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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 { 긴긴밤 }

문학동네 / 루리 글, 그림 / 144page

by 신미영 sopia

치쿠와 노든의 이야기


<긴긴밤>은 제21회 문학동네 어린이 문학상 대상을 받은 작품으로 늙은 코뿔소와 어린 펭귄의 이야기다. 저자 루리는 미술이론을 공부했고 제26회 황금 도깨비상(그림책 부분)을 받았다. 작은 알 하나에 모든 것을 걸었던 치쿠와 윔보, 그리고 노든의 이야기이다. 코뿔소 노든의 말년은 극진한 대접을 받는 왕에 가까웠다. 얼마나 먹고 잠을 자는지 확인했고, 노든의 기분을 살피며 기운이 없어 보이면 약을 투여했다. 노든은 삶은 코끼리 고아원에서 시작됐다. 처음 눈을 떴을 때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코끼리들은 노든의 첫 가족이었다. 어린 코끼리도 코뿔소인 노든보다 덩치가 훨씬 컸다. 코끼리들은 먹는 일, 씻는 일, 서로를 돌보는 일등 거의 모든 일에 코끼리 코를 사용했지만 노든은 사용할 큰 코도 펄럭일 큰 귀도 없었다. 노든은 자신이 코끼리가 아니라는 걸 인식하기 시작했고 갈수록 생각이 많아졌다. 코끼리 고아원에 남으려고 했지만 사람들은 노든을 바깥세상으로 돌려보내기로 결정했다.


노든은 떠돌며 자유롭게 지내다가 예쁜 코뿔소를 만나게 된다. 아내가 된 코뿔소는 먹을 것이 많은 방향과 마실 물을 찾는 것, 위험을 감지하고 포근한 잠자리를 찾는 방법까지 알고 있었다. 노든에게 특별한 코뿔소가 되었고 딸도 낳아 셋은 함께 했다. 아내와 딸은 노든의 삶에서 가장 반짝였다. 그러다 둥근달이 뜬 밤에 커다란 트럭과 인간들이 나타났다. 총소리가 났고 아내와 딸이 총에 맞아 숨지게 된다. 분노로 사람들을 향해 돌진했던 노든은 병원으로 옮겨져 총알을 제거하고 수술까지 받는다. 다시 파라다이스 동물원으로 왔다. 늘 돌진할 태세를 갖고 있던 노든에게 그곳 앙가부는 동물원의 규칙적인 생활을 세심히 알려 준다. 노든은 탈출해서 눈에 보이는 인간들을 죽이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한 번은 실패로 끝나고 앙가부와 최종 계획을 세웠다. 밤바다 철조망을 조금씩 뜯어 놓고, 대청소하는 날 저녁에 둘이 한꺼번에 달려들기로 한 것이다.

지구상 마지막 남은 흰 바위 코뿔소


노든이 총에 맞았던 자리가 욱신거려 마취주사를 맞게 된다. 이튿날 우리로 돌아왔을 때 뿔이 잘려나간 채 죽어있는 앙가부를 발견하게 된다. 뿔 사냥꾼들이 들어와서 뿔을 잘라 간 것이다. 동물원은 충격에 휩싸였다. 사냥꾼의 표적이 되어 죽임을 당하느니 노든의 뿔도 자르기로 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뿔은 잘려 나가고 지구상 마지막 남은 흰 바위 코뿔소가 되었다. 그 무렵 동물원의 펭귄 우리에 버려진 알이 발견됐다. 펭귄들은 새끼를 유난히 신경을 쓰는 데 품지 않은 알이 발견된 것이다. 펭귄 치쿠와 윔보가 서로 알을 품어 주기 시작했다. 둘은 단짝으로 사이가 각별했다. 치쿠는 눈을 다친 윔보가 넘어지지 않도록 중심과 방향을 잡아 주었다. 알을 품게 되면서 오만가지 걱정을 했지만 희망적인 얘기를 해 주어 견딜 수 있었다. 동물원 사람들은 노든에게 정성을 쏟았으나 앙가부를 잃은 슬픔과 뿔이 잘린 상실감으로 가득 찼다. 노든은 뭉툭한 코뿔로 계속 철조망을 들이박았다. 그때 시커먼 연기와 불길이 치솟았고 나가고 싶었던 출입 철조망이 무너졌다.


밖으로 나왔을 때 사자, 표범, 얼룩말 등이 죽어 있었고 어떤 소리를 듣게 된다. 펭귄이 검은 반점이 있는 알이 든 양동이를 들고 있었다. 노든은 다른 동물들을 구해줄 여유도 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노든과 치쿠는 자리를 잡았고 양동이에서 알을 꺼내게 된다. 온기가 식어 알이 부화하지 못할까 봐 걱정했다. 긴긴밤이 계속됐다. 노든과 치쿠는 녹초가 되었고 먹을 것과 잠자리를 찾기 위해, 끔찍한 기억에서 벗어나기 위해 걸었다. 투덜대던 치쿠를 그래도 노든은 좋아했다. 노든에게 '정어리 눈곱만 한 코뿔소'라 했고, 치쿠를 '코끼리 코딱지만 한 펭귄'이라고 했다. 치쿠는 아는 게 많았고 최고의 길동무가 되었다. 바깥세상에 대해서는 노든이 아는 게 많았다. 치쿠는 바다에 닿으면 펭귄들을 찾아 여행을 갈거라 했다. 그럼에도 치쿠는 알을 돌보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날도 긴긴밤이 이어졌다. 치쿠에게 알을 돌봐 주겠다고 대충 대답했던 노든은 이튿날 치쿠가 갑자기 죽게 되자 알을 품어 주게 된다. 그러자 알이 껍질을 깨고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치쿠는 죽고 알은 태어나고


알은 태어났고 노든에게 살아남는 법을 배우게 된다. 노든은 미안함을 토로했다. 아내를 구하지 못했으며 앙가부를 살리지 못했고 지쿠가 죽은 것들을 자신의 탓으로 돌렸다. 그들의 몫까지 안간힘을 써서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살아남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노든은 유일한 가족이자 친구였고 곁에 있어 줘서 마음이 놓였다. 노든은 말이 별로 없는 성격이지만 나는 말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았다. 어느 날 노든의 복수 내용을 알게 된다. 나를 바다에 데려다주고 나면, 인간들이 사는 곳을 찾아가서, 트럭을 들이받고, 총을 부수고, 사람들을 던져 버린다고 했다. 모든 불행의 시작인 인간들에게 복수하는 것이었다. 내게 노든의 복수는 터무니없었는 데 인간들의 힘이 세다는 걸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동안 둘은 서로에게 등을 돌리고 앉아 지냈다. 그러다 펭귄의 몸에서 털이 나기 시작하고 호수를 찾게 되면서 헤엄을 치게 된다. 노든은 대단하다며 혼자 해냈다고 좋아했다.


펭귄은 노든에게 나는 누구냐고 물었고 노든은 너라고 대답했다. 나는 내 이름을 갖고 싶어 했다. 똑같은 펭귄들 속에서 찾기가 어려울 것 같았고 이름을 부르면 대답도 하고 싶어졌다. 그러나 노든은 이름이 없을 때 훨씬 행복했다며 코뿔소가 키운 펭귄을 찾아내지 못할 리가 없고 냄새, 말투, 걸음걸이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고 했다.


"누구든 너를 좋아하게 되면, 네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가 있어. 아마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너를 관찰하겠지. 하지만 너를 눈여겨보게 되고, 네게 가까이 있을 때는 어떤 냄새가 나는지 알게 될 거고, 네가 걸을 때는 어떤 소리가 나는지에도 귀 기울이게 될 거야. 그게 바로 너야. "


밤이 길었던 날, 가장 많은 비가 내린 날 노든은 무언가 홀린 것처럼 냄새를 따라 걸어갔다. 인간들의 소리와 트럭 소리가 들렸고 노든은 나에게 도망치라고 소리를 지르곤 꼼짝하지 않았다. 노든을 부르는 소리에 총알이 날아왔고 나를 물고 달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상처투성이였고, 지쳤고 엉망진창이었다. 복수할 수 없는 흰 바위 코뿔소와 불운한 검은 점이 박힌 알에서 태어난 펭귄이지만 긴긴밤을 넘어 살아남았다. 둘이 헤쳐 나왔던 길은 아마 험난했을 것이다. 긴긴밤에 어떻게 고생을 했고 어떻게 살아남게 되었는지 긴긴밤 안에 포장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긴긴밤은 의미가 깊다. 부부가 또는 가족이 함께 해도 그 긴긴밤에 얽힌 사연들이 많을 테니 말이다.


멀리서 보면 사막은 황량해 보이고, 그위를 걷는 나와 노든은 가망이 없는 두 개의 점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가까이서 들여다본다면, 모래알 사이를 지나다니는 개미들과 듬성듬성 자라난 풀들, 빗물 고인 웅덩이 위에 걸터앉은 작은 작은 벌레들 서리, 조용히 스치는 바람과 우리의 이야기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사막은 모래 속에 숨은 생명들로 가득했다. 살아남은 기적은 우리에게만 특별하게 일어난 일은 아니었다. (107page 중에서)



긴긴밤을 견뎌내며 깨달은 것들


예전의 노든이었다면 다 뿔로 받아 버리고 그곳을 온통 쑥대밭으로 만들었겠지만 긴긴밤 덕분에 조용히 그곳을 떠나게 된다. 노든은 많이 지쳤고 바다를 가면 괜찮아질 거라 여겼다. 저녁에 노든은 몸이 불덩이같이 뜨거웠다. 긴긴밤에 노든의 가족과 코끼리들, 앙가부, 치쿠와 윔보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날이 밝고 인간들과 트럭이 왔지만 노든은 일어서지 못했다. 똥을 뿌리는 게 다였다. 그들은 노든을 바로 죽이지 않았다. 노든이 도망가라는 눈빛이었지만 가지 않았고 눈물만 쏟았다. 노든은 트럭에 옮겨 실어졌고 나는 잠든 노든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초원에 내려진 노든을 인간들은 이리저리 살펴보고 밤이 되자 노든에게 빠져나가자고 했지만 노든은 남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펭귄이니 바다를 찾아가라고 했다. 며칠밤을 그렇게 보내게 되고 마지막 작별 인사를 했다. 절벽을 오르다 수백 번 미끄러지면서 굴러 떨어지기도 하면서 펭귄은 바다로 갔다. 두려웠지만 홀로 수많은 긴긴밤을 견뎌 내며 하늘에 반짝이는 별처럼 무언가를 찾을 것이다. 노든이 냄새와 말투, 걸음걸이를 알아보고 다가와줄지 모른다. 둘이 긴긴밤을 보내다가 홀로 긴긴밤을 보낼 때 느낌은 사뭇 다를 것이다. 부모와 같았던 노든이 없는 밤을 펭귄은 홀로 보낸다. 외로웠지만 강인해지려고 더욱 마음을 단단히 먹었을 것이다.


<긴긴밤> 작품은 나로 살아간다는 것의 고통과 두려움, 환희를 단순하지만 깊이 있게 보여준다. 코끼리 고아원에서 평안한 삶을 박차고 나와 긴긴밤 속으로 들어간 노든, 세상의 전부였던 노든을 떠나 자신의 바다로 들어가는 펭귄의 모습은 큰 울림으로 남는다. 사람도 긴긴밤을 통해 성장한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모든 이의 긴긴밤을 생각나게 한다. 글을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마치 생텍쥐베리의 <어린 왕자>나 안도연의 <연어>를 읽는 것 같다. 동물들이지만 나름대로 규칙이 있고 마음을 나누며 살아가는 그들만의 세상을 들여다보게 된다. 코뿔소이지만 코끼리들에 의해 키워진 노든이 지구상에 남아있는 유일한 코뿔소로 남게 된 이야기. 버려진 펭귄 알을 정성스럽게 품어서 세상에 태어나게 만드는 과정도 좋았다. 문장의 표현들이 아름다웠다. 우리의 삶이 별처럼 반짝이는 몇몇 순간들과 기나긴 지루함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노든의 삶도 그러했다. 자연을 노래하고 동물들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 거룩하게 느껴졌다. 어딘가에 노든과 치쿠가 살아 있을 것만 같다. 어린 왕자의 이야기가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듯이 이동화도 그렇게 될 거라 믿는다.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갈지를 들여다보게 만드는 명작이다. 많은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따뜻한 동화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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