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지 앤 카운터(Marrige Encounters)는 부부 일치 운동으로 해석하며 머리글자를 따서 M.E라고 한다. 혼인한 부부가 대화를 통하여 더욱 깊고 친밀한 관계로 성장하며 사랑의 일치를 이루어 기쁨이 넘치는 혼인생활을 누리게 하려는 운동이다. ME주말이라고 하는 것은 금요일 저녁에 시작하여 일요일 오후까지 하기 때문이다. 이 운동은 1958년 스페인 칼보 신부님에 의해 시작이 되었으며, 초반엔 부부간에 원만한 소통이 자녀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주었기에 부모를 상대로 실시되었다. 10년 후에 노트르담 대학에 있던 주말에 캘라거 사제가 참가하였고, 혼인에 대한 잠재력을 인정하고 이 방법을 뉴욕에 가져가 정기적으로 실시하게 되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었고 한국에서도 1976년 도입되어 13개 교구에서 실시하고 있다. 우리 부부는 2006년 ME 첫 주말에 참가하고 봉사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ME주말은 결혼 5년 이상된 부부를 대상으로 한다. 그전에는 신혼기간이라 크게 다툴 일도 갈등하며 사는 시기도 적기 때문이다. 사실 결혼 5년 차도 아이 낳고 키우고 하는 시기라서 2박 3일을 시간 내기는 만만치가 않다. 그래서 결혼 보통 15년 전후에 가장 많이 신청을 하는 것 같다. 본당에서 ME를 경험한 부부들이 정기적인 모임을 한다. 대부분 가정으로 돌아가며 모임을 한다. 그래서 훨씬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얼마 전 현충일날에 당진 왜목 마을로 조개를 캐러 다녀왔다. 홍보하고 신청을 받았으나 바쁜 부부들이 많아서 13명이 갔었다. 성당으로 가니 대표부부와 총무부부도 와 있었고 신부님 두 분과 수녀님까지 나와 계셨다. 마지막 부부까지 도착하고 모두 모여 신부님께 강복을 받았다. 그러고 나서 본당ME < 사랑은 결심이다>의 현수막을 들고 단체 사진을 찍었다. 잘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드리고왜목으로출발했다.
출발 전 성당에서
성당 봉고차가 15인승인데 13명이라서 좀 여유롭게 갈 수 있다. 만약 더 많은 부부가 신청했더라면 따로 승용차가 갔을 것이다. 봉고 한 대로 모두 갈 수 있으니 다행이다. 차로 이동하면서 기도를 바쳤다. 천주교 신자들은 차를 타면 먼 길 잘 지켜 달라는 의미로 항상 기도로 시작해 기도로 끝난다. 오늘 준비한 간식들을 나눠 주었다. ME대표는 맛있는 콩설기를 준비했고 총무부부는 맛난 간식들과 음료들을 준비해 주었다. 두 개씩 담은 쑥개떡도 부부들에게 드렸다. 이렇게 함께 할 수 있는 시간들이 주어져 감사하다. 중간에 한번 화장실을 다녀온 다음에 이야기를 나누며 왜목마을까지 갔다. 도착하니 이미 거의 만차이다. 봉고차라서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 좀 헤맸는데 차 앞 공간에 잘 밀어 넣고 연락처를 적어 놓았다. 자리를 잡고 형제님들이 텐트를 설치할 때 몇 사람은 망을 사고 호미와 장화를 대여받으러 갔다. 가져온 분들도 있어 필요한 수만큼 하면 된다.
텐트 치기
이미 많은 사람들이 바닷가에 앉아서 바지락을 캐고 있었다. 모래가 섞인 흙이라서 다행이다. 도구를 준비해서 안으로 들어가 남들이 헤집어 놓은 곳을 제외하고 자리를 잡았다. 장갑을 끼고 호미를 잡고 땅을 파기 시작했다. 조개가 나오긴 했지만 크기가 생각보다 작았다. 그래도 기왕 왔으니 많이 캐서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잠시 후에 온 남편이 조개가 작다면서 이런 건 캐면 안 되겠다고 조언했다. 5월과 6월에 연휴가 많은 데다가 코로나 이후에 많은 분들이 다녀가서인지 여러 번 온 분 중에 오늘은 더 안 잡힌다고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왜목마을에서 처음에는 돈을 안 받았는데 이제는 7000원씩 입장료를 받는다고 했다.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다녀가서 자연산 조개로는 감당이 되지 않아 종균을 뿌려 키우는 거라고 했다.
왜목마을 바지락 캐기
그러고 보니 코로나 기간에 인적이 없어 잡지 않았을 때 조개들은 상당히 컸겠다는 생각과 당시에 이곳에 와서 꿋꿋하게 조개를 캤던 사람들은 대박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 조개를 잡았던 사람들은 기억이 나서 왔겠지만 우리는 당시에 생각도 못했던 시간이었다. 뭐든지 남들이 모두 할 때보다 안 할 때 해야 하는 데 그게 잘 되지 않는다. 엉덩이에 하나씩 앉은뱅이 의자를 달고 열심히 조개를 캤다. ME대표는 제노베파 자매는 순발력과 집중력으로 조개를 남보다 두 배는 많이 캤다. 우리는 점심식사 시간이 지나서 "이제 그만 캐라"는 말을 듣고 사진을 찍은 다음 텐트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보여할 텐트가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헐! 난감한 상황이다. 바람이 불어서 넘어졌고 다시 일으켜 세우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텐트를 아예 걷어 버리고 짐을 모두 봉고차에 갖다 넣었다. 장화는 반납하고 화장실을 다녀와 배 쪽으로 걸어갔다.
바지락 채취 후
안나 자매님이 해온 찰밥, 반찬과 함께 배에서 회를 같이 먹기로 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벌써 2시를 넘기고 있어 많이 배가 고팠다. 회를 파는 배의 선장님이 옆에다 우리가 배에 타서 먹을 수 있도록 배 하나를 묶어 내주었다. 배 선상에는 우리 13명이 먹을 수 있는 좌탁이 놓여 있었는데 조금 좁았지만 당겨 앉아 자리를 잡았다. 묵은지와 취나물 그리고 겉절이 김치를 접시에 담아 놓았다. 내가 가져간 죽순 무침과 족발도 담았다. 우리는 기도하고 허겁지겁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때성당 사무장님의 전화를 받고 대표와 토마스가 차를 빼주러 갔다. 차 옆에 붙은 전화번호를 보고 성당으로 전화를 했나 보다. 난 배가 고파서 말도 안 하고 먹었다. 정말 맛있었다. 워낙에 전에 식당 했던 경험도 있고 반찬을 잘 만드는 언니였기 때문에 맛은 최고였다. 정말 식당에 가서 먹는 것 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봉고차를 안전한 곳에 주차하고 두 분이 왔다.
선상에서 점심( 찰밥, 생선회)
오늘을 위해 토마스+안나 부부님은 일주일 전에 이곳을 미리 다녀갔고 대충 루트를 봐 놓았다고 한다. 그리고 선상 회파티와 찰밥을 해가서 먹는 생각도 그때 했던 것 같다. 물론 대표와 총무에게는 부담을 줄까 봐 그냥 가는 것처럼 했다고 한다. 주위에 갈매기가 날아다닌다. 음식을 먹는 주변엔 언제나 갈매기가 활개를 치는데 먹다가 하나씩 던져 주기 때문일 것이다. 갈매기에게 새우깡이 제격이지만 오늘은 먹고 남은 족발의 살점을 던져 주면 기가 막히게 덥석 물고 날아간다. 가까이 갈매기들을 보고 그들의 날갯짓을 보니 기분이 좋아진다. 우리는 오늘의 행복한 시간들을 더욱 즐기려 비록 소리는 나지 않지만 잔을 부딪쳤다. 행복한 시간들 속에 우리가 있었다. 시간이 흘러 선상의 테이블을 정리하고 차로 왔다.
왜목 마을 인증숏
왜목 마을이 쓰여 있는 곳에서 인증숏을 남기고 봉고차에 올랐다. 다들 좀 지쳐 보였다. 오다가 바다가 보이는 커피숍을 갔다. 우린 회비에서 지출을 하나보다 했는데 총무 대표 부부님이 개인적으로 사준다고 한다. 그런데 유명한 커피숍이라 그런지 찻 값이 장난이 아니게 비싸다. 확실히 보기도 좋고 맛도 좋았다. 그래도 기분 좋게 사 주신다고 해서 감사의 마음으로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마셨다.
커피숍에서
확실히 갈 때보다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빠른 것처럼 느껴진다. 갈 때는 그렇게 시간이 안 가는 것 같았는데 우리는 휴게소도 생략하고 본당으로 열심히 달려왔다. 저녁에 레지오 회합에 참석해야 하는 분들이 네 분 있었기 때문이다. 차 안에서 도마 대표님이 수고해 주신 분들과 감사를 드려야 하는 분들에게 일일이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주모경으로 마무리를 했고 7시 35분에 성당에 도착했다. 미사 할 분들은 성당으로 들어가고 나머지는 인사를 하고 집으로 귀가했다. 바지락은 왜목에서 바닷물을 넣어 배분해 놓았고 안전하게 가져왔다. 하룻밤을 뒀다가 빡빡 문질러 씻고 냉동실에 넣으면 된다. 모처럼 체험학습을 다녀온 느낌이다. 조개를 많이 캐지는 못했지만 하나라도 더 캐려고 집중하고 체험한 시간들이 행복했다. 함께 추억을 만든다는 건 즐겁다. 가끔 우리는 왜목 마을에서 바지락을 캐고 선상에서 즐겁게 식사했던 시간들을 떠올리며 행복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