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리뷰 - 꽃잎 편지

창비출판사 / 도종환 /220page

by 신미영 sopia

엮은이 도종환은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1984년 동인지 <분단시대>1집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도종환은 1986년 <접시꽃 당신>이라는

시를 발표하며 크게 주목을 받았다.

그는 2005년 5월부터 2007년

4월까지 한국문화 예술위원회의

'문화 집배원'을 맡아 매주

시 한 편씩을 배달했다.

이 책의 제목은 정확히

<꽃잎의 말로 편지를 쓴다>이다.

시집의 구성은 일월부터 십이월까지

매주 한편씩의 시를 배달하며 짤막한

서평이 실려 있다. 붉고 화사한

시집 외에 플래시 동영상+ MP3 cd가

포함되어 있어 보고, 듣고,

감상할 수도 있어 좋다.


고개를 넘고 내를 건너 여러분의 창문을 두드리며 기쁜 소식을 전하는 집배원. 밖에 나가고 주인 없는 빈 뜨락에 가만히 시 한 편 내려놓고 오는 집배원. 일주일에 한 번 시를 배달하며 가슴 설레고 행복했다는 도종환 집배원. 시기에 맞는 시를 고르며 아름다운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랐다. 배달 시가 기쁨이 되고 위안이 되고 힘이 된다면 그것만으로 기뻤다. 시를 읽고 가까이하는 사람, 감동이 있고 설렘이 있으며 사람과 사물과 세상에 대한 사랑이 있는 사람은 아름다운 사람이다. 시를 읽는 여러분으로 하여 세상은 더욱 아름다워질 것이다.




비가 와도 젖은 자는 / 오규원



강가에서

그대와 나는 비를 멈출 수 없어

대신 추녀 밑에 멈추었었다

그 후 그 자리에 머물고 싶어

다시 한번 멈추었었다

비가 온다, 비가 와도

강은 젖지 않는다. 오늘도

나를 젖게 해 놓고, 내 안에서

그대 안으로 젖지 않고 옮겨가는

시간은 우리가 떠난 뒤에는

비 사이로 혼자 들판을 가리라.

혼자 가리라. 강물은 흘러가면서

이 여름을 언덕 위로 부채질해 보낸다.

날려가다가 언덕 나무에 걸린

여름의 옷 한 자락도 잠시만 머문다.

고기들은 강을 거슬러 올라

하늘이 닿는 지점에서 일단 멈춘다.

나무, 사랑, 짐승 이런 이름 속에

얼마 쉰 뒤

스스로 그 이름이 되어 강을 떠난다.

비가 온다. 비가 와

젖은 자는 다시 젖지 않는다.




사랑하는 별 하나 / 이성선


나도 별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외로워 쳐다보면

눈 마주쳐 마음 비쳐주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도 꽃이 될 수 있을까

세상 일이 괴로워 쓸쓸히 밖으로 나서는 날에

가슴에 화안히 안기어

눈물짓듯 웃어주는

하얀 들꽃이 될 수 있을까

가슴에 사랑하는 별 하나를 갖고 싶다

외로울 때 부르면 다가오는

별 하나를 갖고 싶다

마음 어두운 밤 깊을수록

우러러 쳐다보면

반짝이는 그 맑은 눈빛으로 나를 씻어

길을 비추어 주는

그런 사람 하나 갖고 싶다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아름 다웠다

이기철


잎 넓은 저녁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웃들이 더 따뜻해져야 한다

초승달을 데리고 온 밤이 우체부처럼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채소처럼 푸른 손으로 하루를 씻어 놓아야 한다

이 세상에 살고 싶어서 별을 쳐다보고

이 세상에 살고 싶어서 별 같은 약속도 한다

이슬 속으로 어둠이 걸어 들어갈 때

하루는 또 한 번의 작별이 된다

꽃송이가 뚝뚝 떨어지며 완성하는 이별

그런 이별은 숭고하다

사람들의 이별도 저러할 때

하루는 들판처럼 부유하고

한 해는 강물처럼 넉넉하다

내가 읽은 책은 모두가 아름다웠다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가 아름다웠다

나는 낙화만큼 희고 깨끗한 발로

하루를 건너가고 싶다

떨어져서도 향기로운 꽃잎의 말로

내 아는 사람에게

상추 잎 같은 편지를 보내고 싶다




여보! 비가 와요 / 신달자



아침에 창을 열었다

여보! 비가 와요

무심히 빗줄기를 보며

던지던 가벼운 말들이 그립다


오늘은 하늘이 너무 고와요

혼잣말 같은 혼잣말이 아닌

그저 그렇고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소한 일상용어들을 안아 볼을 대고 싶다


너무 거칠었던 격분

너무 뜨거웠던 적의

우리들 가슴을 누르던 바위 같은

무겁고 치열한 싸움은

녹아 사라지고

가슴을 울렁거리며

입이 근질근질하고 싶은 말은

작고 하찮은

날씨 이야기 식탁 위의 이야기

국이 싱거워요?

밥 더 줘요?

뭐 그런 이야기


발끝에서 타고 올라와

가슴 안에서 쾅하고 울려오는

삶 속의 돌다리 같은 소중한 말

안고 비비고 입술 대고 싶은

시시하고 말도 아닌 그 말들에게

나보다 먼저 아침밥 한 숟가락 떠먹이고 싶다




오분 간 / 나희덕

이 꽃그늘 아래서

내 일생이 다 지나갈 것 같다

기다리면서, 서성거리면서

아니, 이미 다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아이를 기다리는 오분 간

아카시아꽃 하얗게 흩날리는

이 그늘 아래서

어느새 나는 머리 희끗한 노파가 되고

버스가 저 모퉁이를 돌아서

내 앞에 멈추면

여섯 살 배기가 뛰어내려 안기는 게 아니라

훤칠한 청년 하나 내게로 걸어올 것 만 같다

내가 늙은 만큼 그는 자라서

서로의 삶을 맞바꾼 듯 마주 보겠지.

기다림 하나로도 깜박 지나가 버릴 생

내가 늘 기다렸던 이 자리에

그가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을 때쯤

너무 멀리 나가버린 그의 썰물을 향해

떨어지는 꽃잎

또는 지나치는 버스를 향해

무어라 중얼거리면서 내 기다림을 완성하겠지

중얼거리는 동안 꽃잎은 한 무더기 또 진다

아, 저기 버스가 온다

나는 훌쩍 날아올라 꽃그늘을 벗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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