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신미영 sopia
Jun 20. 2021
책 리뷰 - {Nobody in the Sea}
도어 스프레스 2017년 / 최유수 / 85page
최유수의 책 Nobode in the Sea (아무도 없는 바다)는 85page로 시집보다도 짧다. 메모장인가 할 정도로 '이렇게 내용이 짧아도 책을 낼 수 있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바쁜 현대인들에게 이렇게 짧은 글이 오히려 사랑받는 경우도 있다. 저자 소개도 길지 않다. 그는 종교는 사랑, <사랑의 몽타주>, < 무엇인지 무엇이었는지 무엇일 수 있는지 > <아무도 없는 바다 > < 영원에 무늬가 있다면 > <Poetic paper 01> < 당신의 글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를 썼다.
아무도 없는 바다, 마지막 빛이 떠나간 바다 위로 비가 내린다. 모든 것이 사라졌지만 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파도는 미스터리를 실어 나른다. 아무렇게나 휘두른 물감들이 우리를 흠뻑 물들였다. 수만 번의 여름, 수만 번의 겨울, 나는 너를 기다리고 싶었다. 너는 나를 기다릴 수 있을까? 아무도 없는 바다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누군가는 부디 나의 무덤을 읽어 주기를
새로운 직장에서 한 달이 뒤를 돌아볼 겨를도 없이 순식간에 흘러갔다. 과거와 현재 사이, 시간의 경과를 깨닫는 것은 언제나 지금 이 순간이다. 직장에서 매 순간 무능함을 절감하는 동시에, 존재의 특별함을 사수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투쟁한다. 누구나 자기 자신의 관점으로만 본인을 드러내고 방어하려고 한다는 것을 겪어왔기 때문에, 유연하고 완곡한 침묵을 적절히 사용할 줄도 알게 되었다. 말의 교환에 익숙해져 버린 우리는 눈빛 혹은 침묵으로 순간을 함께 하는 법을 낯설어한다. 적당한 욕심과 게으름의 합이 자신을 채우고 있다.
사람의 눈을 관찰하는 시간보다 동공 없는 스크린을 응시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눈을 감고도 태연히 다닐 수 있었으면, 텍스트만으로도 완전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으면, 차라리 모든 구어가 시어가 될 수 있다면 , 맹목적인 동경, 편협은 늪처럼 질척거리고 스스로를 더 깊은 편협 속으로 격리시킨다. 저마다의 세계 안에서 패를 가르고 서로를 가두느라 모두가 정신이 없다. 쉴 틈 없는 긴장 속에 목이 마르다. 목소리를 낮춘다
일상이 설명적일수록 문장은 황량해진다. 활자와 멀어질수록 감정은 단조롭다. 시집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시는 단어를 주지 않고 단어와 단어 사이의 공백을 준다. 시집을 한 권 품고 사진전을 다녀오고 싶다. 사진의 언어는 우리 마음을 온갖 형태로 변주해준다. 전시의 메시지와 사진의 메시지는 대개 다르고, 다를 때 더 짙은 여운을 남긴다. 밤은 긴 터널을 지나가고, 새벽은 그 터널의 출구처럼 다가온다. 잠에 취한 강아지의 눈빛은 인간의 언어보다 경이롭다.
글은 감정을 끄집어내고 다듬어서 문장이라는 육신을 만들고 보다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게 한다. 우리가 주고받아야 할 인간적이고 일상적인 감정들을 위해 반드시 대단한 단어와 문장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투박하지만 솔직한 몇 마디의 문장에 담긴 감정은 마음과 마음 사이의 보이지 않는 거리를 잠시나마 좁혀 피부로 와닿게 만들어준다. 그래서 오로지 한 사람에게 향하는 문장은, 그 무엇보다도 절실하고, 투박할수록 강력하다.
우리는 자각하지 못 한채 늘 무언가에 파묻힌 채로 겨우 숨을 쉰다. 두터운 덩굴에 묶인 저자는 무례하게 들이치는 바닷물을 뱉지 못하고 컥컥거린다. 턱 밑까지 차오른 해수면을 벗어나는 것이 뜻대로 되지 않아서, 평생을 허우적거린다. 해무 속으로 흩어지는 날숨을 마지막까지 응시하며, 숨이 한 줌도 남지 않을 때까지 온 숨을 다 내쉬고는, 찰나의 고요 속에서야 겨우 안도한다. 발밑으로는 자꾸만 불어나는 후회들이 숲의 그림자처럼 어지러이 뒤엉켜 발목을 붙잡고 있다.
하고 있어라, 그게 무엇이든 어떤 상황이든, 일단 하고 있어라. 하고 있지 않으면 그 무엇도 되지 않는다. 하고 있으면 하고 있는 사이 무엇이든 된다. 굉장한 기회나 위대한 성과가 아니더라도,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계속해서 하고 있으면 반드시 변한다. 내가 변하든 상황이 변하든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고, 어떤 방식으로든 세계가 나의 선택에 반응할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것에 집중하는 사이 나는 무엇이 되어 있을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할 단순한 진리 중에 하나.
삶은 단 한 번 뿐이지만 그 한번 안에서 은연중에 반복된다는 것을 깨달았고, 아직은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살아가는 내내 자주 아플 것이다. 오래도록 익숙해지지 않는 누군가의 에필로그가 아직도 변명을 이어가고 있다. 닫고 싶지 않은 결말, 정돈되지 않을 질긴 마음, 멈춰 있는 시간들과 흩어지는 시간들, 어느 쪽이 우리를 슬프게 할까. 처음과 끝은 하나라는 말, 이 말을 이해할 수 있다면 더는 슬퍼하지 않게 될 거야. 문장을 쓴다는 것은 누군가를 들여다보는 거울을 만드는 것이고, 문장을 읽는다는 건 누군가 만든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 저자는 계속 거울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Nobode in the SeaNobode in the S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