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신미영 sopia
Jul 17. 2021
책 리뷰 - { 혼자여서 좋은 직업 }
마음산책 2021/ 권남희 / 216page
<혼자여서 좋은 직업>의 저자 권남희는 30년간 일본 문학 번역을 하고 있다. 특히 일본 오가와 이토의 책을 주로 번역했다. 그리고 가끔 에세이도 쓰는 에세이 작가다. 이 책은 그저 사사롭고 소소하고 재미있고 가벼운 번역 혹은 삶의 이야기들이라고 저자는 고백한다. 책 속에서 저자는 자신의 소개서를 이렇게 썼다. 1966년생. 일본 문학 전문 번역가. 10대에는 문학소녀였다. 20대 중반에 번역을 시작했다. 30대 후반에 번역계 자리를 잡았다. 40대 중반에 번역 이야기를 쓴 산문집 <번역에 살고 죽고>를 발표했다. 50대 중반에 싱글맘으로 먹고살며 느낀 이야기를 쓴 산문집 < 귀찮지만 행복해 볼까>를 발표했다. 앞으로의 계획은 80대까지 꾸준히 번역하고 글을 쓰는 것이다.
저자는 20년 동안 200권의 책을 번역했다. 손에 지문이 닳을 정도로 번역을 했다고 한다. 현재 딸과 둘이 살고 있다. 그런 저자를 딸은 번역 장인이 따로 없다며 간지 난다고 놀린다. 저자 나이도 이제 50대 중반이다. 한가한 시간이면 드라마를 보게 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는데 번역 관련이 나올 때 관심 있게 본다. 그런데 절차를 무시하는 내용을 보면 흥분하게 된다. 저자의 산문집 (귀찮지만 생각해 볼까)이 나왔을 때 일이다. 책을 쓰고 나서 딸에게 인정받고 싶었고, 친구들에게 자랑하기를 은근히 바랐다. 그런데 정말 잘 썼다고 말해 줄 때 목적을 달성했다는 생각을 했다. 책은 보름 만에 2쇄를 찍었고, 500권의 친필 싸인 이벤트도 했다. 두 달이 지나서 교보문고에 나가 저자의 책을 보고 가슴 뭉클했다.
한때는 일본 소설이 붐이었을 때가 있었다. 어느 해는 시장 점유율이 한국소설을 훌쩍 넘을 때도 있었다. 일본 소설이 인기 절정이던 2007년에는 15권 정도 번역했다. 그리고 일본에서 잘 나가는 작가들의 책을 번역하고 자신이 그만큼 소화할 수 있었음이 경이롭다. 딸 정하도 일본어를 전공했다. 잠시 모녀 번역가도 상상했다. 그런데 번역은 엉덩이가 무거워야 하는 것이라서 딸 성향에는 맞지 않았다. 재능도 없어 보였다. 그래서 번역가 되는 일은 조기에 끝냈다. 번역료는 대체로 매절로 받고 있다. 그 책의 판매실적과 관계없이 원고지 장당 얼마의 작업료를 받는 것이다. 매절 번역료는 쥐꼬리만큼씩 오르고 나이 들수록 작업량은 떨어지니 수입이 줄어든다.
스펙도 없고 출판계에 연줄도 없는 사람이 번역계에 한자리 비집고 들어앉아 있을 때에는 꾸준히 노력했다는 반증이다. 저자의 <번역에 살고 죽고>는 노력의 산물이다. 마음산책에서 산문집을 내고 싶다고 점찍었다. 마음산책 산문집은 접근하기 편하면서 고퀄이고, 책이 예쁘게 나와서다. 그러나 그곳에서 번역을 한적도 없고 아는 편집자도 없었다. 겨우 10년 차 번역가, 원고가 있다고 책을 내줄 리도 없다고 생각했다. 일단 존재를 알리기 위해 출판사 홈페이지에 짧은 인사글을 남겼다고 한다. 그랬더니 반갑게 댓글을 달아 주셨다. 그때마다 온라인상으로 잊을만하면 게시판에 글을 남겨 가까워지게 되었다. 이것이 오프라인으로 연결되면서 책을 내게 되었다.
제법 아는 출판사도 많아졌고 저자의 이름을 아는 독자도 많아졌고, 글 쓸거리도 많아졌다. 이제 무모하기만 한 도전은 아니다. 그러나 가장 현실적인 문제로 책 쓸 동안 번역을 하지 않으면 수입이 없다. 그러나 선배의 권유로 소소한 행복을 주제로 책을 쓰게 되었다. 다행히 반응이 괜찮았다. 작가 그늘에 살던 번역가가 작가가 되어 세상에 나오게 되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백댄서를 하던 김종민이 나와서 예능인이 된 것처럼. 그러나 김종민이 다시 백댄서를 하는 일은 없겠지만, 저자는 여전히 번역가란 직업을 사랑하며 원서와 사전과 고군분투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책을 읽고 번역하는 게 직업이다. 일 년 연중무휴로 볼일이 있어서 나갔다 늦게 돌아와도 노트북 앞에 앉게 된다. 마감에 쫓기거나 생활비의 압박도 아니었다. 긴 세월 하다 보니 그게 직업인 동시에 취미 생활로 굳어졌다. 저자는 번역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잠도 안 오고 시간이 남아도는데, 이럴 때를 대비해서 노트북 옆에 우리말 책 두세 권을 챙겨둔다. 그 책은 일단 심각하거나 무겁지 않아야 하고, 가볍거나 유치하지 않아야 한다. 책 때문에 포화상태가 된 머리를 식혀 줄 책, 그중에 <시옷의 세계>가 있다. 이 책은 '시옷'으로 시작하는 말을 제목으로 한 34편의 산문집이다. <시옷의 세계>에 들어간 말로는 말캉하고, 짠하고, 때로는 설레고, 때로는 숙연해지는 작가의 이야기다.
나무는 저자가 키우던 애완견이다. 건강해서 최장수 시추로 올라갈지도 모른다고 은근히 기대했다. 12살 때, 망막변성으로 갑자기 시력을 잃었다. 열네 살이 되던 해 간 종양 선고를 받았다. 몇 년째 다짐했던 대로 우리는 나누의 마지막 시간을 집에서 함께 하기로 마음먹고, 나무를 받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14년을 매달 다닌 병원 길, 세 식구가 나란히 걷는 것은 그날이 마지막이 되었다. 집에 온 지 두어 시간 지났을 즈음, 나무는 저자의 품에서 비명도 경련도 고통스러운 모습도 없이 잠자듯 평온하게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나무의 이야기를 책으로 쓰기로 계약했다. 펫로스로 힘든 분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글을 쓰고 싶다고 저자는 밝힌다. 나무가 마지막까지 큰 선물을 주고 갔음을 기억하면서~ 권남희 저자가 들려주는 반려견 사랑에 대한 저서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