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신미영 sopia
Aug 13. 2021
책 리뷰 - { 말의 품격 }
황소북스 / 이기주 / 2017년
저자 이기주 <말의 품격> 책은 사람의 말과 품격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늘 사용하는 말에 대해 관심도 때문인지 3개월 만에 1판 38쇄를 발행한 책이다. 1강에 6편씩 4강, 총 24편의 글을 실었다. 요즘 책이 거의 그렇듯이 저자 소개는 짤막하게 책날개에다 몇 문장 적었다. 그는 쓸모를 다해 버렸거나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해 글을 쓰고 책을 만든다고 했다. 고민이 깃든 말과 글에 탐닉하고 가끔은 어머니 화장대 위에 '꽃을 올려놓는다'는 낭만적이고 분위기 있는 멘트를 적었다. 지은 책으로 <언어의 온도>가 있다. 저자 이기주는 한 권의 책이 수십만 개의 활자로 이루어진 숲 일지 모른다고 표현하고 있다. <말의 품격>이라는 숲을 내달리기보다 이른 아침에 고즈넉한 공원을 산책을 거닐 듯 찬찬히 거닐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면서 말이다.
지금 우리는 '말의 힘'이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온당한 말 한마디가 천냥 빛만 갚는 게 아니라 사람의 인생을, 나아가 조직과 공동체의 명운을 바꿔놓기도 한다. 그렇다면 말을 잘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말은 쉽게 분석하거나 함부로 답을 구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저자는 글을 쓰고 다양한 부류의 사람을 만나면서 사람마다 인품이 있듯 말에도 언품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고 한다. 우리 각자도 자신이 매 순간 하고 있는 말에 대해 그리고 다른 사람이 걸어오는 말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저자는 이 책을 읽고 입이 아닌 귀를 내어주면서 상대의 마음을 얻었으면 한다고 조언한다. 또한 진심으로 상대의 아픔을 어루만지며 소중한 사람에게 조금 더 다가갔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
이 책에는 21세기 덕장으로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을 꼽았다. 정치 전문가들은 오바마 특유의 포용력과 친화력을 그가 지닌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았다. 오마마 리더십의 요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국민적 지지를 얻었는지, 이해할 수 일화를 소개했다. 오바마가 이민 개혁법 통과를 촉구하는 연설을 할 때였다. 단상 뒤편에 400여 명이 연설의 듣기 위해 기립해 있었다. 막 연설을 시작할 때 동양인 한 명의 청년이 뛰쳐나가 구호를 외쳤다. "이민자 추방 중단!" 경호원들은 그를 끌어내리려 했으나 오바마는 그가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을 존중해 주면서 그 자리에 있도록 해 주었다. 언론에서 오바마의 품격 있는 대처가 화제가 되었다. 상대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상대의 발언권을 존중하는 태도야말로 '오바마가 지닌 리더십의 원천이다'라고 보도했다. 상대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의 말할 권리를 존중하고 귀를 기울여야 상대의 마음을 열 수 있다. 삶의 지혜는 종종 듣는데서 비롯되고 삶의 후회는 대개 말하는데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늘 상대를 안다고 여기고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게 단순하지도 미미하지도 않다. 허준이 <동의보감>에서 이야기했듯이, 인간은 우주에서 가장 지체가 높고 귀한 존재다. 사람의 머리가 둥근 것을 본보기로 삼은 것이고, 사람의 발이 네모난 것은 땅을 본받은 것이라고 한다. 인간은 자연을 닮은 소우주다. 인간의 말은 소우주에서 생명을 얻는다. 그러므로 들리는 것을 다 듣는다 해서 다 듣는 것은 아니다. 귓속을 파고드는 음성에서 숨겨진 메시지를 포착해 본질을 읽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퍼올린 말을 귀가 아닌 가슴으로 느끼려면 반드시 그래야 한다. 소중한 사람의 마음에 가닿으려면 진심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가슴 한구석에 작은 운주당을 세워봤으면 한다.
'칼에 베인 상처는 바로 아물지만 말에 베인 상처는 평생 아물지 않는다'는 말은 진리에 가깝다. 정제되지 않는 예리한 말의 파편이 여기저기서 튀어 올라 우리의 마음을 긁고 할퀸다. 속도와 빠르기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시대다. 말도 예외가 아니다. 상대의 말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언어적 순발력을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수 능력으로 간주하는 이들이 있기도 하다. 상대를 먼저 공격하지 않고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은 맑은 물을 닮았다. 천천히 흐르면서 메마른 대화에 습기를 공급하고 뜨거운 감정을 식혀 준다. 인생을 살면서 한 번쯤 고민해야 한다. 사람들 앞에 펼쳐놓은 요리(말)와 애써 뿌린 양념의 궁합이 잘 맞는지, 음식 맛은 훼손하고 있지는 않는지 말이다.
편견은 감옥이 높고 넓을수록 남을 가르치려 하거나 상대의 생각을 교정하려 든다. 이미 정해져 있는 사실과 진실을 본인이 쥐락펴락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상대의 입장과 감정은 편견의 감옥 바깥쪽에 있으므로 눈에 보이지 않는다. 말이라는 흉기에 찔린 상처의 골은 좀처럼 봉합되지 않는다. 어떤 말은 그 상처의 틈새로 파고들어 감정의 살로 파헤치거나 알을 낳고 번식하기도 한다. 말로 하는 상처가 좀체 사라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다. 말 자체는 차갑더라도, 말하는 순간 가슴의 온도만큼은 따뜻해야 한다. 우리는 늘 타인을 지적하며 살아가지만, 진짜 지적은 함부로 지적하지 않는 법을 터득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글은 쓰고 몇 번이나 수정할 수 있지만 말은 입에서 나오는 즉시 전달된다. 그렇기 때문에 가벼울 수 있고
말이 쌓이고 쌓여 한 사람의 품성이 된다. 말과 글에는 사람의 됨됨이가 서려있다.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사람의 품성이 드러난다. 말은 품성이다. 품성이 말하고 품성이 듣는 것이다. 말에는 비법이 없다. 평범한 방법만 존재할 뿐이다. 그저 소중한 사람과 나눈 대화를 차분히 되돌려 보고 자신의 말이 그려낸 궤적을 틈틈이 점검하는 것, 그리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화법을 찾고 꾸준히 언품을 가다듬는 수밖에 없다. 말하는 기술만으로는 말하고자 하는 진심을 모두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잘 말하기 위해서는 잘 들어야 한다. 때로는 말도 쉼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말을 잘하는 게 아니라 적절한 때에 말을 거두고 진심을 나눌 수 있느냐 하는 저자의 글을 가슴에 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