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리뷰- 시가 내게로 왔다 2

마음산책, 2004 / 김용택 / 152page

by 신미영 sopia

이 책의 저자 김용택 시인은 1948년 전북 임실에서 태어나 순창 농립고등학교를 졸업. 1982년 "21인 신작 시집"에 시 '섬진강'을 발표하여 문단에 데뷔했다. 섬세한 시어와 서정적인 가락을 바탕으로 농촌의 현실을 노래하였다. 섬진강에 거처를 두고 초등학교에 재직 중이다. 시집 <섬진강>을 비롯 다수의 시집을 출간한 시인이다. 김용택은 1986년에 '김수영 문학상' 1997년에 '소월시'문학상을 받는다.


<시가 내게로 왔다 2>는 김용택 시인의 자작시가 아니라 유명 시인들의 시를 엮은 시집이다. 48편을 엮어 1집을 내고 그 시선집에 묶이지 못한 시들을 다시 엮어 2집을 낸 것이다. 그는 그동안 이 시들 때문에 마음이 좀 무거웠다고 했다. 이 시집에는 우리 시 52편과 외국시 3편을 넣었다. 대신 시 한 편에 서평을 적었다. 시집을 엮고 나니 저자는 마음이 홀가분하다고 했다. 그런데 돋아나는 새 풀잎처럼 시 밭에 시가 다시 가득해 아쉬움을 달래며 다음을 기약했다. 이후 < 시가 내게로 왔다 > 시리즈는 3권과 4권 그리고 5권의 漢詩까지 출간되었다.


세상의 막힌 숨통을 뚫는 길목에 시인은 있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탁한 공기를 가르는 한줄기 바람이어야 한다고. 탄산음료들이 산같이 만들어진다 해서 진짜 샘물이 필요 없느냐고 다시 묻는다. 이 시선집에 실린 시들은 저자의 개인적인 취향이다. 그리고 이 시들은 어떤 이유로든 그와 인연을 닿았던 시들이다. 시여! 꽃잎처럼 날아가라, 사람들의 맨가슴 위로.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정희성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 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아버지는 강변에 둑을 만드셨다. 나무뿌리와 커다란 돌들을 굴려 둑을 쌓았다. 구멍이 숭숭 뚫린 흙탕물 묻은 '런닝구', 봄볕에 검게 그을린 팔뚝이 큰 돌을 들어 올리거나, 나무뿌리를 괭잇날로 내려칠 때는 붉은 힘살이 꿈틀거렸다. 막강해 보이시던 아버님이 저문 강에 앉아 날카롭게 닳아진 삽날을 씻을 때 나는 번뜩이는 삽날을 빛을 보며 산이 우는 소리를 들었다. 삽을 메고 어둑 거리는 마을로 들어오시는 아버지가 그립다.



선운사에서 ― 최영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최영미를 김용택 시인의 어머님이 처음 보았을 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본 여자들 중에 네가 제일 예쁘다." 이쁜 여자 영미야! 선운사 꽃 피면 놀러 가자. 꽃송이가 붉은 똥같이 떨어지면 선운사에 가자.




흰 부추꽃으로 - 박남준


몸이 서툴다 사는 일이 늘 그렇다

나무를 하다 보면 자주 손등이나 다리 어디 찢기고 긁혀

돌아오는 길이 절뚝거린다 하루해가 저문다

비로소 어둠이 고요한 것들을 빛나게 한다

별빛이 차다 불을 지펴야겠군


이것들 한때 숲을 이루며 저마다 깊어졌던 것들

아궁이 속에서 어떤 것 더 활활 타오르며

거품을 무는 것이 있다

몇 번이나 도끼질이 빗나가던 옹이 박힌 나무다

이건 상처다 상처 받은 나무

이승의 여기저기에 등뼈를 꺾인

그리하여 일그러진 것들도 한 번은 무섭게 타오를 수 있는가


언제쯤이나 사는 일이 서툴지 않을까

내 삶의 무거운 옹이들도 불길을 타고

먼지처럼 날았으면 좋겠어

타오르는 것들은 허공에 올라 재를 남긴다


흰 재, 저 흰 재 부추밭에 뿌려야지

흰 부추꽃이 피어나면 목숨이 환해질까

흰 부추꽃 그 환한 환생


미소년 같던 남준이의 머리에도 흰 서리가 내렸다. 남준이는 지금은 하동에 산다. 모악산에 살면서 파란 칡잎에 산딸기를 따오던 남준아, 그게 네 시였다. 그 모습이 네 평생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