사랑을 전해 주시지 않았을까요?
내년에는 어머니의 작은 행복을 뺐지 말고 느긋하며 기다리리라 다짐을 했답니다. 그리고 나도 내 아들에게 어머님이 해 오신 것처럼 기억되는 음식으로 사랑을 듬뿍 전해 줄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지금은 세상에 안 계시지만 아카시아 향기가 전해지는 5월이면 꽁치를 조려 해 주셨던 어머님이 생각나 보고 싶어 집니다. 어머님은 당신의 사랑을 곳곳에다 특히 꽁치조림에 듬뿍 남겨 놓고 떠나셨습니다. 올 해도 어머님의 모습을 기억하면서 아카시아꽃이 피면, 서둘러 마늘잎과 꽁치를 사다가 보글보글 조려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