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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미영 sopia Apr 25. 2021

영화 리뷰 - 《 신과 함께 가라 》

2003년- 독일 졸탄 슈피란델리 감독 /106분

<신과 함께 가라> 영화는 2003년 국내 개봉된 귀한 독일 영화이다. 우리나라에서 2016년 창작 뮤지컬로 공연된 적도 있다. 그리고 비슷한 제목 2018년 김용화 감독의 하정우 주연 영화 <신과 함께>도 있다.  할리우드 영화에 익숙한 우리는 독일 영화가 좀 세련되지 못하고 어설픈 느낌마저 들것이다. 화질도 많이 떨어지고 화면의 구성비율도 마치 1960년대 영화처럼 초라한 면이 있다.


이 영화는 독일 산골 깊은 곳의 수도원 수도사들의 이야기다. 수도사들이 부르는 그레고리오 성가 등을 들을 수 있어 장엄하고 거룩한 느낌도 든다. 이영화에는 두 가지 귀한 물건이 이들과 함께 한다. 그것은  '우르반 규범 집'과 '소리굽쇠'이다. 중간중간 위트와 유머가 적당하게 버무려져 영화의 재미도 주고 있다. 그들의 순수한 모습에 우리 각자의 모습을 비추어 봐도 좋을 것이다.


영화는 중세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숲 속 깊은 수도원에서 시작된다. 칸토리 안 교단은 17세기 교회로부터 파문을 당했다. (칸토리 안의 뜻은 스페인어로 악곡, 음악연습이고 포르투갈어로 노래 부름이라는 뜻이다). 이탈리아의 몬 체 볼리 수도원과 더불어 단 두 곳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곳 독일 칸토리 안 수도원에는 원장 수도사, 벤노 수도사, 타실로 수도사, 아르보 수도사 네 명이 살고 있다.  


수도원에서 성가로 아침 미사를 드리던 중에 후원자의 후원 거부로 원장 수도사는 충격을 받아 쓰러진다. 이들에게는 보물처럼 여기는 '우르반 규범 집'이 있는데, 원장 수도사는 이것을 이탈리아 몬테 체 볼리 수도원에 가져가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는다. 세명의 수도사 벤노(마이클 귀스덱) 타실로(매티아스 브레너 ), 아르보(다니엘 브륄 )그리고 염소와 '우르반 규범 집'을 갖고 이탈리아로 길을 떠나게 된다.


<신과 함께 가라>에서 세수도사의 개성을 반영한 함께이자 따로인 구도의 길이라고 할 수 있다. 고지식하고 지적 욕구가 강한 벤노, 직관적이고 믿음을 보이는 타실로, 아기 때 수도원에 들어와 세상을 모르는 미소년 아르보의 각기 다른 인물들이다. 이영화에서 수도사들이 함께 부르는 성가는 남자들이 부르지만 화음이 아주 잘 맞는다. 미사를 그레고리안 성가를 하며 함께 화음을 맞추어 노래 부를 때는 아주 거룩하게 느껴진다.


세명의 수도사들이  수도원을 떠나 이탈리아로 가면서 세상을 경험하는 여정 중에 맞닥뜨리게 되는 여러 유혹 앞에서 겪게 되는 과정을 담았다.   이수도사들을 통해 현대인이 어버린 순수성과 아름다운 삶의 가치를 종교적인 시선이 아닌 우리의 시선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내면의 소리를 잘 들으며 살고 있는지 반성하게 한다.

 

 그들은 지도 한 장과 염소 한 마리를 끌고 이탈리아로 가기 위해 세상 속으로 나간다. 돈도 없고 자동차도 없기에 그들은 '우르반 규범 집'을 옆에 끼고 셋이 길을 떠났다. 염소는 얼마 가지 못하고 길에서 사고로 죽게 된다.  걸어가다가 그들은 ( 유독 폐기물 무단투기 현장) 이들을 몰래 사진을 찍으려고 나왔던 여기자를 만난다. 여기자와 쫓기듯이 그 차를 차고 시내로 들어오다가 도중에 기름이 떨어져 숲 속에서 야영을 하며 머문다. 이때 세 사람은 (Genealogica Christi)를 부르며 찬송을 드리는데 남자들의 목소리이지만 거룩하고 아름답게 들린다.


그러다가 타로가 잠깐 본인의 고향에 들려보고 싶다는 말에 방문을 하게 된다. 14살에 고향을 떠나 30년 만에 만나는 노모의 정에 타실로는 갑자기 마음이 흔들리게 되어 같이 떠나지 못한다. 지적 호기심과 인정 욕구가 강한 벤노는 아르보와 우연찮게 들린 예수회 신학교에서 마음껏 연구하고 지적인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다는 에 넘어가고 만다. 더구나 옛 친구가 교장으로 있어 쉽사리 유혹에 빠졌다.


이때 아르보는 몰래 규범 집을 찾아 신학교를 도망 나와 키이라에게 전화를 한다. 키이라는 아르보를 목욕시키고 머리를 말려 주다가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된다. 순수하고 어리지만 그도 남자이기에 사랑의 격한 감정을 갖게 되면서 새롭게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전혀 이런 일에 빠질 것 같지 않았던 세수도사는 세상 저속에 잠시 머물면서 각자 각자 나름대로 이유 있는 유혹에 잠시 넘어지게 된다. 세수도사들은 세상사에 취해 잠시 정신줄을 놓아 버렸다.   


타실로는 집에서 어머니와 보내던 시간을 청산하고 아르보와 만나게 된다. 그들은 함께 미사를 드리는 시간에 벤노를 구출하러 간다. 이때 키이라가 반주자에게 279번 성가 대신에 '주의 손길을 받아들이는 자'로 성가로 바꾸어 연주하게 되면서 이곳에서 각자의 목소리로 아름다운 성가를 부르며 세 사람은 그곳에서 빠져나오게 된다. 결정적인 깨달음을 알게 된 것이다. 그것은 신과 함께 가라는 메시지였다.


그들은 각자의 유혹을 물리치고 셋이 이탈리아로 간다. 그곳에서 수도사들이 함께 노래를 부른다. 이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고 돌아온 수도사는 손에 소리굽쇠를 내민다. 이것은 여기자 키이라가 가져온 것이다. 아르보는 황급히 밖을 나가서 찾아보지만 키이라는 떠나고 없다. 키이라는 아르보를 사랑하지만 그가 있을 곳은 수도원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전해주러 왔다고 생각되었다. 그녀도 소리굽쇠를 통해 마음의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리라.


' 당신들은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지만, 나에게는 단지 주어진 길이었다.'

수도원을 나가려는 자신을 말리던 수도사들에게 아르보가 던진 말이었다. 그건 그랬다 아르보는 스스로 선택해서 수도원에 온 게 아니라 어려서부터 그곳에서 길러졌다. 그래서 세상 밖은 아예 몰랐다. 그가 밖을 경험하기 전에는 수도원 생활에 만족하며 살았을 것이다.


아르보는 소리굽쇠를 수도원에 남기고 키이라를 찾아 떠난다. 그렇치만 그 여정은 모른다. 영화는 관객들이 각자 이후의 스토리를 구성하도록 남겨두고 있다. 아르보가 키이라를 찾아가 즐겁고 재미있게 사는 삶을 선택하거나, 다시 수도원으로 돌아가서 수사들과 하느님을 찬양하며 여생을 보낼지는 아르보의 선택에 달려있다. 그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은 마음의 소리일 것이다. 그는 순수함으로 마음의 소리를 잘 들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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