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절반의 아픔

존 스튜어트 밀의 ⌜여성의 종속⌟

by 이소라

존 스튜어트 밀의「여성의 종속」은 페미니즘의 고전이다. 저자는 세계에서 가장 앞서 자유와 평등을 실현했다고 자부하던 19세기 영국 사회에 여전히 불평등이 존재하고 있다는 도전장을 내민다. ‘어떤 노예도 아내처럼 그렇게 길고 힘들게 종살이를 하지 않는다.’라는 문장은 매우 도발적이다. 한 술 더 떠서, 교육이라는 수단을 사용하여 여성에게 자발적 복종을 유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노예제도는 더 악의적이라고 그는 지적한다.

KakaoTalk_20210218_181245788.jpg 어떤 노예도 아내처럼 길고 힘든 종살이를 하지는 않는다

지독한 만연체의 원문을 밀의 사상에 정통한 서병훈이 번역한 덕분에 비교적 쉽게 읽혔다. 추석 명절 한 주 전에 이 책으로 독서 모임을 한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19세기 중반 영국과 비교하여 21세기 한국 여성의 지위가 어느 정도인지에 살펴보기 위해 남녀 차별이 극대화되는 명절 연휴의 풍경이 적절한 배경이 되어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 여성 회원은 「여성의 종속」에 나오는 ‘여성은 모든 사람이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늘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만일 여성이 공부를 하거나 무엇인가를 추구하려면 우연히 생기는 자투리 시간을 잘 이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문장이 자신의 현주소를 정확히 대변해준다고 말했다.

다른 회원은 90년대 독일에 갔을 때 공중전화 카드에 코르셋에서의 해방을 부르짖는 여성주의적 메시지가 새겨져 있는 것을 보았다며, 21세기를 목전에 둔 시기에 독일과 같은 선진국에서도 여전히 여성을 억압하는 모습이 있음을 알고 놀랐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또 다른 회원은 남편이 2년간 아내에게 말을 하지 않고 문자메시지로 지시와 명령을 했던 노부부의 이혼소송 이야기를 기사에서 읽었던 이야기도 해주었다. 놀라운 것은 1심에서 아내가 제기한 이혼 사유가 이유 없음으로 기각되었다는 것이었다. 서구사회나 우리 사회나 완전한 평등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KakaoTalk_20210218_183039686.jpg 문제를 인식한 것과 인식하지 못한 것은 엄청난 차이다.


희망적인 이야기도 있었다. 우리 모임의 청일점인 30대 남성 회원과 50대 초반 여성회원의 진보적인 생각 때문이었다. 남성 회원은 현재에도 여성을 자신의 노예나 장식품처럼 대하는 남성들을 보면서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여성들이 육아로 인해 경력이 단절되거나 육아휴직으로 인해 불이익 당하는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고, 명절에 여자들은 일하고 남자들은 텔레비전을 보는 풍경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세 명의 청소년을 키우고 있는 50대 여성회원은 자신이 일찍부터 아들딸 구분하지 않고 교육해왔던 것을 이야기하면서 사실은 그렇게 하면서도 일말의 불안함이 있었다고 했다. 자신이 양육받은 방식과 다른 방식으로 아이들을 기르는 것이 쉬울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여성의 종속⌟을 읽고 토론하면서 그녀의 불안이 대부분 사라졌다고 하여 운영자로서 뿌듯함을 느꼈다.


나의 가정은 여전히 성 역할 고정관념이 지배하고 있다. 결혼 초에는 온 집안에 남존여비의 표어가 노골적으로 내걸려 있었지만 35년이 지난 지금도 암묵적인 차별은 존재한다. 그럼에도 내 마음속에 억울함이 거의 없는 이유는 남편의 무지나 친정과 시댁 어른들의 고루한 사고가 더는 나를 두렵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영향력은 사라져가는 옛 시대 유물에 불과한 것을 알기에 지금은 그들이 남은 골동품 조각들을 부여잡고 있는 것을 측은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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