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투르니에의「강자와 약자」
「강자와 약자」는 외적으로는 강자와 약자라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보이는 인간들이 내적으로는 두려움이라는 동일한 기제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주장을 설득력 있게 펼치는 책이다. 저자는 심리학과 기독교 신앙의 통합에 기여했다고 평가 받는 스위스의 내과의사 겸 정신의학자 폴 투르니에다. 투르니에는 6세에 고아가 된 이후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있다가 16세에 처음으로 교사와의 개인적인 대화를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그 후 옥스퍼드운동에 참여하면서 기독교 신앙 안에서 마음의 고통을 공유하는 대화를 배우게 된다. 이런 경험을 통해 그는 인간의 마음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다.
그는 ‘인격의학’이라는 심신상관의학(Psychosomatic Medicine)의 주창자로, 인간의 마음이 신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많은 저술을 했다. 「강자와 약자」에서 저자는 인간은 강자와 약자라는 두 종류로 나누어질 수 없고 단지 약한 반응과 강한 반응을 하는 사람으로 구분될 뿐이라고 말한다. 기질이나 환경의 영향으로 서로 다른 반응을 하고 있을 뿐, 내면의 인간성은 비슷하다는 것이다. 강자도 약자도 가면을 쓰고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을 기만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그는 심리적 충동에 따라 반응하지 말고 진정한 도덕적 양심에 따라 주체적으로 행동하라고 권한다. 그리고 상대가 강자든 약자든 모두 연민으로 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수북수북' 시즌 2는 바야흐로 한 권의 책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이날 공동운영자는 과로로 쓰러져 비디오를 끄고 음성으로만 참여했다. 저자는 피로감의 원인으로 순수한 과로, 지나친 열심, 반항심, 게으름을 들었는데, 나의 피로감은 반항심 또는 게으름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30대 초반일 때 나는 늘 피곤에 절어있었다. 어린아이들을 양육하는 시기라서 그렇기도 했겠지만 모든 일을 의무감에서 했기 때문에 더 빨리 지쳤던 것 같다. 어떤 일을 할 때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욕먹을까 봐 억지로 했으니 더 많은 에너지가 소진되었던 것이다. 그때보다 나이도 두 배나 많고 객관적인 건강지표도 좋지 않은 지금은 피로감을 휠씬 덜 느끼고 산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을 하기 때문인 것 같다. 능력 발휘와 관련해서 저자는 자신의 능력에 맞지 않는, 지나치게 쉬운 일만 하는 사람의 경우 오히려 늘 피로에 젖어있다고 말한다. 그는 이런 것을 게으름 또는 잘못된 피로감이라고 불렀다.
두 명의 회원이 강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에게서 약한 모습을 본 비슷한 경험을 독후감에 썼다. 한 회원은 강한 남자의 표상이었던 아버지가 나이 들어가면서 눈물이 많아진 것에 적응이 안 된다고 했고, 고등학교 때 깐깐했던 노처녀 선생님을 최근 만나보니 젊은 시절의 모습이 많이 사라지고 온유해진 것을 느꼈다는 회원이 있었다. 나이가 들어서 젊은 혈기와 날카로움이 희석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기는 하나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는 점에서 두 노인은 성숙하게 늙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책을 읽으며 회원들이 자기의 내면을 성찰하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했다. 어려서는 순한 아이로 자라서는 착한 여자로 누구에게도 불만이나 고민을 이야기하지 않고 살아왔던 한 회원은, 이제는 자신의 진정한 감정으로부터 도피하지 않고 정직하게 자기를 직면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고 썼다. 외양으로는 약자에서 강자로의 변신이 이루어졌지만, 강자의 신중하지 못한 모습을 약자의 시선으로 비판하게 된다고 한 회원도 있었다. 그녀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기 위해서 늘 겸손한 자세를 잃지 않아야겠다고 썼다.
리딩 가이드에 기초한 토론에서는 흥미로운 대화가 많이 오갔다. 사람들을 대하다 보면 어떨 때는 사람들이 다 비슷비슷한 것 같은데 또 어떤 때는 자신과 질적으로 다른 사람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런 사실에 근거해서 자신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가 있는지를 질문했다. 이기적인 사람, 깍쟁이, 뺀질이, 책임을 회피하는 사람,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는 답변이 나왔다.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자기중심적인 사람을 이해하기는 어렵다는 공통적인 생각이 읽혔다. 그런데 앞에서 깍쟁이와 뺀질이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 회원이 자신의 부모 형제가 볼 때는 자기가 깍쟁이로 보일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역지사지하게 되는 것 같았다.
친절이 약한 반응일 수도 있고 강한 반응일 수도 있다는 저자의 주장에 대해서도 토론했다. 저자는 타인의 호감을 사기 위해 친절하게 행동하는 경우는 약한 반응이고, 타인을 통제하기 위해서 값비싼 선물을 하는 경우는 강한 반응이라고 말했다. 회원 중에는 값비싼 선물을 받는 것을 질색한다는 사람이 있었고, 남편이 감사관으로 근무할 때 작은 선물이 들어와도 다 돌려주라고 하는 통에 아내 입장에서 매우 피곤했다고 하는 회원도 있었다. 시어머니에게 명품 가방을 받은 며느리가 그 가방을 친정어머니에게 주어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회원도 있었다. 나는 친정엄마가 몰래 와서 우렁각시처럼 우리 집을 청소해놓고 가는 것이 영 불편하다고 말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에게 빚진 느낌이 들고, 나에게 잘해주는 것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못 하게 막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사적인 상황이든 공적인 상황이든 뭔가를 바라고 베푸는 친절은 환영하기가 어렵다. 인간이 자기 목적을 위해 다른 인간을 통제하려는 시도가 점점 더 보편화되어가고 있는 시대, 순수한 호의가 그리운 시대다.
저자의 결론은 본능과 도덕적 양심이 조화를 이룰 때 인간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자신을 존중하는 동시에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는 것이 두려움을 극복하는 선결조건이라는 뜻이다. 소감 나눔 시간에 한 회원이 ‘양심은 사람들이 들으려 하지 않는 고요하고 작은 목소리’라는 지미니 크리켓의 말을 인용했다. 강자가 되고 싶었던 피노키오에게 해준 귀뚜라미의 말이 이날 모임을 마무리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