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무라비 법전은 고대 근동 경제의 중심이었던 농업 활동을 둘러싼 계약 관계, 노동 분담, 생산물 분배, 담보권 등을 상세히 규정하고 있다. 이는 농업 경제가 단순 자급 기반이 아니라, 법적 보호를 받는 계약 시장의 일부로 기능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함무라비 법전은 토지 소유자가 직접 경작하지 않고 정원사, 소작농, 재배자에게 위탁하는 구조를 인정하며, 수확물 분배 비율을 명시한다:
제42–44조: 과수원을 경작하는 자는 수확의 ⅓을 취득하고, 나머지 ⅔는 토지 소유자에게 귀속됨
단순한 고용이 아니라, 생산물을 기준으로 한 이익 공유 계약이라는 점에서 투자-노동 간 합리적 분배 모델을 제시한 것이다.
정원사나 소작인이 관리 소홀로 인해 수확량을 감소시킨 경우, 손해 배상 책임이 부과된다:
“정원사의 태만으로 수확이 이웃 정원보다 적을 경우, 평균 수확량에 비례한 부족분을 배상해야 한다.” (제44조)
이는 표준 수확량이라는 법적 판단 기준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고대 경제에 정량적 기준 개념이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토지는 대출의 담보로 자주 활용되었으며, 수확물이 부채 상환의 수단으로 법적으로 인정되었다.
제49조: “토지를 담보로 제공한 자는 수확한 곡물로 부채를 상환할 수 있으며, 채권자는 이를 거부할 수 없다.”
단, 이는 부채 계약서상 명시된 원금 및 이자 조건을 충족하는 범위 내에서만 유효하다.
토지를 소유한 농민이 채무 불이행 상태에 이르면, 해당 토지는 일정 조건 하에 몰수되거나 노역으로 대체될 수 있다.
이 조항은 농업 생산물의 법적 화폐 기능, 그리고 토지에 대한 권리 이전의 제도적 구조를 보여준다.
타인의 경작지에 무단 침입하여 경작한 경우, 침입자는 전년 수확량 전체를 몰수당할 수 있음 (제57조)
담보 설정 시, 토지 경계와 사용 권한은 반드시 문서로 명시해야 하며, 공증 없이 이루어진 경작은 법적 인정 불가
고대 바빌로니아에서 토지 소유권이 국가권력에 의해 문서화되어 보호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함무라비 법전은 단순한 소작 외에도 다양한 농업 계약 유형을 구분하고 각각을 별도 조항으로 규정하였다:
임대농 계약: 일정 고정 금액을 토지 소유자에게 지불하고 생산물은 모두 경작자가 소유
수확 분배 계약: 일정 비율로 생산물을 나누는 방식 (⅓ : ⅔ 등)
노동 제공 계약: 경작자는 수확물에서 몫을 받지 않고 일정 품삯을 받음 (노역적 형태)
이러한 구분은 고대 농업 경제가 이미 복수의 계약 유형과 유연한 법률 대응 체계를 갖추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함무라비 법전의 토지 및 농업 금융 조항은 토지 소유권, 생산 분배, 담보 대출, 책임 배상 등 농업 경제 전반을 제도화하고, 농민과 지주의 이해관계를 법적으로 조율한 구조였다. 이는 고대 사회가 단순 자급적 농업을 넘어서, 계약과 문서, 법률이 결합된 시장 농업 체제로 진입하고 있었음을 나타낸다. 또한, 이 구조는 노동의 책임성과 토지의 담보 가치를 제도화한 최초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