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 { 황혼의 미학 }

분도 출판사 2009년 / 안셀름 그륀 / 190page

by 신미영 sopia

< 황혼의 미학 > 저자 안셀름 그륀 사제는 1945년 루니의 융커 하우젠에서 태어났다. 1964년 뷔르츠부르크에서 고등학교를 졸업 후 바로 성 베네딕도회 뮌스터 슈바르작 수도원에 들어갔다. 1970년부터 각종 영성 강좌와 심리학 강좌를 두루 섭렵하면서 칼 융 C.G.Jung의 분석 심리학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1975년부터는 수도승 전통의 원류를 심도 있게 규명하여 이를 융의 심리학과 비교하는 작업에 몰두했다. 그리고 사막 교부들에 특별한 관심을 쏟았다. 1997년 이래 다채로운 영성 강좌와 강연뿐 아니라 저술에도 힘을 쏟아 지금까지 많은 분량의 책을 썼다. 1991년부터는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사제와 수도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의 영적 지도 신부로 봉사하고 있다.


공원의 벤치는 노년의 아름다운 상징이다. 노인들이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침묵하고 있어도 대화가 이루어진다. 따로 자리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겉으로는 분명 고독해 보이지만 노인들은 그 상황에 그 상황의 중심에 앉아 있는 셈이다. 벤치 앞을 지나는 사람들이 노인에게 말을 건네기도 한다. 그러면 노인들이 귀 기울여 듣고 잠시 마음을 움직이는 일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누가 물으면 지난시절 이야기도 들려준다. 이렇게 그들은 삶의 일부를 이루며 공동체에 속하게 된다. 노인들은 간섭 하지 않고 젊은이들이 의견을 물으면 몇 마디로 자기 생각을 내놓을 따름이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사람을 위한 축복이다. 늙음에 대한 성찰은 삶에 대한 성찰이다.


우리 가운데서 빛나고 있는 빛을 바라보라고 말하는 일, 이것이 바로 노인들이 이루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다. 노인들은 깊이 본다. 그들은 근원적인 빛을 본다. 빛이 감추어져 있을 때도 빛을 볼 줄 안다. 지혜로운 노인들은 삶을 이해한다. 그들은 관계 전체 전체를 꿰뚫어 본다. 그들은 우리 삶의 깨어진 조각들 가운데서 흠 없고 온전한 것을 볼 줄 안다. 문제는 노년에 사람들을 위한 축복이 되게 하는 지혜에 어떻게 도달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혜로운 노인들 뿜만 아니라 불평과 한탄을 일삼는 노인도 많이 본다. 그들은 다른 사람에게 횡포 부리는 일을 유일한 본재 이유로 삼는다. 지혜에 도달하는 방법과 끝까지 견뎌야 할 어려운 부분들, 그리고 하느님 안에서의 완전한 죽음에 대해서도 서술할 것이다.


자신을 조건 없이 받아들이고 긍정하는 사람만이 자신과 자기 삶의 맛을 발견할 수 있다. 평생 동안 손해만 봤고, 너무나 많은 고통을 겪었다고 한탄하는 노인이 많다 이들은 남을 탓하고 비난하는데서 벗어나지 못한다. 아무도 자기를 주목하지 않고 자기는 아무 가치도 없는 존재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다. 이런 사람들 내면에는 삶을 제대로 살아내지 못한 미련이 너무 많아서 자신과 자기 삶 전부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늙어 간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늙었는데도 젊었을 때처럼 중심에 서고 싶어 한다. 기도하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생각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맺고 있던 적대 관계나 실패에만 머물러 있지 않는다. 그가 겪었던 상처에만 붙잡혀 있지 않는다.


앞날을 두려워하는 노인이 많다. 의지할 데 없는 처지가 되거나 병구완을 받아야 할 때 돌봐줄 사람이 없을까 봐 두려워한다. 가족들이 자신을 양로원에 떠밀어 버리지 않을까 걱정한다. 배우자가 자기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면 혼자서는 도저히 못 살 것 같다. 노년이 되어 과거에 행한 일을 내세우며 두 손 놓고 쉴 수만은 없다. 우리는 새롭게 자신에게 집중해야 한다. 노년에도 우리는 자신에게 집중하고 삶을 새로운 토대 위에 세우겠다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그래야 잘 늙을 수 있다. 그런데 잘 늙는 건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금껏 우리가 노래하고 말하고 행한 것이 그 맛을 잃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실패한 나도 받아들여야 한다. 과거와 화해하고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일 때 노년의 고독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 놓아 버리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고통스러워진다. 지금껏 해 오던 일을 놓아야 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할 수 없다. 끝에는 마지막 남은 기력마저 놓아야 한다. 전처럼 빨리 걷고 일하고 활동할 수 없다. 끝에는 남은 기력마저 놓아야 한다. 함께 살던 사람, 나를 받아주던 사람이 하나둘씩 떠난다. 젊은 시절에 놓는 연습을 부지런히 한 사람이 노년에도 그렇게 할 수 있다. 삶을 기꺼이 살았을 때만 삶을 놓을 수 있다. 한 번도 제대로 살지 않는 사람은 자시 삶을 놓을 수 없다. 인생의 후반기에는 놓을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죽을 때 가진 것을 남김없이 다 놓아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재산, 권력, 건강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에서 궁극적으로 배워야 할 것은 자아를 버리는 일이다. 그러면 관계와 지식을 잃지 않을 것이고 진정 자유롭게 될 것이다.


늙어서 침묵하는 법을 배운 사람은 고독하다고 푸념하지 않는다. 그는 침묵 가운데서 자기가 경험한 것, 자기가 만난 사람들, 이제는 믿는 사람들과 하나임을 느낀다. 고요한 노인은 말없이 자기 삶의 그림책을 훑어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과거를 되돌아본다. 좋은 방법으로 고요를 살아 내려면 회상의 힘이 필요하다. 회상으로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지만 삶의 풍성한 열매로 그는 충만하다. 헨리 나우웬은 회상은 마음속에 간직한 보물이라고 말한다. 옛 상처를 들추어내기보다 그 상처가 아물도록 회상하는 일이다. 회상은 과거를 만나게 해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 순간 우리가 처해 있는 현재를 받아들이도록 도와준다. 회상은 의지할 데 없는 노년기 한가운데서 붙잡을 것을 준다. 좋은 회상은 미래를 위한 희망과 확신도 선사한다.


노년에도 나름의 의미가 있으며 나름의 도전이 있다. 받아들이고 놓아 버리기에 대해 말하기는 쉽다. 그러나 막상 구체적으로 손에 쥐고 있는 과제를 놓아 버려야 할 상황이 되면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된다. 놓는 일을 방해하는 온갖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나이 드는 기술의 여러 단계를 연습하면 살아 있는 동안 그리고 죽어서도 다른 사람들을 위한 축복이 될 것이다. 성공한 노년에 대해 이보다 더 좋은 표현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죽을 때 사람들이 " 그분은 우리를 위한 축복이었고 또 여전히 축복이다."라고 말할 것임을 굳게 믿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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