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리뷰 - 길에게 길을 묻다

페이지 출판(2007) / 한국 문학작가 연합 동인지(4)/215P

by 신미영 sopia

2004년

6월에 발족된

한국문학작가연합은

매년 동인지를 발행하고

있다. 홈페이지를 운영하며

시화전도 열고 있다. 우리 모두는

그 온기로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고

다독여 글을 사랑하는 마음을 그려가고 있다. 마르지 않는 샘처럼 우리가

사랑하는 것으로 기둥을 세우고 서까래를

얹고 그렇게 한문연이라는 집을 짓고 문학이라는 이름의 밭을 열심히

가꾸었다. 앞으로 계속 글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며,

사로에게 힘이 되는 그런 사랑을

아름답게 표현하며 살아갈

것이다.




길에게 길을 묻다 / 김낙필



떠나 있을 때

겨울 편지 속 얇은 무명지 하나

흰나비 마냥 나풀나풀 떨어졌다

라벤더향 입술자국이 사랑을 노래하고

그리움은 향불 같았다

사랑 나이 지천명 잊고 살아 희미해져

바람 한 잎 이파리처럼 너울거리고

굳은 입술 그 끝 술잔에 떨고 있다


제 안에 짐승을 키우고 산다는 어느 광인처럼

불치의 병을 낫고

독을 하늘 닿는 콩나물처럼 기르는 나는

인간이라는 숙명적 이름표를 가슴에 달고 있다

우리 짐승 아닌 자가 어디 있어

마성을 숨기자니 괴롭지 않은 곳 어디던가


인파 속 걸을 때 사람의 길은 가장 외롭고

인간의 방은 춥다

말라비틀어진 세모난 빵조각과

스위트 피넛과 딸기가 버무려진 유효기간 지난

잼통처럼

버려진다는 것을 알고 나서

길에게 길을 묻기 시작했다


서편으로 강이 흐르고

해가 뻘에 빠지고

겨울비에 젖어 흔들리고

여름 눈이 내리고

눈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고

TV 수상기 혼자 시시덕거리고

그렇게 길은 비틀거리고


언제나 우리는

타인처럼 이렇게 다른 길에서 서성거리고




삼각으로 사는 삶 / 이향숙


꽃무늬 조각 천이 겹겹이 바늘에 물려있다

그라이데션으로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가 맞추어지지 않는 인생 빛깔

짝을 잃은 자줏빛 천은 하나 남은

삼각형 뿔 옆에 살짝 끼어든다

어울리지 않는다며 꽃무늬 천이

밀쳐내고 끼어든다

설움으로 여백을 보니

내가 설자리는 어디에도 없다

얼기설기 엮어지는 삶에도

짝이 없으면 서글퍼진다

둥글지 못한 세상

뾰족한 부분이 있어야 맞춰지는 재미라지만

가끔은 깊은 상처를 입기도 한다

뿔뿔이 짝지어지니 외톨 뿔은 큰 키

장대에 깃발 하나 세운다




무임승차 / 강희창


나는 모른다

미치도록 천진한

쪼그마한 물방울이


겁 없이 호수를 통과해

어떻게 연잎에

슬쩍 올라탔는지


살아나고자

저도 모르게 구른

가슴 저민 캄캄한 발길


여기 나만 모르고 있을 뿐

생명이 있는 건

다 안다


가슴 저민 캄캄한 발길





기도 / 이영


거친 파도는

텅 빈

모래밭을 할퀴고 있었다


시간은 느린 몸짓으로

내게 기어오르고

잠시 나의 발목을 붙잡는다


황금빛 저녁 햇살은

떠나는 님의 뒷모습에 함께 보내고

오랫동안 흩어 놓았던

기억을 모아 길고 긴

합장을 한다




비 오는 날, 카페 /이경란


유리창엔

눈물방울 그렁그렁


아마도

옛사랑의 그림자

문을 두드리나 보다


창밖 나누는

아예, 통곡


아마도

이곳에서 묻어 두고픈 기억

아픔을 헤집어 내나 보다


초록의 젊음 간작한 유리창 너머에서

휘감긴 나이테 속으로 감춘 설움

자꾸만 기어 나오나 보다




희망 / 김영철


밀물 들면 칠면초가 잠기는 바다

바다밖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도

안다

그아래 붉은빛

칠면초가 잠겨 있음을


가늠할 수 없는

답답하고 암울한 현실에도

믿는다

때 되면 밝히 올 불씨

가슴속에 살아 있음을


비 개인 봄날

어디에 숨었다가 나왔는지

잔디밭에 우르르 나앉은

노란 민들레처럼

희망은

그런 것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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