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신미영 sopia
Jul 15. 2021
책 리뷰 - {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 }
교양인 2021년 / 정희진 /249page
이 책은 다르게 서평을 쓰고 싶었던 정희진 저자의 읽기와 쓰기이다. 책 제목이 '편협'과 '치열'이 만났다. 편협은 '좁고 한쪽에 치우치다'라는 뜻이고 치열은 '기세나 세력 등이 불길같이 맹렬함'을 일컫는다. 주로 페미니즘의 서평 저자에게 있어 책 읽기는 한쪽으로 치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더불어 서평을 써야 하는 저자에게 책은 치열하게 읽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두 단어는 저자를 가장 잘 대변해 주는 단어의 결합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표지의 그림도 저자의 책 제목을 잘 전달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치열하게 책을 읽는 저자의 모습을 이보다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저자는 융합, 글쓰기. 인문학 강사. 서평가. 여성주의 관점에서 공부와 글쓰기애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한국 사회의 상식과 통념을 흔드는 치열한 글쓰기를 지속해온 여성학자 정희진은 자신이 편협하게, 편파적으로 책을 읽는 사람이라고 고백한다. 그는 페미니즘을 비롯한 논쟁적인 주제에 관심이 있는 '편협한' 독자다. 예상 가능한 내용이나 편안한 말, 기존의 언어나 이데올로기를 반복하는 책 보다 '전압이 높은 책' '나를 소생시키는 책'을 선호한다. 이런 책은 몸과 마음의 평화를 깨는 격동을 일으키고 긍정적 의미의 스트레스와 자극을 준다. 즉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드는 책, 인생관이 뒤바뀌는 책이다.
저자 정희진에게 편협한 책 읽기는 '독창적 글쓰기'의 원천이기도 하다. 같은 책이어도 어떤 동기와 관점에서 읽느냐에 따라 글쓰기가 달라진다. 그래서 편협한 책 읽기는 '편협하지 않다'. 편협하게 읽는다는 것은 다른 세계와 만나고 저자의 사고방식을 확장하는 과정이었다고 한다. 독서력과 문장력은 사유의 방향을 바꾸는 문제의식, 질문, 재해석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정희진에게 있어 글을 쓰는 목적은 '익숙한 것에 도전하고 다르게 생각하기에 있다. '정희진 글쓰기'시리즈 세 번째 책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는 이러한 창의적 글쓰기의 예를 보여주는 27편의 글이 실려 있다.
<통증 연대기>는 멜러니 선스트럼의 작품이다. 제목이 책 내용을 제시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이 그렇다. 이 책은 통증에 관한 백과사전이다. 저자의 일기이자 통증의 미스터리, 종교성, 치유책 등 ( 서구 문화를 중심으로 한) 통증의 모든 것이다. 이 책은 주제나 내용에 상관없이 책 읽기를 즐기는 '전방위 독서관'들이 좋아할 만한 정보로 가득 차 있다. 고통에 관해서라면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많은 지식을 담고 있다. 이제는 통증의 원인이 심리적 사회적 상호작용이라는데 동의한다. 문제는 정치적 연대와 투쟁을 통한 통증의 변형 가능성이다. 통증은 치유되고 경감되고 다르게 해석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 군 위안부 여성의 경험, 성폭력 피해 여성의 모욕감, 정신 질환자의 통증, 암환자의 고통, 장애인의 불편'은 변화할 수 있다. 삶은 통증이지만 우리는 덜 아플 수 있고, 통증에 대한 대처에서 좀 더 평등할 수 있다.
<빨래하는 페미니즘>은 스테퍼니 스탈의 작품에 대한 서평이다. 우리나라와 달리 서구 페미니스트의 전공은 인문, 사회과학은 물론이고 성별과 거리가 있다고 여겨지는 분야까지 광범위하다. 반면 우리나라에서 여성학자, 여성학 교수, 페미니스트, 여성 운동가로 불리거나 스스로 그렇게 정체화하는 이들 중에서도 페미니스트가 아닌 경우도 있다. 물론 이를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스트는 공적 영역에 진출한 잘난 여성, 기가 센 여성, 혹은 단지 성별이 여성이 지식인을 의미한다. <빨래하는 페미니즘>은 여성주의 사상의 흐름 전환에 모범적인 주석이자 교과서이다. 더구나 이 책은 편파적 자세가 아니라 개인의 지적 여정으로서 스스로에게 의문을 품는 과장을 중심으로 쓰였기 때문에 성찰적이며 설득력이 있다. 다만 성별 문제는 너무나 정치적이고 일상적이고 오래되어서 남녀 모두 놀라는 것뿐이다. 이처럼 격렬한 현실을 정확하고 올바르게 그리고 쉽게 안내해 준다.
다음 작품은 (우리는 밤마다 수다를 떨었고, 나는 매일 일기를 썼다)의 궈징 작품이다. 이 글은 팬더믹 시대 우리가 맞닥뜨린 모습과 그에 따라 요구되는 새로운 인식 틀에 세 차원에서 다뤘다. 하나는 사회적 거리두기와 돌봄과 '집'에 대한 논의이며, 두 번째는 기후 제국 시대의 거버넌스에 관한 것으로 자유, 선진, 문명에 대한 질문이다. 마지막은 글쓰기에 대한 것이다. 팬더믹으로 인해 지구 상 78억 명의 인구는 각기 다른 상황에 처해 있고, 각 상황에 대한 판단도 기존과는 달라져야 한다. 팬더믹의 원인은 '돌봄 노동'을 비하하고, '자연파괴'(죽임)을 추구해온 인간의 경제활동이다. 그리하여 많은 이들이 돌봄 윤리에 관심을 보이지만, 이런 흐름은 지금 여기의 '여성해방'과는 거리가 멀다. 팬더믹 결과로 또다시 여성들이 강도 높은 보살핌 노동을 떠안고 있기 때문이다.
많이 '배우 수록' 좋은 것과 '알수록' 좋은 것은 다르다. 인간은 어떤 문제에 대해서는 몰라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모르는 방법이 작동하는 기제는 이데올로기. 개인의 방어 심리, 정보통제와 같은 통치 기술, 몰라도 되는 권력, 회피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지금 우리 앞에 진실은 이렇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2022년까지는 마스크를 써아하며 코로나19가 해결된다 해도 다른 전염병이 찾아오고 그 주기는 사스, 메르스, 코로나19의 간격처럼 점점 짧아질 것이라는데 이견은 없다. 다만 우리가 부정하고 싶을 뿐이다. 다시 말해 팬더믹은 인간의 조건이 되었다. 팬더믹은 부정하고 싶고 감추고 싶은 진실이지만 지금 인류는 자본주의 질주에서 지구 파괴, 그리고 팬더믹의 악순환을 막을 수 없다. 이제 바이러스는 진화하는 바이러스와 공존을 모색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팬더믹의 진짜 비극은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궈징 저자는 이러한 현실을 정확히 포착하고 있다.
내일도 이럴 거다.
어떤 사람은 이미 죽었고
어떤 사람은 희생됐고
어떤 사람은 목소리를 내고 있고
어떤 사람은 가짜 뉴스를 팩트 체크하고 있고
어떤 사람은 투기를 하고 있고
어떤 사람은 큰길을 쓸고
어떤 사람은 큰길에서 자고
어떤 사람은 공동구매를 하고 있고
어떤 사람은 택배를 배송하고 있고
어떤 사람은 밖에 나가지 않고
어떤 사람은 산책하고
어떤 사람은 집에 누워있고
어떤 사람은 이미 직장으로 복귀했고
어떤 사람은 가정 폭력을 당하고
어떤 사람은 일 년 내내 집안일한다.
기술의 발전으로 매체가 인간의 문해력을 대신하더니, 이제 팬더믹과 기후 위기까지 가져왔다. 대중의 문해력 저하, 지성의 양극화는 발전주의와 그로 인한 매체의 질주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앞으로도 인간 활동이 지구 환경을 바꿔 나갈 것이다. 저자 정희진은 지구의 역사에서 인간이 지구환경을 좌우하는, 공식적인 지질 시대는 아니지만 곧 증명될 듯하다고 말한다. 완전히 다른 세상이 도래했다.
전체적으로 책 내용은 가볍지 않았다. 대체로 어렵고 무겁다. 우리가 안고 있는 특히 여성으로 살면서 사회 속에서 가져야 할 태도와 행동에 대해 성찰해보게 한다. 저자 정희진은 온몸으로 견디며 글을 쓴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의 통념을 부수며 질문하고 해체하는 글쓰기를 하고 있다고 한다. 많은 부분이 개선되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여자로 삶을 산다는 건 결코 만만치 않다. 때로 도전하며 제대로 뿌리내리며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여성은 각 가정의 사랑스러운 딸이며 그리고 위대한 어머니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