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에서는 일 년에 한두 번은 각 단체별로 야유회를 간다. 특히 5월에 많이 가는데 그리 덥지 않고 예쁜 성지의 모습 때문일 것이다. 이럴 때 단원들끼리 신앙과 친목을 다지는 계기가 된다. 성당의 주방을 담당하며 주로 행사 때 국수를 끓이는 데 우리 성당의 국수 맛은 교구에서 알아준다. 가끔 반찬 등을 해서 팔기도 하며 수익금은 불우 이웃을 위해 사용한다. 성모회에서 충남 아산에 있는 공세리 성지를 가기로 했다. 공세리 성지는 전에도 평화의 모후 꾸리아에서 다녀온 곳이다. 그때도 공세리 성당이 드라마나 영화에 나온 유명하고 멋진 성당이라서 가봤는데 주변 모습이나 성당이 아주 보기 좋았다. 좋은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었는데 간다고 하니 기대와 설렘으로 기다리게 되었다. 공세리 성당은 1890년 예산 간양골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그리고 1895년 공세리로 본당을 이전하여 134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성당이다. 현재의 성당은 1922년에 파리 외방 선교회 에밀데비즈 신부가 설계하여 설립이 되었다. 성당이 위치한 1만 평의 부지는 충청도 일대의 세곡을 저장하던 공세 창고가 있었던 곳이다. 초대 주임 신부가 프랑스에서 가져온 원료를 기반으로 당시에 복사였던 이명래(요한)에게 전수하여 이명래 고약이 생기게 됐다는 일화도 있다. 현재 아산지역 출신 순교자 32위를 모시고 있는 성지로 알려져 있다.
공세리 성당
오늘 출발 인원은 성모회원, 신부님, 수녀님 포함 32명이다. 성모회 전체 인원이 38명이니 많은 인원이 참석하는 편이다. 그리고 32명이면 편안하게한 차로 움직이기 딱 좋은 인원이다. 차에 오르자 성모회에서 준비한 역대급 간식과 물을 나누어 주었다. 떡과 컵과일까지 간식이 아주 풍부하다. 오늘 야유회를 위해 성모회원들이 빨랑카를 많이 했다는 후문이다. 그래서 더욱 풍성한 간식을 먹을 수 있으니 감사한 일이다. 게다가 성모 회장님은 참석한 회원들에게 기념타월을 준비해 줬다. 그동안 수고함에 감사하며 앞으로도 성모를 잘 도와 달라는 뜻이 아닐까 생각한다.잠시 후에 성모 회장님의 주송으로 묵주기도를 바쳤다. 이후 우리는 간식을 먹으며 옆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휴게소에는 들르지 않고 공세리 성당으로 직행을 하여 9시 50분쯤 주차장에 도착했다. 미사는 11시이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남아서 공동 십자가의 길을 함께 바쳤다.
공동 십자가의 길
공세리 성당 실내
성지 미사와 점심식사
10시 30분 정도에 끝나 미사를 드리러 성당으로 들어갔다. 미사 봉헌할 분들은 봉투를 써서 수녀님께 드렸다. 옛날식이라서 신발을 벗고 들어갔다. 오늘 미사에 용암동 성모회에서 보편지향 기도를 8명이 하게 돼서 앞쪽에 두 줄로 자리에 앉았다. 미사 전 수녀님께서 무엇을 해야 할지 설명해 주셨다. 자리 앞에 공세리만의 성가와 기도들을 적은 두꺼운 미사 책이 놓여 있었고 안에 기도문이 있어 번호에 맞게 바치면 된다. 그레고리오 성가 후 잠시 묵상의 시간이 이어지고 미사가 시작이 되었다. 공세리 주임 신부님께서 미사 봉헌하는 내용들을 읽어 주셨다. 신부님은 머리가 조금 길어서인지 예술가 타입 같았다. 강론 말씀이 이어지고 공세리의 역사적인 배경을 설명해 주셨는데 말씀의 강약도 있었지만 속도가 빠르셨다. 그리고 강론 말씀 중에 전화벨이 울리자 벌칙으로 후원금 50만 원을 말씀하셔서 웃음을 자아냈다. 그리고 강조했던 건 기왕 오셨으니 공세리에 눈도장만 찍지 말고 성지 안에 홀로 머물러 보라고 하셨다. 정말 좋은 말씀이라는 생각이 들며 그렇게 해 보리라 다짐했다.
공세리 점심식사
본당신부님은 사제의 시간은 신자들의 목숨값이라는 것을 상기시키며 잊고 살아왔는데 모든 게 은총임을 깨닫게 되었다고 인사를 하셨다. 미사는 12시 30분쯤 끝이 났고 지하 식당으로 내려가 줄을 섰다. 한쪽에는 묵을 한모에 5,000원씩 팔았는데 직접 쑨 묵이라고 해서 사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접시에 담아 가서 함께 모여 식사를 했다. 식사를 준비해 준 성지 자매님들의 정성이 느껴졌다. 이번엔 도토리 묵이 맛있어서 한 번 더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면서 머신에서 커피를 내려 마셨다. 바깥에는 탁자와 의자들이 마련돼 있고 우리가 차를 마시는 동안 신부님께서 양 한 마리를 데리고 오셨다. 강론 시간에 양을 키우고 있다고 하시며 보여 주겠다고 하셨는데 그 양인가 보다. 양이 순한 줄 알고 있지만 나름 고집이 세다고 한다. 아주 큰 양은 아니지만 먹이를 주니 잘 받아먹는다. 그리고 주변에 풀과 나무도 뜯어먹었다. 가까이에서 양을 보니 신기하다. 성서에 양만큼 많이 나오는 동물이 잇을까? 자주 사람들과 접해서 그런지 양도 거부감 없이 잘 따랐다. 신부님과 양, 잘 어울려서 보기 좋았다.
신부님과 한 마리 양
아산 신정호수에 들려서
군데군데 장미 덩굴이 아치의 철제에 올려져 더욱 예뻤다. 그곳에서 조별로 사진을 찍었다. 어느 성지를 가더라도 성물방에는 가본다. 이번에도 이것저것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공세리 가방이 마음에 드는 게 있었으나 흰색이라 쉽게 때가 탈까 봐 구입하진 않았다. 밖으로 나오니 끼리끼리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몇 군데 사진을 찍다 보니 갈 시간이 다 되어간다. 미사 시간에 홀로 머물러 보라는 성지 신부님 말씀이 생각났다. 슬며시 성당 안으로 들어가 무릎을 꿇고 주님께 감사를 드렸다. 그리고 성모회원들과 즐겁게 성지순례를 할 수 있음에 더욱 감사를 드렸다. 그리고 조용히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지금, 여기, 이곳에 나를 불러 주신 주님의 뜻은 무엇일까? 그리고 홀로 머물러 보라는 신부님의 뜻을 새겨보며 잠시 침묵의 시간을 보냈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리고 가슴이 먹먹해지며 눈물도 글썽거렸다. 소란스럽던 바깥이 조용해진 걸 보니 다들 버스로 이동을 했음을 직감했다. 좀 더 있다가 나왔는데 사진을 찍는 몇 사람만 있다. 올라왔던 길을 생각해서 서둘러 아래로 내려갔다. 휴대폰에는 여러 통의 전화가 와 있었다. 더욱 서둘러 내려가니 총무 글라라가 기다리고 있었다. 책임감에 감사하며 늦어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래도 혼자 묵상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았고 출발 시간도 아직 남아 있으니 다행이다. 인원 체크를 마치고 신정호수로 출발했다.
신정호수
아산 신정호수와 저녁식사
우리는 아산 신정호수 부근에 도착해서 가져온 시원한 냉커피를 받아 들었다. 이곳까지 냉커피와 얼음을 공수해서 회원들을 챙겨 주려는 간부님들의 마음에 감동했다. 횡단 보도를 건너 호수를 끼고 주변을 걸었다. 이곳도 군데군데 장미가 예쁘게 아치를 이루고 있어서 사진을 찍기에 좋았다. 확실히 청주보다 장미가 싱그럽고 예쁘다. 우리는 삼삼오오 짝을 지어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쩌면 이런 시간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당을 다녀도 미사나 회합으로 깊은 대화를 하지 못했는데 공기 좋고 확 트인 곳에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니 기분 좋다. 그리고 상대방을 더 이해하게 만들어 주어 좋았다. 한참을 걸어가면서 함께 사진도 찍고 예쁜 꽃이 있으면 가까이 다가가서 찍었다. 카메라로 아무리 잘 찍어도 눈으로 보는 아름다움을 다 담을 수는 없었다. 어느 정도 지나자 신부님, 수녀님께서 이제는 돌아갈 시간이 됐다고 돌아오고 계셨다. 우리도 턴을 해서 뒤따라 걸었다. 오늘은 빨랑카를 많이 내 준 회원들 덕분에 저녁까지 먹는다고 한다. 옹골찬 밥상에 도착하니 4시 30분쯤 되었다.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며 담소를 나누고 마침기도까지 잘 마치고 다시 차에 올랐다. 성당에 오니 5시 30분쯤 되었고 우리는 차에서 내려 집으로 향했다. 공세리 성지순례로 감사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