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남은 밥으로 죽을 끓여 데워 먹고 6시 30분 출발했다. 이틀을 동키 서비스를 받았던 우리 일행은, 각자의 배낭을 서로 들어보며 어느 것이 더 무거운지를 얘기했다. 그러면서 "매일 메고 갈 때는 몰랐는데 다시 등에 짊어지려니, 정말 엄두가 안 납니다."하며 엄살을 부린다. 네 번째 산티아고 길을 걷는 50대 초 자매와 얼굴에 주름이 있긴 하지만 근육질이 강해 보이는 60대 초 브라질 자매도 우리 일행과 거의 같이 출발했다.
그런데 산티아고 가는 길의 방향 때문에 주춤거린다. 어두워 노란 화살표시를 잘못 볼 수 있어 신중하게 찾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가는 것을 보고 차에 탄 분이 그 방향이 아니고 다른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일러 주었다. 항상 그랬다. 길을 잘못 가거나 길을 헤맬 때는 누군가 나타나 길을 제대로 갈 수 있도록 알려 주곤 한다.
7km 지점 거의 다 되어 길이 두 가지로 표시되는데 우린 짧은 길을 택했다. 다른 길은 예전 길로 좀 둘러가야 하는데 브라질 두 자매는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그 길을 택했다. 오늘은 24km를 걷고 레온 도시에 있는 뷔페 웍에 가서 푸짐하게 먹을 예정이라 되도록 간식 타임을 줄였다.
30분쯤 지나자 소똥 냄새가 진동한다. 길 왼쪽으로 시꺼먼 것들이 보여 들여다보니 소들이 누워 잠자고 있었다. 여긴 소를 방목하여 키우는가 보다. 소똥 냄새가 나는 이런 구간이 길면 어떻게 하나 했는데 2km로 정도 가니 냄새가 나지 않아 다행이다.
만실라 마을에서 커피와 오렌지 주스, 계란과 빵으로 간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했다. 독일 앙카 아가씨가 알려준 정보에 의하면 레온 알베르게가 거의 꽉 찼다고 한다. 그래서 원일이가 오늘 묵을 레온의 공립 알베르게로 연락했다. 그런데 공립은예약이 안 된다고 한다. 그래서 여섯 명이 12시 좀 넘어 도착한다고 알려주고 부리나케 걸었다. 짐을 이미 보내 놓은 터라 다른 알베르게로 가게 될 때 문제가 크기 때문이다.
사진 찍는 것도 포기하고 다시 부지런히 걸었다. 파란 골조 다리를 타고 외곽으로 올라가 이베리아 반도 북서쪽 레온 도시에 입성했다. 레온은 메세타 센트랄 고원 북서부 지역에 있으며 베르네 데스 강과 토리오 강이 합류한다.
레온의 토리오 강
우리는 도심을 한 시간 정도를 걸어 숙소 산타마리아 무니시팔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접수하고 나서 옆에 계신 수녀님과 사진을 찍었다. 일행이 2층에 있는 일반실로 갔고, 우리 부부는 1층의 가족실이라는 곳으로 와 짐을 풀었다. 우리가 묵는 1층은 사람이 많지 않았고 크게 두 칸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독일 앙카가 우리에게 레온 공립 알베르게에 사람이 많다는 것은 정보 오류였다.
우리는 레온의 중국 뷔페 웍을 가기 위해 1시 넘어서 출발했다.로그로뇨와 부르고스에서도 웍을 갔었다.까미노 큰 도시에 웍을 세 번째 가는 중이다. 우린 등산화를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었는데 다른 일행은 등산화다. 현식이 2km 정도 걸으려면 슬리퍼는 힘들 거라고 했다. 우린 지난번 로그로뇨에서도 슬리퍼를 신고 1.6km 걸어 간 적이 있어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레온의 끝자락까지 가면서 슬리퍼 신을 걸 후회했다. 대체 얼마를 더 가야 하는 거냐고 투정을 부릴 때 현식이 거의 다 와 간다는 신호를 보냈다.
큰 건물 이 층 안쪽에 쭉 들어가 자리 잡은 웍 중국 뷔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우리 일행도 6명이 앉는 자리에 앉았다. 이곳은 눈으로 보나 맛으로도 세계 일류이고 명품 요리였다. 세계 입맛을 사로잡은 음식점을 찾는 많은 사람의 표정이 아주 행복해 보인다. 오늘은 주일이라 가격이 좀 비싸긴 해도 (18.25유로 맥주 포함) 대만족이다. 다시 이 킬로를 걸어 숙소로 돌아오면서 ATM기에서 필요한 돈을 찾았다.
레온의 중국 뷔페 웍 음식
피곤해 좀 자다가 일어나 레온 시내를 투어 할 수 있는 미니기차 투어 (4.5유로, 35분 소요)를 하고 레온 대성당 외부만 구경했다. 성당 내부는 문을 닫아서 구경하지 못했다. 그러고 나서 세요를 받고 물과 약간의 간식을 사서 숙소를 왔다. 좀 쉬다가 밤 9시에 수녀님을 따라 알베르게와 붙어있는 베네딕도 수도원에서 저녁기도를 하였다. 오늘 하루 잘 걷게 해 주신 것과 함께 걸을 수 있도록 든든한 동반자들을 보내주심에 감사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