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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미영 sopia Oct 10. 2023

책 리뷰 - {아버지의 해방일지}

창비 / 정지아 소설 / 268page

정지아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2023년 '책 읽는 청주' 선정도서이다. 빨치산의 딸로 살았던 정지아의 손끝에서 펼쳐지는 시대의 아픔과 온기를 느끼고 싶어 읽게 되었다. 저자 정지아는 전남 구례에서 태어나 중앙대 대학원 문예 창작과 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장편소설 <빨치산의 딸>을 펴내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199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고욤나무>가 당선되었다. 여러 문학상과 올해의 소설상, 노근리 평화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저자 아버지의 장례식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전직 빨치산이었던 아버지 고상욱은 20십 년 감옥살이를 마친 후 고향에 터를 잡았지만 농사는 번번이 실패했다. 6.25 전쟁 후에 지리산에서 빨갱이로 활동했던 좌익 아버지의 모습과, 통일이 되지 못하고 분단의 상황에서 남쪽에서 살아야 했던 가족의 고단한 삶이 전해졌다. 장례식에서 다녀가는 지인들을 통해 아버지의 힘겨운 삶을 돌아봤는데 죽음을 통해 부활하듯 해방된 것이다. 잊히거나 지워진 상혼들을 끌어내 마치 오늘의 일처럼 엮어내는 소설 내용에 푹 빠져 들었다.


저자의 아버지는 전에 빨치산에서 빨갱이로 활동을 했었고 고단한 삶을 살았다. 온통 색깔로 묘사되던 '빨갱이'라는 말이 주는 무게감으로 인해 소설은 묵직했다.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감정은 어떤 것일까? 이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아버지의 죽음을 목도하며 상가를 방문한 여러 사람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한때 아버지는 1952년 위장자수를 했는데 빨치산이 전멸하기 전에 조직을 재건하기 위한 정세 판단이며 모험이었다. 후에 조직을 재건하다 걸려서 무기형을 선고받았을 때도 전향을 꾀하기도 했었다. 같이 활동한 사람 중에 김상욱은 곡성에서 농사짓는 가톨릭 농민회 초창기 멤버였다. 한국전쟁 발발 직전에 곡성 보국 위원장이었던 아버지는 곡식 숨긴 마을을 샅샅이 뒤지다가 스물세 살의 순경 김상욱을 찾았다. 순경 직업을 포기할 테니 목숨을 살려 달라고 했고 미련 없이 파출소에 사표를 던졌다고 한다. 김상욱은 쌀 한 됫박을 들고 생명의 은인 아버지를 찾아 쌀을 건넸다는 것이다. 덕분에 아버지는 군당 식구들과 쌀밥을 배불리 먹었다. 목숨을 살려 주었던 사람을 위해 목숨을 걸려 했던 상욱은 어떤 마음이었을지 저자는 궁금했다.

아파트 출구

다양한 사람들이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헤쳐 모여하듯 아버지의 지인들이 모여들어 거대하고도 뚜렷한 존재를 드러 낸다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튿날 박한우 선생은 십 수 차례 다녀갈 정도로 관심을 쏟았다. 그는 평생 군인으로 교련 선생으로, 그리고 조선일보 애독자로 살아왔다. 오가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아버지의 부고를 전한 것인지 들어본 적이 없는 동창생부터 철물점 사장, 과일가게 사장, 지물포 사장 등등 각양각색이었다. 그중에 소 선생은 전쟁에 나가기 전에 아버지와 다른 제자에게 밥을 사 주었다. 사무적으로 조문했고 다정하지도 친절하지 않았다. 두툼한 봉투를 조위금으로 넣고 황망히 사라졌다. 저자는 아버지가 누군가의 편의를 봐주기도 했지만 누군가의 덕으로 살기도 하셨다고 기억했다. 우파 친구가 사라진 길로 좌파 친구들이 몰려왔다고 표현했다. 떡집 언니는 전복죽을 끓여 왔고, 어떤 노인은 영정 앞에 오래된 사진을 꺼내 놓기도 했다. 염이 시작되면서 아버지와 가까왔던 사람들이 널찍한 통유리창  앞에 몇 겹으로 늘어섰다. 금속 침대 위에 놓인 아버지의 모습은 임종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주인공은 몸이 약한 어머니를 대신해 어린 자신을 목욕시켰던 아버지를 추억했다. 알몸을 본 섬진강에서 당시 아버지와 분리되었다. 아버지를 빼앗아 간 것은 이데올리기나 국가가 아니라 자신과 아버지의 다름을 깨달았던 순간이었다. 마지막 삶을 정리하고 수의를 입을 때 평소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작은 아버지도 나타났다. 저자는 아버지가 낫으로 베어버린 책에 불만을 갖고 학생 때 집을 나갔던 적이 있었다. 그때 작은 아버지가 자전거를 타고 나타나 수박을 먹여 주었던 것을 기억했다. 가족들 모두 작은 아버지를 반겼다. 갈등을 겪었던 형제도 죽음 앞에서는 모든 게 용서되나 보다. 딸 하나뿐인 상주 집에 손님들이 북적였던 건 몇몇 사람들이 자리를 지켜주었고 장례기간 동안 대여섯 번씩 왔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살아온 생애는 죽고 나서 장례식장의 분위기가 잘 대변해 준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빨갱이로 살아왔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인심을 잃지 않았음을 증명해 주는 것이 될 것이다. 저자와 8년 만난 선배는 판사가 꿈이었는데 큰일을 할 사람이라고 아버지께서 놓아 주라고 당부하셨다. '빨갱이'의 사위로 묶이는 걸 바라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저자는 오기로 선배를 지속적으로 만났는데 변호사가 되면서 청혼에 이른다. 그러다 결혼식 전날 친구가 술김에 저자의 부모가 빨갱이라고 알리면서 결혼식은 성사되지 못했다.


일화를 소개해 본다. 아버지 얼굴에 상처를 본 학수는 아들을 자처하며 돈 20만 원과 30만 원을 담아 노인정을 찾아갔다. 그러곤 아버지 편을 들어주며 돈을 건네는 모습을 보고 주인공은 그렇게 하지 못했음을 알게 된다. 아버지가 학수와 다정하게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보고 저자는 생각이 많아졌다. 학수는 노련한 사람으로 옛 추억을 상기하는 척, 저 혼자 잘난 저자에게 엿을 먹였다고 생각한다. 대체 어떤 딸이었으냐고 묻는다면 빨치산의 딸이라는 수렁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발버둥 치는 데 평생을 바쳤고 아직도 허우적거리는 중이다. 저자는 부모가 자식에게 기대하는 게 있듯이 자식도 부모에게 바라는 것이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동안 빨치산의 딸이라는 굴레가 무거웠다고 변명을 하고 싶었으나 돌아가신 아버지가 야속했다. 당시 시대에 '빨치산'이라는 굴레가 주었던 무게감은 상당히 무거웠을 것이고 그로부터 해방되고 싶었던 간절한 바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저자는 생판 남인 주제에 친자식 같았던 학수를 바라보며 착잡한 생각이 든다.

어느 카페의 주방 모습

장례식장에 냉동된 아버지와 단 둘이 있을 때 저자는 감옥에서 나온 아버지를 기억했다. 6학년 사춘기를 겪고 있었을 때 거리가 멀어졌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날 아버지 출소기념사진을 찍고 자장면을 먹었다. 이튿날 계곡으로 가족여행을 갔다. 성장기를 거치고 있던 저자는 아버지와 떨어져 지난 6년의 세월이 아쉽게 느껴졌다고 고백했다. 감옥에 지냈던 아버지야말로 긴긴밤마다 많은 것들을 사무치게 그리워했음을 깨닫게 된다. 그 순간 오열하던 주인공은 전과 달리 아버지가 그립던 어떤 날들처럼 친밀하게 느껴졌다. 죽음으로 비로소 아버지는 부활한 듯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살아나며 화해나 용서가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깨닫는다. 아버지는 혁명가였고 빨치산의 동지였지만 그전에 자식이고 형제였으며, 남자이고 연인이고 누군가의 친구이고 이웃이었다. 저자는 아버지를 평생 알아 온 것보다 장례를 치르면서 더 많이 알게 된 것 같다. 아버지의 유골은 섬진강 주변과 반내골 가는 길에 뿌려졌다. 저자는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잘났다고 뻐대며 살아온 세월의 통렬한 반성이라고 했다. 더 멀리 높이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쉰을 넘어서야 깨닫는다. 출간하면서 그간의 오만과 무례와 어리석음을 아버지께 청했다.  


 아버지의 삶이 고통스러웠으니 죽음을 저자는 해방의 기쁨이라고 표현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네 줄기로 구성된다. 첫 번째는 작은 아버지의 이야기다. 빨갱이 형 때문에 집안이 망했다며 대립하며 살았던 작은 아버지는 장례식에  나타나 화해를 청한다. 두 번째는 어린 시절 구례 아버지의 친구들로 박 선생은 둘도 없는 친구였다. 정치적 지향으로 투닥거렸지만 장례식장에서 발 벗고 도와주었다. 세 번째는 저자와 아버지와의 관계이다. 빨치산 딸로 힘들게 살아오면서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죽음 이후에 장례식장에 다녀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동안 봐왔던 아버지 모습을 많이 수정하게 된다. 네 번째는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의 일화들이다. 사회주의자지만 현실주의자였던 어머니와 사회주의에 빠져 의리를 천직으로 살았던 아버지의 모습들이다. 그러나 어머니도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는 이해한다. 저자도 증언해 주었던 사람들을 통해서 고단하고 힘겨웠던 아버지 삶을 이해하게 되었다. '빨치산 가족으로 살아냈던 지난날들이 얼마나 고단했을까?' 짐작도 어렵겠지만 많은 부분을 용서하고 화해하는 모습들이 관계의 부활로 여겨졌다. 회복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니 다행이다. 너무 두껍지 않고 내용도 읽기 편해서 좋았다. 관심 있는 분들께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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