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무라비 법전은 노예를 단지 노동력이나 처벌 수단이 아닌, 경제 행위의 결과로서 발생하는 신분 상태로 규정하였다. 특히 채무로 인한 자유민의 노예화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금융 구조에서 핵심적인 요소였으며, 이 제도를 완화하고 조정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조치로서 부채 탕감령(mīšarum)이 반복적으로 시행되었다. 이 항목은 노예 제도가 단순 신분 문제가 아니라 경제 질서의 일부로서 제도화되었음을 보여준다.
함무라비 법전 제117조에 따르면, 자유민이 부채를 상환하지 못할 경우 자신 또는 자녀를 채권자에게 인도하여 노예처럼 복무하게 할 수 있다.
이 복무 기간은 최대 3년으로 제한되며, 제4년에 자동 해방된다.
이 규정은 채무노예(Verbum 또는 Amtum)가 영구 노예와 구분되는 법적 지위를 가졌음을 보여준다.
개인의 채무가 가족 전체로 전가되며, 아내·아들·딸이 차례로 담보로 제공되는 사례가 문서에 다수 확인된다.
이는 자유민 가계 전체가 채무노예 계층으로 하락하는 경제적 연쇄를 유도했으며, 사회 구조의 고착화를 초래했다.
토지의 상실, 채무의 누적, 노동력의 이전은 곧 자유민의 몰락과 대지주 또는 사원의 토지 집중으로 이어졌다.
노예는 법적으로는 주인의 재산이지만, 계약적 거래 대상으로서 보호되었다.
예: 병든 노예를 속여 판매한 경우 전액 환불 책임, 도망 시 보상 조항 등
일부 노예는 상업·기술 분야에서 훈련되어 임대·재매각·속량 수익의 원천으로 활용되었으며, 이는 일종의 금융 자산화 구조였다.
탕감령은 고대 바빌로니아 왕들이 즉위 시 반복적으로 선포한 조치로서, 채무노예화의 구조적 누적을 일정 시점에서 제거하는 정치경제적 장치였다.
의미: ‘mīšarum’은 아카드어로 ‘정의’, ‘공정한 질서의 회복’을 뜻함
기능: 사적 채무의 소거 및 채무노예의 해방, 몰수당한 토지나 가축의 반환, 채권자–채무자 간 분쟁의 초기화
대표적 예시: 함무라비 외에도 신무발(Shulgi), 아마르-신(Amar-Sin) 등이 즉위 시 유사한 탕감령을 선포함
노예제의 영속성을 막고 자유민 계층을 보호하기 위한 통치 전략이자, 경제 순환 재가동의 조건이었다.
탕감령은 일회적 조치에 불과했으며, 근본적으로는 상업·지대 중심의 신용 구조를 전환하지 못했다.
왕권의 강제력이 약한 시기에는 탕감이 무시되거나 변칙적으로 회피되는 사례도 존재하였다.
그러나 반복적인 시행은 국가가 경제 시스템에 개입하고 조정하는 초기 재정 정책의 일환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함무라비 법전의 노예 제도는 단순한 계급 질서가 아니라, 채무 기반 금융 구조가 낳은 결과로서의 법적 신분 변화였다. 특히 부채로 인한 노예화는 국가 경제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구조적 문제로 인식되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탕감령 제도는 고대 국가의 경제정책 수단으로 작동하였다. 따라서 바빌로니아 사회의 노예 제도는 사적 채권 관계의 국가적 조정 장치로서의 함의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