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40km를 걸을 예정이라서 두 개의 배낭을 동키로 보내기로 했다. 다른 날은 하나만 보내고 미카엘이 8kg 정도의 배낭을 메고 걸었다. 오늘은 워낙에 오래 걸을 거라서 다 보내고 걷기에만 집중을 하려고 한다. 다이소에서 산 작은 배낭에 간식과 필요한 물건을 넣었다. 가격이 저렴한 거라 별 기대를 하지 않았던 건데 요긴하게 사용한다. 남편이 작은 배낭을 메고, 난 허리에 미니 가방을 둘렀다. 어제 끓여 놓은 죽과 요플레를 먹고 출발했다. 새벽 6시에 출발하는데 어제처럼하늘의 별이 무수히 많았다. 짙은 어둠일수록 별이 빛남을 실감한다.
한참을 가다 보니 배가 살살 아팠다. 일직선으로 이어진 길에는 나무가없어 용변을 보기는 어렵다. 난감한 상황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아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 참기는 어려워 미카엘에게 휴지를 부탁하고 무조건 바지를 내렸다. 미카엘은 옷핀을 단 배낭에서 이리저리 휴지를 찾았다. 다행히 바로 찾아 주었다.
“아, 여보 이렇게 속이 편한 걸, 참고 오느라 죽을 뻔했네~” “ 그래? 하하~ 그럼 나도 이 참에 볼일을 보고 가야겠다.” 미카엘도 이어서 속을 비웠다. 역시 시원하다고 말했다.우리는 마음 편히걷기 시작했다. 스페인 산티아고 길에는 화장실이 마을 bar에만있고 공중화장실은 없다. 순례자들은 걷는 동안의 용변이문제다. 그러다 보니움푹 들어간 곳 그리고 숲이나 나무 뒤에 보면 휴지들이 엄청 많다. 생리 현상을 이렇게 걷다가 해결할 수밖에없다.
8월은 7시쯤 되니 하늘이 서서히 밝아 오면서 별빛도 흐려진다. 7시 40분쯤 되니 우리가 등지고 걸어가는 동쪽에서 해가 솟아오른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해를 보는 건 참 드물다. 떠오르는 해는 둥글고 크며 이글이글 힘차다. 그래서 붉은빛도 참으로 강렬하다. 우리는 돌아서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불과 해는 2분 안에 지평선 위로 올라왔다. 붉고 선명한 해를 카메라에 모두 담을 수 없는 것이 아쉽고 안타깝다.
우리는 다시 서쪽으로 돌아서 가기 시작했다. 10km 되는 오아시스 바에서 커피를 시켜 마셨는데 정말 맛이 없었다. 카페 콘 레체인데 마치 커피믹스에 물을 잔뜩 부어놓은 듯이 정말 맛이 없다. 삶은 달걀을 먹으며 간신히 마시다 버렸다.17km 되는 깔 사디아 마을에 갔을 때, 차에서 자전거 내리는 한국인들을 보니 반가웠다. 일주일째 된다고 하며 다섯 분이 왔다.
타고 가기 쉬운 코스는 타고 그렇지 않으면 차로 이동한다고 한다.우선 우리는 신발을 벗고 삶은 달걀과 과일을 먹었다. 미카엘이 소금을 좀 얻어 왔는데 부는 바람에 쏟아졌다. 그래도 우린 개의치 않고 식탁에 소금을 찍어 달걀을 먹었다. 잠깐 화장실에 다녀와 보니 자전거 일행은 차를 타고 사라졌다. 기념사진이라도 찍을 걸 하는 아쉬움이 컸다.
오늘 길은 정말 다이내믹하다. 5km 정도는 아스팔트였고 17km 정도는 신작로 길, 또 오솔길도 있고, 도로 옆길도 있고, 돌길, 자갈길, 모랫길도 있었다. 그중에 가장 힘든 길은 돌길이다. 스틱을 사용하다 미끄러질 수도 있고, 자칫 헛디뎌 넘어질 수도 있어 사고의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정말 지루한 것은 계속 같은 풍경을 두고 걷는 것이다. 마치 몇 시간씩 같은 곳에다 헛발질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앞으로 가고 있는데 풍경이 그대로라서 제자리를 걷는 것 같다. 그 지루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고 멀미가 날 정도이다.
앞 일행과 차츰 멀어졌다. 어쩔 수 없이 각자의 페이스대로 걸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까스로 점심시간에 바에 가니 그곳에 일행이 있었다. 마당 잔디밭에는 야고보 성인 칼 십자가가 인상적으로 꽂혀있었다. 스페인이 꾸르실료 탄생지라는 것이 실감이 난다. 우리도 맥주와 샌드위치, 혼합 샐러드를 시켜 점심을 먹었다. 먼저 온 일행이 갈 채비를 해서 같이 가려고 했다.
미카엘이 휴대전화를 충전해 카톡을 보낸다고 기다리라고 한다. 한참을 기다려서 카톡을 보내고 일어섰다. 떠난 일행을 쫓아 부지런히 걸었는데, 앞에 일행은 보이지 않았다. “어~어떻게 된 거지? 우리가 길을 잘못 온 건가?”
마을 길로 빙 돌아가는데도보이지 않았다.
이후 다음 마을 바에서 맥주 마시려다 다시 일행을 만났다. 길은 이어지게 되어있나 보다. 원일과 태희는 도로 옆길 즉 질러오는 길로 왔다고 한다. 알고 보니 우리가 걸었던 길은 원래 길이었다. 함께 맥주를 마시고 쉬다가 다시 출발했다. 40km는 이틀 걷는 정도의 코스다. 하루에 걷기에는 진력이 나고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래도 일행이 있어 수다도 떨며 갈 수 있어 다행이다. 숙소는 사하군의 성당을 개조해 만든 공립 알베르게로 배낭 두 개를 보내 놓았었다.
뜨거운 태양을 온전히 머리에 받으며 5시까지 걸었다. 에너지가 다 소진되고, 남아 있는 진까지 모두 빠진 느낌이다. 숙소는 사람이 거의 없어 헐렁했다. 좀 쉬고 나서 남자들이 장을 보러 갔다. 걷느라 진이 다 빠진 나를 배려해서이다. 기진맥진한 몸이라 닭백숙을 만들어 영양을 보충하기로 했다. 역시 닭은 지친 우리 몸에 영양을 주기에 안성맞춤이다.
마늘도 듬뿍 넣고 푹 끓여 고기를 뜯어먹었다. 그러고 나서 국물에 쌀을 넣어 닭죽을 끓여서 먹었더니 정말 맛있었다. 온몸의 노곤했던 세포들이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옆에서 브라질 두 자매가 어떻게 ‘저걸 먹지?’하는 표정으로 의아하게 쳐다본다. 이 깊은 맛을 어찌 알 것인가? 우린 맛있게 먹고 나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