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궁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중앙 권력 기관으로서, 단순한 정치·군사 조직을 넘어 경제와 금융의 핵심 조정자로 기능하였다. 특히 조세 수취, 공공 자금 운용, 국가 신용 거래, 무역 감독 등은 왕권이 국가 단위의 금융 질서를 수립하고 유지하는 데 중요한 수단이었다.
왕궁은 각 지방의 거점 도시에서 세금, 공납, 부역 노동을 집중적으로 징수하였다.
조세는 곡물, 은, 가축, 노동력의 형태로 수취되었으며, 왕궁은 이를 중앙 창고에 보관하였다.
이후 군대, 관료, 공공노동자, 신전 등에 재분배되거나 급여로 지급되었다.
이는 왕궁이 고대 경제의 순환 구조를 유지하는 중심 허브로 기능했음을 의미한다.
운하, 성벽, 사원 건축, 무역 항구 등 대규모 공공 사업은 왕궁 주도로 진행되었다.
이때 필요한 자금은 세입 외에도 일시적 차입, 즉 왕궁이 채무자 또는 채권자가 되어 자금을 운용하는 방식으로 마련되었다.
이러한 구조는 현대의 공공 재정 지출, 국채 발행과 유사한 경제 논리를 내포한다.
왕궁은 사원과 달리 법적 강제력과 군사력을 수반한 신용 시스템을 운용하였다.
특정 지역 상인 또는 장인에게 자본을 제공하고, 정해진 이익 또는 세수를 회수하는 방식의 계약이 다수 확인된다.
계약 불이행 시 형벌 부과가 가능하였기에, 이는 국가권력 기반의 신용 질서로 기능하였다.
왕궁은 장거리 무역을 통제하였으며, 상인은 왕실의 허가 및 계약에 따라 외지로 파견되었다.
왕궁은 이들에게 원재료 또는 자본을 제공하고, 이익의 일정 부분을 환수하였다.
국왕은 이를 통해 무역을 통한 국가 수익 확보 및 대외 관계 통제를 동시에 실현하였다.
왕궁은 공공 사업에 동원될 농민, 노예, 채무노예, 군인 등 다양한 신분 계층을 조직적으로 운용하였다.
이들의 급여는 곡물, 기름, 의복 등 실물로 지급되었으며, 지급 기록은 왕실 문서 보관소에 정리되었다.
이는 왕궁이 노동력의 중앙 분배자로서 기능했음을 보여준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왕궁은 단순한 정치 기구가 아니라, 세금 징수, 공공재정 집행, 신용 운용, 무역 조정, 노동 조직을 총괄한 경제의 최상위 기구였다. 사원이 지역 기반의 종교–경제 복합체라면, 왕궁은 중앙 집중적 계획과 강제력을 갖춘 국가 경제의 중추였다. 이러한 구조는 국가 권력이 경제 질서의 조정자였던 고대 금융의 초기 형태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토대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