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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미영 sopia Dec 30. 2022

영화 리뷰-《 스틸 엘리스 》

2015년 미국  / 쥴리안 무어 / 101분

지금이 내가 나일 수 있는 마지막 시간   


올 해를 보내며 소개해 드리고 싶은 영화라 선택하게 되었다. <스틸 앨리스>는 210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동명 소설을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고 리처드 글랫저 감독의 경험과 열정이 녹아든 감동의 드라마로 평가된다. 쥴리안 무어의 연기, 그리고 유명한 연기파 배우들의 캐스팅과 루게릭 투병 중에도 영화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았던 감독의 유작이기도 하다. 쥴리안 무어는 주인공 역을 소화하기 위해 관련된 영화, 다큐멘터리를 섭렵했다고 한다. 기존의 알츠 하이머 소재 영화들이, 주변인들의 고통에 집중했다면 (스틸 앨리스)는 주인공의 변화를 보여 줌으로써 병에 대한 관념을 바꿔 놓았다. 또한 세밀하게 나누어 헤어 스타일, 메이크 업, 의상은 물론 작은 행동의 변화부터 대사의 느낌까지도 신경을 썼는데 적합한 배우였다는 호평이다. 쥴리안 무어는 제87회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과 칸, 베니스, 베를린 3대 국제 영화제에 이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배우가 되었다. 그 후에도 30여 개에 달하는 여우 주연상과 최고의 연기라는 극찬을 받기도 했다.


엘리스는 세 자녀의 엄마, 사랑스러운 아내, 존경받는 대학교수로서 풍족한 삶을 살아간다. 교재를 저술하기도 했고 세계 언어학 교육의 초석으로 여겨질 만큼 명망 있는 박사이기도 하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며 당당한 삶을 살던 그녀가 강의를 하다가 단어 생각이 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리고 조깅을 하다가 갑자기 멍한 상태를 겪게도 된다. 자주 짧은 단어나 이름 같은 걸 잊어버리고 갑자기 멍해지기도 하면서 병원을 찾는다. 별문제 없던 엘리스는 의사가 다시 물어보자 잘 기억하지 못했다. 다음에 올 때는 보호자와 함께 오라는 당부를 받게 된다. 밤새 잠을 못 자고 새벽에 남편을 깨워 자신이 조발성 알츠하이머의 상태를 전했다. 자꾸 단어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요리하는 앨리스

엘리스는 대수롭지 않게 농담으로 듣는 남편에게 소리를 질렀다. 나이도 젊은 데다 교수인 아내에게 알츠하이머는 믿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엘리스는 자신의 일부 뇌가 죽어가는 기분이라며 평생 이룬 것들도 사라질 거라며 울부짖었다. 그 뒤 남편 존과 병원을 찾아가고 '조발성 알츠하이머'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친정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적 요인이었다. 세 자녀들에게 미안해하며 검사를 받도록 했다. 약을 먹고 강의를 나갔으나 앨리스는 주제가 생각나지 않아 학생들에게 물어 위기를 모면하고 강의의 흐름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검사를 진행했던 큰 딸 애나는 양성 반응이 나왔고 아들 톰은 다행히 음성이었다.

학교 측과 면담을 하게 되는 데 학생들의 진정서에는 언어학 수업이 엉망이 됐다는 말을 듣는다. 교수님의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고 방향을 잃은 것 같다는 내용들을 전했다. 엘리스는 상황을 인정하고 감당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일단 교수회에 알리겠다고 했다. 그렇게 교수직에서 물러나 투병생활을 시작한다. 엘리스는 남편과의 중요한 약속은 까맣게 잊고 조깅 후 혼자 시간을 보내다 온다. 자신을 합리화하는 앨리스에게 존은 그래도 중요한 건 놓치지 말라며 힘들어진다고 조언한다. 앨리스는 차라리 암이면 부끄럽지 않을 것이며 이런 비참한 기분은 안 들 거라고 했다. 앨리스는 자신의 상태에 위기의식을 느끼고 요양원을 방문해서 그곳의 현실적 상황을 파악했다. 알츠하이머 환자들은 주로 여성이 많았다. 할머니들의 반복적인 행동을 보면서 자신의 나중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마음 아파했다.


앨리스는 잊지 않기 위해 수시로 기록을 해 나가기 시작했다. 노트북에 나비 폴더를 만들어 자신에게 할 이야기를 영상으로 남긴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할 때, 자살 약을 먹기로 다짐한다. 가족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기억이 남아 있을 때 준비를 해 두기로 한다. 앨리스의 팔에는 이제 '기억상실'이라는 팔찌가 채워져 있다. 바다가 보이는 친정집에 왔다. 존의 안식년에 함께 캠핑카 여행 계획도 세워본다. 자신의 어린 시절 앨범을 보면서 흐뭇해한다. 그리고 좀 전에 존에게 들었던 회의 날짜와 리디아가 언제 오는지에 대해서 재차 묻는다. 점점 기억하지 못해서 모든 게 불안하다. 조깅 가기 전에 화장실을 찾지 못해서 멍해지다가 바지에 오줌을 싸고 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다며 울고 만다.

막내  리디아와 대화

앨리스는 존과 안식년을 함께 하길 원하고, 애나의 출산과 막내에게 대비책을 마련해 주고 싶어 했다. 하루는 리디아 일기 쓴 내용을 말하게 되면서 갈등을 겪기도 하고, 나름 잊지 않기 위해서 일정들을 기록해 두기도 한다. 가족들이 모여 이야기하다 엄마의 문제로 자식들도 갈등을 빚게 된다. 앨리스는 점점 무엇 때문에 화가 났었는 지, 힘들었는지 조차 인지하지 못한다. 예전엔 언어 표현에 누구보다 명확했지만 단어가 떠오르지 않고 뭘 더 잃게 될지 불안하다. 연기하는 리디아 딸을 본 후 그저 배우로 인식하고 말을 건네기도 했다. 엘리스의 증상은 급속도로 악화되고 존은 아내와 함께 의사를 찾아간다. 지적 능력이 높은 환자일수록 지성으로 질병을 버텨내 진단이 늦어져 진행속도는 더 빠르다고 했다. 앨리스도 기억을 잃고 있지만 지적 능력이 대단하다고 했다. 의사는 혹시 안정기가 찾아올 수 있다며 희망은 잃지 말라고 했다.



다음 세대들이 이 고통을 겪지 않는 바램


앨리스는 알츠 하이머 학술 세미나에서 연설 기회가 찾아온다. 걱정이 된 존은 스트레스가 심할 텐데 괜찮을지 묻는다. 의사는 좋은 기회가 될 거라며 앨리스를 안심시킨다. 원고를 미리 준비해 많은 사람들 앞에 서서 한 줄 한 줄 그어가며 이야기를 해 나갔다. 그러다 연설문이 우수수 바닥에 떨어지는 상황이 되자 얼른 주워 모아 다시 말을 이어간다. 이때 원고가 뒤죽 박죽 돼서 '혹시 당황해 아무 말도 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러나 앨리스는 침착하게 준비한 대로 연설을 이어갔고 자신의 상황과 경험을 끝까지 잘 마쳤다. 연설을 듣던 사람들은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모두 기립박수를 보내고 응원했다. 앨리스가 했던 강연 내용의 일부분이다.

학술대회 연설
전 알츠 하이머 환자이지만 매일 상실의 기술을 배우고 있습니다. 내 태도를 상실하고 목표를 상실하고 잠을 상실하지만 기억을 가장 많이 상실하죠. 전 기억을 평생 쌓아 왔습니다. 그것들이 제게 큰 재산이 되었죠. 남편을 처음 만난 그날 밤, 저의 첫 책을 들었을 때, 아이를 가졌을 때, 친구를 사귀었을 때, 세계 여행을 했을 때, 제가 평생 쌓아 온 기억과 제가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것들이 이제 모두 사라져 갑니다. 한 때 우리의 모습에서 멀어진 우린 우스꽝스럽습니다. ~ 중략~ 전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애쓰고 있을 뿐입니다. 이 세상의 일부가 되기 위해서 예전의 나로 남아 있기 위해서죠. 제가 할 수 있는 건 순간을 사는 것과 스스로를 몰아붙이지 않는 것, 그리고 끝까지 놓기 싫은 한 가지는 오늘 이곳에서의 기억이지만 결국 사라지겠죠. ~생략~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기억은 갈수록 나빠지고 생활은 엉망이 되어 갔다. 한밤중에 휴대폰을 찾고 난리를 쳤는데 이튿날 서랍장에 있었다. 어제 잊어버렸다고 했지만 존은 한 달 전 일이라고 했다. 치약을 짜서 거울에 묻히기도 하고 옷 갈아입는 것도 힘들어졌다. 와중에 큰 딸 애나는 쌍둥이를 낳았다. 손주를 안아보면서 잠시 평온한 모습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그러나 앨리스는 점점 상태가 나빠져 좀 전에 얘기한 것들도 기억하지 못했다. 리디아 프로필 사진을 보려다 저장했던 영상을 보게 된다. 약 한통을 먹고 잠자듯 죽는 거였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약을 찾지만 간병인이 오는 바람에 실패한다. 이젠 아이스크림 주문도 못하고 자신이 근무했던 대학도 알지 못한다. 일 때문에 떠나는 남편을 대신해 리디아와 생활하게 된다. 앨리스는 간병인도 몰라보고 말도 어눌해졌다. 딸이 엘리스의 첫 책을 읽어주고 무엇을 느끼냐고 묻자 어눌한 말투로 "사랑"이라고 답한다. 평생을 언어학에 바친 그녀에게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단어는 사랑이었다.


알츠 하이머는 신경세포가 손상되어 기억력을 포함한 인지기능의 악화로 흔한 퇴행성 뇌질환이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1명이 치매 환자라는 통계가 있다. 그런데 지적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지성으로 감추고 있어 발견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지식으로 자신을 잘 포장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주인공이 하나 둘 기억을 잃어가면서 겪게 되는 리얼한 영화를 보면서 어쩌면 우리 주변과 나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마음 한편이 무겁다. 누구나 행복했던 추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억들이 의도치 않게 모래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듯 잃어버린다면 얼마나 두렵고 힘들어질까? 나쁜 기억이야 지워져도 상관이 없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기억되어야 할 것들이 생각나지 않거나 단어들이 기억나지 않으면 불편하고 힘들어질 것이다.


요즘 주인공처럼 단어나 이름, 지명이 생각나지 않을 때가 더러 있어 답답할 때가 있다. 갑자기 머리가 멍해지면서 기억이 나지 않을 때 혹시 치매가 있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얼마 전에 어깨에 메는 브랜드 가방을 잃어버렸다. 주말 봉사를 마치고 간 곳은 식당뿐이었는 데 찾지를 못했다. ( 이 글을 올리고 1월 3일 피정의 담당자분께서 가방을 찾았다고 연락을 주셨다. 침대헤드와 매트 사이에 끼여 있었다고 다. 어째든 찾아서 다행이다)  또 성당모임으로 간 집에 목도리를 놓고 오기도 했다. 이런 일이 생기고 보니 일상이 두렵기도 하다. 세세한 것들을 다 기억할 수는 없어도 생활을 하는 데는 지장을 주면 안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좀 더 차분하게 잘 생활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또 한 해가 가고 새해가 밝아오려 한다. 되돌아보면 분주했던 시간들 속에서도 브런치에 매주 한편씩의 글을 올린 게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작가님들의 글을 읽고 댓글을 달면서 소통한 시간도 좋았다. 내년에도 시간이 허락하는 한 브런치와 함께 하고 싶다.


함께 해주신 구독자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한 해의 나쁜 기억은 모두 잊어버리시고 행복하고 즐거웠던 기억은 오래오래 간직하시길 바랍니다. 계묘년 새해에도 좋은 글로 만나요

한 가지 변경사항은 금요일에 복지관 봉사를 가다 보니 화요일에 글발행을 할까 합니다. 1월 첫 주는 쉬고 1월 10일 화요일 11시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모쪼록 건강하시고 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 원하는 것들을 이뤄가는 행복한 한 해 보내시길 소망합니다.


https://youtu.be/ekwatDsD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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