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무라비 법전은 단순한 신용 대출뿐 아니라, 위탁투자·상업적 자본 운용·무역 파견 등 복합적 경제 활동에 대해 상세히 규정하고 있다. 이는 고대 근동에서 자본의 이동과 위험 부담이 단순 대여를 넘어 투자 계약의 형태로 발전했음을 의미하며, 해당 법 조항들은 자본 제공자와 운용자 사이의 책임과 수익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에 대한 고대 법률의 정교한 사유를 보여준다.
함무라비 법전은 무역업자 또는 운송업자를 외지에 파견하여 상업 활동을 수행하게 하는 구조를 전제로 한다.
자본 제공자(주로 상인 또는 귀족)는 은 또는 물품을 투자하고
운용자(주로 무역업자)는 해당 자본을 활용해 외지에서 이윤을 창출
법전 제102조–106조에 따르면, 투자 계약은 신 앞에서 맹세를 동반한 공식 계약으로 체결되며, 이익은 공정하게 분배되어야 한다.
이러한 구조는 현대의 위탁투자 또는 공동사업 파트너십와 유사하다.
상업 활동을 통해 발생한 순이익은 투자자와 운용자 간에 일정한 사전 비율에 따라 분배
예시: “은 10세겔로 무역한 결과 이익이 4세겔일 경우, 투자자는 3세겔, 운용자는 1세겔을 수취”
운용자는 자본이 아닌 시간, 노동, 위험 부담에 대한 보상을 받는 구조임
이는 자본과 노동 간의 분리된 기여를 인정하고, 계약 이행의 투명성과 상호 책임성을 제도화한 것으로 평가된다.
법전은 손실의 발생 여부와 그 원인에 따라 상환 의무의 성격을 달리 규정한다:
정상적 손실(시장 실패, 기후, 사고 등): 운용자는 원금만 상환하거나, 경우에 따라 면책
부주의나 계약 위반으로 인한 손실: 운용자가 손해 전액을 보상
제104조: “만약 운용자가 계약에 어긋난 방식으로 자본을 사용하거나, 주인의 명령을 어긴 경우, 그로 인한 모든 손실을 책임져야 한다.”
이는 고대에도 이미 리스크 관리와 원인 귀속의 개념이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손실이 자연재해, 강도, 전쟁, 불가항력적 요인에 의해 발생한 경우:
운용자는 신 앞에서 맹세를 하고, 손실 사실을 인정받으면
법적으로 면책되며, 원금 또는 이자를 반환하지 않아도 된다 (제103조)
이는 당시 신성법적 계약 질서의 존재와, 무역의 불확실성에 대한 제도적 대응을 동시에 보여준다.
모든 투자 계약은 서기관이 문서를 작성하고, 양 당사자와 2명 이상의 증인이 입회
수익 배분, 손해 책임, 상환 기한 등이 문서에 명시됨
증인의 서명이 없는 문서는 법적 효력을 인정받지 못함 (제122–125조와 연결됨)
고대 투자 시스템이 단순 구두 약속이 아니라, 법률 문서와 공신력 있는 증언 체계에 의거한 정식 계약 구조였음을 보여준다.
함무라비 법전은 단순한 대출을 넘어서, 자본의 투자와 노동의 분리, 위험의 귀속, 수익의 분배 등 현대적인 금융 원리의 기원을 보여준다. 자본가와 운용자의 관계를 법적으로 정의하고, 손익 공유 원칙을 문서화함으로써, 경제 활동을 계약적이고 제도화된 틀 안에서 조직하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이는 고대 근동에서 금융이 단순한 사적 신뢰를 넘어, 공적 법률 질서 속으로 진입한 분기점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