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금융과 무역이 제도화됨에 따라, 관련 활동을 전담하는 전문 직능 계층이 출현하고 분화되었다. 이들은 단순한 종교적 하위직이나 행정 보조를 넘어, 계약 문서 작성, 자산 운용, 장거리 무역, 상업 투자, 중개 및 보증 활동에 참여하며 점차 독립적 신분을 확보하였다. 본 항목은 초기 금융 제도와 직업 구조 간의 상호작용을 고찰한다.
서기관은 계약 문서 작성, 회계 기록, 영수증 작성, 거래 조건 명기 등 금융 문서 체계의 핵심 운영자였다. 왕궁과 사원에 소속된 서기관들은 일정한 교육과 훈련을 거친 엘리트였으며, 금융 계약을 공적으로 승인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일부 서기관은 계약 당사자나 증인으로 직접 참여하기도 했으며, 신탁 자산의 관리권을 위임받은 경우도 존재한다. 이들의 활동은 고대 금융 질서에서 문서화와 공신력의 제도화를 가능케 한 핵심 요소였다.
상인(damgar)은 단순 물자 유통을 넘어서, 자본 운용과 신용 거래에 기반한 투자형 경제 행위자로 발전하였다. 상인들은 사원 또는 궁전과 계약을 맺고 장거리 무역을 수행하며 일정 수익을 배분하는 구조에 참여하였다.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 문서에는 damgar가 다수 계약을 병행하며 신용 장부를 관리한 사례도 발견된다.
이들은 점차 세습된 가문 기반의 상업 네트워크를 형성하였으며, 왕과 귀족 계층과의 금융적 연결을 통해 정치적 영향력도 획득하였다.
기원전 2천년경 아시리아 상인들은 아나톨리아의 카네쉬(Kanesh)에 상업 식민지인 kārum(카룸)을 설치하고 계약·환전·보증·문서 기록이 병행되는 본격적인 상업 공동체를 운영하였다.
카룸에서는 장거리 무역 자본이 다수의 투자자로부터 조달되었으며, 손익 분배, 이자 계약, 보증 구조가 모두 점토판에 상세히 기재되었다.
카룸 내에서는 독립된 상인 가문, 운송업자, 무역 조정관이 존재했으며, 초기 금융 도시로서 기능하였다.
이 구조는 도시 기반 상업 금융 시스템의 원형으로 평가된다.
거래 당사자가 직접 계약을 이행하지 않고, 대리인을 내세워 계약을 체결하는 사례가 증가하였다.
보증인은 채무 불이행 시 책임을 대납하는 제3자였으며, 이는 신용 리스크 분산의 제도화된 장치였다.
중개인은 왕궁·사원과 민간 상인 간 거래를 연결하였으며, 일정 수수료를 통해 수익을 취하였다.
이들은 점차 비귀족 출신이면서도 실질적 경제 권력을 지닌 신흥 중간계층으로 부상하였다.
함무라비 법전과 관련 문헌은 서기관·보증인·상인의 직무상 과실에 대해 명확한 처벌 조항을 두고 있었다.
문서 위조, 허위 보증, 부정 거래 등은 몰수, 벌금, 노역형 또는 신성 모독죄로 처벌되었으며,
이는 전문 금융 행위가 단순한 관습이 아니라 법적 책임과 윤리적 신뢰에 기반한 제도화된 직능으로 인식되었음을 의미한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금융 제도의 발전은 전문 직능의 분화와 계층화를 수반하였다. 서기관, 상인, 대리인, 보증인 등은 단순한 기술자나 중개인을 넘어서, 제도와 시장을 매개하는 핵심 행위자로 기능하였으며, 이들의 존재는 초기 금융시장이 조직화된 노동 구조와 사회적 위상을 기반으로 작동했음을 보여준다. 고대 금융은 이미 사람, 제도, 기록, 권력의 유기적 통합 속에서 작동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