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 천주교 서울 순례길 나들이

2025년 12월 13일(토)~14일(일)

by 신미영 sopia

&. 고요하고 숭고한 길 속으로의 마음 여행

성당에서 친하게 지내는 네 명은 12월 13일~14일 이틀간 서울 순례길을 여행하였다. 몇 년 전부터 <네 잎클로버>라는 모임으로 만나고 있는데 마음이 잘 맞는다. 이번 여행의 테마는 '고요하고 숭고한 길 속으로의 마음 여행'이다. '천주교 서울 순례길'은 2018년 9월에 아시아 최초 교황청 승인 국제 순례지로 선포되었다. 신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신앙 선조의 수난사이며 뿌리내리기 위해 힘들었던 역사라서 진정 의미 있는 길이다. 순례길은 1코스 말씀의 길, 2코스 생명의 길, 3코스 일치의 길로 구분된다. 우리는 이번에 일정상 1코스와 2코스를 순례했다. 1코스는 명동성당에서 출발하여 가회동 성당까지 걷는 순례길로 8,7km이다. 약 3시간 40분이 소요되며, 9군데이다. 2코스는 가회동 성당에서 출발하여 중림동 약현동 성당까지 약 5,9km이다. 2시간 30분이 소요되며 9군데이다. 처음 순레길을 제안했던 세실리아가 일정을 짜고 인쇄물과 상세한 것들을 주도해서 이끌었다. 석 달 전에 순례를 가기로 해서 세 번 정도를 만나 설명 듣고 준비하였다. 12월 13일 새벽 5시 50분 시립도서관에서 아녜스 승용차를 타고 오송역으로 가서 6시 30분 출발하는 KTX로 서울로 이동하였다. 우리는 김밥과 삶은 계란, 과일 등으로 아침식사를 해결하였다. 청주서 서울역까지는 대략 1시간 정도 걸려서 출퇴근하는 사람들도 꽤 있는 듯하다. 당일 비 예보가 있어 각자 우산을 챙겨 갔는데, 서울역에 내려보니 예상대로 비가 내렸다. 역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명동성당으로 출발하려 했으나 방향을 잡지 못해 택시 타고 이동했다. 길 건너가서 타는 걸 몰라 빙 둘러 가게 돼서, 택시 기사분과 이야기를 나누며 갔다.

서울 명동 성당

명동성당에 도착해서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서울 대교구 역사관은 휴관이라 순례자 여권은 구입하지 못한다. 순례를 인증하는 스탬프를 찍으면서 다니면 더 신날 텐데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했다. 명동성당을 한 바퀴 둘러보고 미사에 참석하였다. 이날 토요일임에도 미사에 참례한 사람들이 꽤 많았다. 성물방에 들려서 목걸이와 명동성당 마그넷을 사고 사진도 찍으며, 8분 거리에 있는 김범우의 집터로 향했다. 그런데 처음부터 찾는 게 쉽지가 않았다. 길 찾기 네비를 켜고 주변 분들에게 물어서 가기는 했으나 제대로 찾지 못해서 한참을 헤매고 다녔다. 각자 배낭 메고 우산을 들고 다니다 보니 아주 힘들었다. 첫 코스부터 대략 난감이었다. 이래서 호기 좋게 서울 순례길 걷겠다고 나섰던 우리가 부질없고 안쓰러웠다. 겨우 김범우 집터(장악원 터)를 발견했다. 이곳은 1784년 말 신앙집회가 열렸던 곳으로 김범우는 한국 최초의 천주교 증거자로 기록된 인물이다. '천주실의' '칠극'의 교회서적을 보관하고 빌려 주면서 교리를 전파하였다고 한다. 이후 복개된 청계천을 바라보며 깨끗해진 개울과 조형물에 감탄하며 걸었다. 이곳에서 다양한 행사도 열린다고 하니 서울 시민들에게 문화의 공간이자 휴식의 공간이 된 듯해서 부럽고 보기 좋았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 옛 사상계 터를 찾아냈다. 바닥에 적힌 글귀에는 1953년~1970년 군사독재와 유신시대를 비판한 시사 월간지 사상계, '이곳에서 찍어내고 폐간하다'라고 동판에 새겨져 있었다.

김범우 집터와 월간지 사상계 터

&. 배낭을 메고 우산을 쓰고 진퇴양난의 순례길

우리는 신간회 본부 터를 지나 한국 창립교회 창립 터를 지났다. 종로구 대학로에 있는 아로코 미술관 앞에서 사진을 찍고 내부로 들어가 화장실을 다녀왔다. 횡단보도를 건너 탑골 공원을 돌아서 단성사 옛 영화관 근처에 위치한 한국 천주교 터이자 최대의 신앙 증거 터를 찾아냈다. 병오년과 병인년에 이곳으로 압송된 신자들이 신앙을 증거 하다 순교한 곳이다. 단성사 터는 1907년 설립되었으며 한국 최초의 영화가 상영돼 한국 영화관의 상징이 된 곳이다. 이곳은 죄인을 다스리던 좌포도청 터이다. 한참을 더 걷다가 팔도 아프고 배가 고파서 들어간 곳이 종로 영*옥이었다. 잔뜩 기대하고 꼬리곰탕(1인 29,000원)과 육개장(11,000원)을 먹었지만 가격만 무지하게 비싸고 맛도 별로여서 실망하였다. 뚝배기에 뜨끈하게 끓여서 나왔다면 비싸도 불평 없이 먹었을 텐데 미적지근한 맛이 아주 별로였다. 더구나 식은 음식을 전자레인지에 슬쩍 돌려주는 것을 보고 '정말 이건 아니다' 싶었다. 나오면서 괜히 이곳에 왔다고 서로 실망과 불만을 토로했다. 우리는 볼거리가 있는 인사동으로 향했다. 인사동의 쌈지길은 2004년에 복합문화공간으로 설립됐다. 좁은 골목 사이로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건물들이 있고, 다양한 공예품과 소품 가게들이 눈길을 끈다. 우리는 인사동거리를 구경하면서 전통찻집으로 들어갔다. 길게 안으로 쑥 들어간 중간에 자리가 있어서 쌍화차와 가래떡을 주문했다. 그동안 걷느라 지친 근육을 풀어주며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꿀에 찍어 먹는 가래떡의 맛과 쌍화차가 어우러져 맛이 괜찮았다.

인사동 전통찻집
인사동 거리에서

밖으로 나와 쌈지길에서 사진으로 흔적도 남겼다. 이후에 오늘 일정이 남아 있었으나 우산 쓰고 걷느라 너무 지치고 힘들어 두 시간 일찍 숙소로 향했다. 종로구 북촌에 있는 한옥 체험마을로 4명이 1박을 하는 데 우리가 갈 곳은 32만 원이다. 가족이 운영한다는 한옥은 젊은 자매가 와서 안내해 주었다. 홈페이지에서 보는 것보다 실제로 와보니 마당과 방이 작아서 다소 실망했다. 이불은 부모님 세대가 사용하던 색동 목화솜으로 묵직하게 개인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주방은 옛 부엌을 개조해서 움푹 들어가서 발판을 딛고 내려가야 한다. 화장실은 바깥에 있어서 추운 날씨에 볼일을 보기가 귀찮을 듯했다. 마루를 방으로 만들어 이중문만 열면 바로 바깥으로 내딛는 곳이다. 썰렁한 방바닥에 이불을 펴놓고 저녁을 먹으러 나가다가 근처에 있는 가회동 성당을 들렸다. 이곳은 한국 천주교 최초의 중국인 주문모 신부가 1795년 한국에서 거행된 첫 미사를 봉헌한 의미 있는 성당이다. 원래의 건물은 너무 낡아서 2011년부터 새 성전을 짓기 시작해 2013년에 준공한 건물이 하얀 건물이라고 한다. 가회동 성당은 결혼식을 많이 하는데 이날도 마무리를 하느라 사람들이 분주히 오갔다. 2층 성당에 가보니 합창 연습을 하고 있었다. 성당 들어가기 전 잠깐 손을 얹어 기도하고 아래층으로 내려와서 전시물들을 둘러보았다. 그러고 나서 한참을 걸어 찾아간 곳은 저녁식사 북촌 김치 갈비찜 식사이다. 자리가 넓긴 했으나 생각보다 맛이 썩 좋지는 않았다. 그래도 종일 걷느라 지친 우리에게 얼큰하고 따끈한 김치 갈비찜은 그런대로 위로와 피로를 풀어 주었다.

북촌 주변과 저녁식사

&. 북촌 한옥마을의 체험과 광화문 사거리를 걸으며

집으로 들어오다가 내일 조식을 생각해서 죽을 사기로 했다. 한옥집에서 마련해 준건 삶은 계란과 황기차와 커피이다. 가스레인지가 있어서 죽은 데우면 되기 때문이다. 마트에 들러 필요한 것들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날씨도 춥고 바깥이라서 샤워를 하기는 어려워 세수만 간단히 하고 화장품을 발랐다. 오늘 힘들었던 순례와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방바닥은 따뜻했고 이불은 묵직해서 생각보다 춥지는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전복죽과 호박죽. 단팥죽을 데우려고 가스레인지를 켰으나 냄새만 나고 불이 점화되지 않았다. 그래서 전자레인지에 죽을 테우고 당근주스. 황기차와 같이 식사했다. 나중에 주인에게 연락해 보니 가스를 켜고 다시 점화해야 하는 걸 몰랐다. 오늘은 주일이라서 미사를 가야 하지만 가회동 성당 미사를 드리고 가기엔 시간이 맞지 않았다. 그래서 논의 끝에 말씀의 전례로 대신했다. 본당에서 전에 전례부장을 역임한 분들이 있어 해설과 독서 복음을 돌아가며 낭독했다. 이런 경험을 해보는 것도 나름 괜찮았다. 특히 강론 말씀 대신에 이번 순례를 하며 느낀 점과 말씀의 전례에 대한 소감을 들으며 가슴 뭉클한 시간을 보냈다. 각자가 생각하고 느끼는 이야기를 들으니 공감도 되고 좋았다. 서둘러 짐을 싸서 오늘의 순례 코스로 향했다. 우리는 걸어서 헌법 재판소를 지나쳐 광화문으로 향했다. 길들이 무척이나 넓고 거리를 질주하는 차와 사람들도 많다. '이곳이 정말 서울이구나'를 실감했다.

서울 광화문 거리와 교보문고 앞에서

광화문 광장에는 전*훈 목사가 주도하는 집회가 열려서 아주 시끄러웠다. 추위에도 불구하고 많은 인파가 모였고 주변에는 혹시 어떤 불상사가 생기지 않을까 싶어 경찰이 배치되었다. 집회의 자유가 있다지만 주변 사무실이나 경찰, 일반 시민들이 무슨 죄인가? 상관없는 소음에 시달리고 추위에 떨면서 지켜봐야 한다는 게 화가 났다. 이렇게 소음을 일으키며 막무가내로 매주 집회하는 분들이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처럼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았고 하늘도 맑다. 우리는 경찰분들에게 물어서 다음 여정을 이어나갔다. '광복 80주년 역사 되찾기(1945-1948) 다시 우리로' 슬로권으로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으나 시간이 많이 걸릴 듯해서 포기했다. 이번 전시는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3층에서 기획 전시로 무료이다. 목적은 격동의 해방공간에서 온전한 우리를 되찾고자 했던 뜨거운 선조들의 노력을 조명하는 데 있다. 우리는 걷다가 세종대왕 앞에서 사진을 찍었고 더 걸어서 11 형조 터에서 주모경을 바쳤다. 이곳은 조선시대의 중앙관서인 육조의 하나로 한국 천주교인들이 형조로 압송돼 문초를 받았던 곳이다. 이후 교보문고 앞 돌에 새겨진 문구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와 횡보 염상섭의 연대기가 있는 비석을 사이에 두고 벤치에 앉아 사진을 찍었다. 옆에는 성탄 분위기에 '꼭 이루어질 거야'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바라보며 각자의 소망을 담았다.

의금부 터와 일본식 돈까스 식사

&. 서소문 역사 공원 그리고 조선 최초의 약현동 성당에서 머물다

우리는 다음 장소인 의금부 터로 이동하였다. 이곳은 조선시대 왕명을 받들어 중죄인을 심문하던 관청이 있던 자리라고 한다. 대표적으로 이승훈 베드로, 주진모신부, 정하상 바오로 등이 이곳에서 문초를 당했던 곳이다. 한참을 다시 걸었다. 이후에 배가 고파서 2층에 일본식 돈가스. 카레 전문 집으로 들어가 세트메뉴를 주문했다. 생선가스와 돈가스를 소스에 찍어 먹어보니 바삭하니 맛이 좋았다. 순례 중 먹어 본 것 가운데 가장 맛이 좋았다. 이곳도 맛집인지 연예인들의 사인이 많았다. 맞은편 쪽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쉬다가 다시 길을 나섰다. 경기 김영 터에서 기도하고 기찻길을 지나 서소문 역사 공원으로 들어섰다. 이곳은 서소문밖 네거리 순교성지이다. 서소문 역사 공원에 순교자 현양비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설명을 듣고 있어서 같이 듣다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갔다. 지하 1층에는 도서관, 명례방, 주차장, 지하 2층에는 기획전시와 성 정하상 기념 경당과 주차장이 있다. 지하 3층에는 콘솔레이션 홀과 상설전시, 하늘 광장,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특별 기획으로 김인중 사제의 스테인글라스와 평면회화 그리고 세라믹과 유리공예를 활용한 60여 점을 9월 27일~12월 21까지 전시되었다. 지하 3층에 하늘광장은 지상공원을 넘어 하늘까지 열려 있어 땅과 하늘이 소통하는 순교성지의 공간 개념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곳엔 서소문밖 네거리 형장에서 박해받다 순교하여 성인 반열에 오른 44인을 형상화한 예술작품이 우뚝 솟은 침목으로 만들어져 거룩해 보였다. 선조들의 곧은 정신이 마음에 새겨지는 듯했다. 올라오면서 조형물과 전시된 작품들을 감상하며 밖으로 나왔다.

서소문 역사 박물관. 약현동 성당

걸어서 생명의 길 2코스의 마지막인 중림동 약현동 성당으로 갔다. 조선 최초의 성당으로 서소문 밖 사형장을 굽어보는 언덕 위에 1892년 완공되었고, 1896년에 한국 최초의 사제 서품을 했던 곳이다. 성당에 들어가 순례길 여정을 잘 마칠 수 있음에 감사드리며 잠시 기도를 올렸다. 어제는 비가 내려서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2코스를 완주할 수 있었다. 스탬프를 찍지 못해서 아쉬웠지만 4명이 같이 다니면서 신앙선조들의 정신을 돌아 볼 수 있는 순례를 한 것에 마음이 뿌듯했다. 꼬박 이틀을 순례 여정에 바쳐서 힘은 들었지만 보람 있는 시간이었다. 서울 순례길 1코스의 핵심주제가 "복음이 어떻게 이 땅에 뿌리내렸는가?" 였다면 2코스는 "믿음은 삶과 죽음으로 증명된다"이다. 그래서 1코스는 조용히 묵상하며 신앙의 뿌리를 돌아보며 걷는 길이고, 2코스는 각자의 삶에서 증언해야 할 자리를 새겨 보라고 조언한다. 이번 순례를 계기로 믿음의 정신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서울 도심을 걷는 길이었지만, 순교자들의 신앙과 성경 말씀이 살아 숨 쉬는 순례길이었다. 분주한 일상 속에서 쉽게 지나쳤던 성당과 장소들이 순례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니, 더 마음에 새겨지는 듯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생명을 내놓았던 분들의 발자취 앞에서, 그동안 얼마나 안일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는지 반성도 했다. '신앙은 특별한 날에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선택과 실천 속에서 살아나야 하며, 성경 말씀에서, 신부님 강론에서, 일상의 삶에서 받아들이고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진지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신앙의 선배로 함께 걸었던 세실리아, 벨라뎃다, 아녜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2025년 5월 꾸리아에서 다녀간 절두산 성지와 서소문 박물관 글을 올려 드리니 참고해 주세요~&

https://brunch.co.kr/@sopia1357/7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