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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투기사

1.1.2.1. 금융 및 신용의 법제화

by SOR
화면 캡처 2025-03-29 190443.png

기원전 18세기 함무라비 법전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되어 온 금융 관행을 국가 차원의 성문법으로 정비한 최초의 법률 문서 중 하나였다. 신용 거래는 더 이상 공동체나 친족 중심의 신뢰 체계에만 의존하지 않고, 법적 효력과 국가 권위를 동반하는 계약 행위로 변모하였다. 이는 고대 금융 질서의 제도화라는 점에서 결정적인 이정표였다.



1) 관행적 이자율의 법정 고정

함무라비 법전은 다음과 같은 이자율을 명문화하였다:

곡물 대출: 연 33⅓% (1/3)

은 대출: 연 20% (1/5)

이 비율은 기원전 2600년경 수메르–우르 제3왕조 시기부터 관행적으로 사용되던 비율이었으며, 수많은 점토판 문서에서 실제 사용 사례가 확인된다. 예를 들어:

“은 1세겔을 빌리고 1년 뒤 1.2세겔로 상환한다.”

“보리 30쿠르를 빌리고 추수 후 40쿠르로 상환한다.”

이러한 관행은 함무라비 법전 제88조 및 제89조에서 공식적인 법정 이자율로 성문화되었다. 이는 단순한 관습의 반영을 넘어, 초과 이자 금지, 분쟁 시 기준 제시, 사법적 강제력 부여 등 다양한 법적 효과를 발생시켰다.



2) 상환 조건과 담보의 법적 처리

채무자는 상환기일에 원금과 이자를 계약대로 지급해야 하며,

상환이 불가능할 경우, 보유 재산이나 수확물을 담보로 제공해야 한다.

이때 채권자는 시장가격에 따라 상환물을 수령할 의무가 있으며, 임의 거절은 금지되었다.

채무 불이행 상황에서 채권자의 권리를 보장하면서도, 채무자에 대한 과도한 착취를 방지하는 장치로 이해된다.



3) 부정 행위에 대한 처벌 조항

함무라비 법전은 단순히 권리와 의무를 나열한 것이 아니라, 금융 질서를 위협하는 행위에 대해 형벌적 조항을 명확히 제시하였다:

대출자가 단위를 속여 더 많은 이자를 요구했을 경우 → 원금 몰수

문서 조작, 과도한 이자 수취, 담보 착취 행위 → 법정 처벌 대상

“정량·정도에 맞지 않는 이자를 취하면 그 전부를 상실케 하라”(제94조)

금융 거래가 단순 개인 간 약속이 아니라, 공공 질서의 일환으로 통제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4) 이자율의 통제와 정치적 목적

이자율 법제화는 단지 경제적 기준의 확립이 아니라, 함무라비가 수행한 정치적 통치 전략의 일부이기도 하다.

무제한 이자율 → 채무자의 몰락 → 병역·조세 기반 붕괴

따라서 법정 상한을 두고, 일정 시기에는 탕감령(mīšarum)을 통해 채무를 소거하거나 조정함

이는 지배층(상인·지주)과 피지배층(농민·채무자) 사이의 균형 유지를 위한 통치 기술이었다



결론

함무라비 법전에서의 금융 및 신용 규정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금융 관행을 공식적 법체계 안으로 편입한 사례이다. 이자율의 고정, 담보 처리의 법적 강제력, 형벌 조항을 통해 국가 권력은 금융 거래를 통제 가능한 법적 제도로 전환시켰다. 이는 고대 금융의 법제화와 국가화 과정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토대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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